슬기로운 백수생활 #3
연암 박지원이 『양반전』으로 조선시대를 풍자했듯,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코로나 시대의 일상을 한번 백수의 눈으로 스케치해 보겠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일상이 우리가 빠져 허우적거릴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지…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모국어를 익히기도 전에 영어부터 배운다. 뭐 영어를 하는 게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는 사고의 스키마다. 인간이 태어나서 경험하고, 느끼고, 배우는 모든 것이 차곡차곡 뇌에 기록되어 가장 필요한 순간에 언어로 행동으로 발휘된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놀랄 때 “엄마”를 찾는 건 유전이 아니라 뇌에 새겨졌던 언어의 기억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언어는 사고를 규정하고, 사고는 언어로 표현된다. 그러니까 더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그럼, 그러시든가…
유아기를 지나 본격적으로 아동기에 들어가면 우리는 연대와 협력이 아닌 경쟁을 시작한다. 인간은 존재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가 아니다. 경쟁에서 이겼을 때 비로소 인권을 갖게 된다. 즉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평생을 인간이 되기 위해 경쟁한다. "살아남기 시리즈”로 만화 불황기를 돌파한 후, 최근 웹툰 “고수”로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만화가 ‘문정후’의 데뷔작 용비불패에는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싸우는 북방 기마민족의 왕야와, 인간이 되기 위해 싸우는 주인공 용비가 등장한다. 최근 백수로 살다 보니 만화를 볼 여유가 부쩍 늘었다. 최근 푸욱 빠져 있는 만화, “진격의 거인”에서는 주인공 앨런이 위대한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덕담에 앨런의 엄마는 이렇게 대답한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적어도 이 아이는 위대하지 않아도 돼요. 남보다 뛰어나지 않아도 돼요. 이 얼굴을 보세요. 이렇게 귀엽잖아요. 그러니까 이 아이는 이미 위대해요. 이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요.
만화를 하찮게 여지기 마시라! 그 안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진리가 있으니…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은 중2가 되면 본격적으로 체제 저항에 돌입한다. 소위 북한의 김정은도 무서워한다는 중2뼝에 걸리는 것이다. 난 아이들이 앓고 있는 이 중2뼝이 아이들의 병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중2뼝은 이 사회의 병이고, 그 사회를 만든 기성세대가 걸린 사회구조적인 정신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 병을 우리 사회로부터 분리하여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한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중2뼝이 아니라, 무기력한 중2들에게 대한민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전가하고 있는 우리들의 뻔뻔함일지도 모르겠다.
미성년에서 벗어나고 나면 우리는 고통스러운 일상을 벗어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 일상에 익숙해진 관성의 가속도로 인해 우리는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일단 못 먹어도 고를 외친다. 고액의 연봉을 주는 대기업의 정규직이 되기 위해, 고급 승용차를 사기 위해, 더 나은 배우자와 결혼을 하기 위해, 안락한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불행을 입시 경쟁 교육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다시 자식 세대에게 대물림한다. 이른바 고통스러운 일상이 반복되는 악순환의 수레바퀴에서 그 누구도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백수들에게 이 정도는 견뎌야 행복한 미래를 살 수 있다며 다시 돌아오라고 유혹한다.
적어도 내가 어렸을 땐 어른들이 결과와 더불어 과정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정 따윈 중요하지 않다. 얼마 전 나는 친구의 국회의원 선거를 도운 적이 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충고했다. 무조건 이기라고? 노무현 대통령이 무조건 이기기 위해 종로에서 부산으로 내려가 출마를 했었나? 뭐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었다. 빨리 이러한 일상에서 탈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백수가 되었다. 훈수꾼의 눈에 장기나 바둑의 수가 더 잘 보이는 이유는 승패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일상에 깊이 빠져 있으면 빠져 있을수록 그 일상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느낄 수가 없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정을 무시한 채 이룬 성공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고통은 더욱 단단하게 구조화된다. 오늘 불행을 견딘다고 내일 행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사라진 지 오래다. 차라리 오늘의 행복을 축적해 내일을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 혹시 행복하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일상에서 벗어나라. 일상에서 벗어나 일탈을 해야 행복의 꼬리라도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