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백수생활:백수의 시간은 돈이고, 몸은 자산이다

슬기로운 백수생활 #4

by 낭만박사 채희태

“돈 놓고 돈 먹기”라는 말이 있다. 야바위 꾼들이 사기로 돈을 벌기 위해 호객행위를 하며 하는 말이다. 돈이 없으면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노동에 자본이라는 돈이 결합해야 비로소 노동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우리는 말 그대로 야바위가 판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야바위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백수가 새로운 노동의 가치를 만들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백수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하다. 하지만 이 야바위 시대를 끝장 낼 수 있는 힘은 영웅이 아니라 백수에게 있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 비로소 그동안 미뤄왔던 노동의 가치에 대한 성찰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 돈 놓고 더 많은 돈 먹기를 해 온 은행투자가는 없어도 사는데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더 큰돈을 벌어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을 갖고 싶은 욕심에 지장을 줄지는 몰라도…


명절 잔소리 메뉴판이라는 것이 있다. 명절 때 성적, 취업, 결혼 걱정을 하는 어른들을 위해 마련한 메뉴판이다. 성적을 걱정하는 어른은 5만 원을, 취업 걱정을 하는 어른은 15만 원을, 결혼을 걱정하는 어른은 20만 원을 내야 한다. 참으로 시의적절한 풍자에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치며 공감했다. 메뉴판의 맨 마지막에는 “저의 걱정은 유료로 판매하고 있으니 구입 후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전쟁과 민주화, 그리고 고성장 시대를 경험한 기성세대는 전혀 다른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청년 세대에 대해 공감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백수도 마찬가지다. 고성장 시대의 백수와 저성장 시대의 백수는 다르다. 일자리 자체가 없는 저성장 시대의 백수에게 고성장 시대의 백수에게 가졌던 인식 그대로를 투영하면 안 된다. 일자리가 없으면 창업을 하라고? 그건 말이 아니라 막걸리다.

근무 시간이 곧 월급으로 연결되는 직장인과 다르게 백수는 시간 그 자체가 돈이다. 만약 본의 아니게 돈으로 계량하기 쉽지 않은 백수의 시간을 빼앗았다면 술 아니면 밥이라도 사라! 그도 아니면 백수의 삶에 꼭 필요한 선물을 할 수도 있다. 정보 통신의 발달로 요즘은 굳이 만나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전달할 수 있는 선물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백수가 자신의 시간이 곧 돈이라는 것 깨달았으면 스스로도 그 시간을 귀히 여길 필요가 있다. 잠자는 시간은 얼마, 모바일로 웹툰이나 유튜브 시청을 하며 보내는 시간은 얼마, 아무것도 안 하고 멍 때리는 시간은 얼마인지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 계산해 보라. 나는 오늘 새벽 1시쯤 잠이 들어 아침 8시에 일어났다. 잠자는 시간은 건강을 위해 투자하고, 적당히 피로를 풀었으니 똔돈이다. 잠에서 일어난 후 아내와 딸에게 소중한 백수의 시간을 소비했으나, 그만큼 가족과의 친밀도가 올라갔으니 역시 똔돈이다. 가족과의 관계에선 적자만 안 보면 된다. 난 10시쯤 집에서 나와 지금까지 약 6시간 넘게 나중에 얼마로 되돌려 받을지 모르는 글쓰기 노동을 하며 나름 보람찬 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허리가 아파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했다. 코로나가 지구를 멈춰 세웠다면 오랜만에 찾아온 허리 통증이 나를 주저앉힌 것이다. 쉬면 나을까 싶어 누워 있는데, 점점 심해진다. 백수가 아프면 더 서럽다. 심지어 직립보행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다. 덕분에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허리가 아파 이틀째 침대에 누워 있는데, 마치 침대가 내 몸과 일체화를 시도하고 있는 듯하다. 전에는 베개 위에 살포시 머리를 얹었다면, 지금은 베개가 내 머리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몸도 어떻게든 침대와 접촉면을 늘리려는 듯, 누군가 강하게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다. 이러니 몸과 머리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백수에게 침대는 벗어나기 싫은 곳인지 모르지만, 환자에게 침대는 벗어나고 싶은 곳이다. 화장실을 가거나, 밥을 먹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려면 자세를 바꿀 때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온다. 백수 탈출을 위한 “자기 계발”이 아니라, 백수의 새로운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자기 인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필자지만 막상 아파보니,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이 아프면 ‘돈 버는 일’만 못하는 게 아니라 백수의 특권인 ‘노는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리고 백수가 아프면 비백수보다 더 치명적이다. 잊지 말자, 백수의 시간은 돈이고, 백수의 몸은 새로운 노동의 가치를 만들어 낼 자산이다. 그러니 백수들이여, 절대 아프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