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백수생활:개멋부리고 사는 낭만백수가 돼라!

백수 십계명 #10

by 낭만박사 채희태

난 아무리 바빠도 드라마 한 편씩은 꼭 챙겨 보는 편이다. 얼마 전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며 코로나가 가져다준 일상의 폭폭함을 견뎠고, 그다음엔 “사이코니까 괜찮아”를 보며 사이코가 문제인지, 아니면 이 사회가 문제인지를 고민했다. 내가 드라마를 꼭 챙겨보는 이유는 현재 방영되고 있는 가장 핫한 드라마를 소재로 누군가와 수다를 떨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드라마라고 하는 문화콘텐츠가 현실의 과잉과 결핍을 잘 반영해 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본 드라마 중 최애 드라마를 꼽자면 역시 “낭만닥터 김사부”다. 시즌 1의 성공에 이어 얼마 전 시즌 2가 끝났고, 시즌 3까지 준비하고 있다니 김사부를 흠모하는 나의 마음은 그저 개인의 취향 만은 아닌 것 같다.


김사부 시즌 1에서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김사부에게 좋은 의사인지, 최고의 의사인지를 묻는 유연석의 질문에 환자가 원하는 건 좋은 의사도, 최고의 의사도 아닌 “필요한 의사”라고 대답하는 장면이다.

단지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좀 막연하다. 그리고 최고가 된다는 것은 경쟁 시스템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다. 필요한 사람이 된다는 건 경쟁에서 비켜날 수도 있고, 삶의 선택지를 넓힐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매우 유용하다. 애매하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경쟁해서 이겨 최고가 되는 것도 백수의 삶이 아니다. 그냥 누군가에게 필요한 낭만백수로 살면 된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필요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에게, 다양한 상황에 맞는 다양한 필요를 제공하면 된다. 그 필요는 돈일 수도 있지만, 사소한 노동일 수도 있다. 그저 따뜻한 공감일 수도 있다.


김사부 시즌 2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양심과 욕심 사이의 경계를 확실하게 그어준 김사부의 대사였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대리 수술을 했다며 울부짖는 서우진의 선배 임현준에게 김사부는 그건 양심이 아니라 욕심이라며, 양심과 욕심을 착각하지 말라며 일갈한다.

김사부의 말대로 우리는 양심과 욕심을 착각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살면서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자신을 위로하며 욕심을 하나씩 허용한다. 자신이 허용한 욕심에 익숙해지고 나면 어쩔 수 없이 허용했던 욕심은 이제 익숙한 일상이 된다. 처음엔 바늘 하나가 겨우 들락거렸던 욕심에 대한 허용의 크기는 시간이 지나면 황소가 들락거릴 정도로 넓어진다. 지키고 싶은 것이 많으면 어쩔 수 없이 무리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지키고 싶은 것이 없는 백수는 비백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낭만을 유지하는데 유리하다. 다음은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 2의 엔딩 나레이션이다.


낭만 보존의 법칙!
대부분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걸 알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그러면서도 누군가는 꼭 지켜줬으면 하는 아름다운 가치들…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마.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낭만도 끝이 나는 거다. 알았냐?


김사부는 낭만을 전문용어로 “개멋”이라고 정의했다. 당연하지 않은 게 당연한 사회에서는 그 당연함을 지키고 사는 게 개멋을 부리는 것처럼 아니꼽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지나가는 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개멋, 버스나 지하철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개멋, 그리고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개멋… 백수라고 눈총을 받으며 살아온 날이 원, 투 데이도 아니고…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말고 그냥 소소한 당연함을 지키며 낭만백수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야 당연함이 당연하지 않음보다 더 당당해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