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백수생활 #9
일본은 지금까지 총 2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7명이 교토대 출신이다. 교토대는 학풍이 자유분방하기로 유명한데, 세계 최고가 아니라 세계 유일을 지향하는 것이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배경이라고 한다.
일반적이지 않는 사람, 요컨대 ‘괴짜’ ‘별종’은 사실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하지만 교토대에서 ‘헨진(變人·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은 칭찬으로 통한다. 일본 매체 ‘주간포스트’에 따르면, 실제로 교토대는 학생들에게 ‘괴짜가 세상을 바꾼다’며 장려하는 분위기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괴짜’야말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진실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실패를 반복해도 ‘어라, 그거 재미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면 교토대 측은 허용해준다.
어느 시대나 주류와 비주류가 있다. 시대를 이끄는 것은 언제나 주류였다. 그러나 어떤 변화가 필요할 때 주류는 오히려 그 변화를 가로막는 강력한 힘이 되기도 한다. 교토대는 시의적절하게 비주류를 ‘허용’함으로써 일본 노벨상 최다 수상이라는 효과를 톡톡이 보고 있다. 백수는 이 시대의 주류로 살 것은 포기한 비주류다.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무수히 많은 톱니바퀴들의 집합에 비유한다면... 그중에는 동력을 전달하는 톱니바퀴도 있을 것이고, 주위의 톱니바퀴가 돌 때 무작정 따라 도는 톱니바퀴도 있을 것이다. 어떤 톱니바퀴는 윤활유가 없어 빡빡하게 돌 수도 있고, 큰 톱니바퀴가 한 바퀴를 돌 때 수 십 바퀴를 돌아야 하는 작은 톱니바퀴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동력이 전하는 방향과는 반대로 힘을 써보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미 구조화된 거대한 동력에 의해 톱니바퀴가 빠그라져 나가는 경헝을 해 왔다. 누군가가 만들어 낸 동력에 무작정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것이 소위 주류라면, 백수는 그 동력에서 떨어져 나와 어설프지만 스스로 자신의 동력을 만들어 내기 위한 비주류의 길을 선택했다.
백수가 가지고 있는 힘은 어쩌면 저항보다 강력할지 모른다. 누군가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성조기에 이스라엘 국기까지 등장한 태극기 집회를 반대하는 사랑들이 강력한 반대 집회를 이어갔다면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까? 내가 대학생 때 데모를 하며 가장 무력감을 느꼈을 때는 교문 앞에 전경이 지키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1993년 김영삼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스크럼을 짜고 교문으로 향했을 때 지키고 있는 전경들이 아무도 없었을 때였다.
오랜만에 구청에 떨궈 놓고 나온 후배에게 안부전화를 걸었다. 채 안부를 물을 틈도 없이 후배는 대뜸 말단 9급부터 사무관인 5급 공무원까지 모두 리더십 교육을 받는 게 과연 맞는지 내 견해를 물었다. 왜 모든 사람이 다 리더가 되어야 하냐고, 모두가 리더면 배가 산으로 가지 않겠냐고… 뼈를 때리는 말이다. 리더는 그저 한 사람이면 족하다. 리더라는 게 하나의 역할일 뿐인데, 우리는 그 리더를 무슨 권력으로 생각한다. 꼬리를 물고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뇌신경 심리학자이자 『승자의 뇌』의 저자인 이안 로버트슨(Ian Robertson)은 권력은 아무리 사소한 권력일지라도 뇌의 공감 능력을 쇠퇴시킨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리더를 권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조직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에 공감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형 리더의 구성원들은 리더가 가진 능력치를 벗어날 수 없다. 반면 다양성을 인정하는 공감형 리더는 리더의 역할에 다양한 구성원들의 가능성이 더해진다. 권력형 리더가 빅텐트라면, 공감형 리더는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바야흐로 획일화된 리더십보다 다양한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더 중요한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백수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고, 백수가 추구하는 비주류의 독특함은 백수만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