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백수생활:남이 1년 걸려 할 일을 10년에 하라

슬기로운 백수생활 #8

by 낭만박사 채희태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다.
오늘의 할 일은 내일로 미루고 내일의 할 일은 안 해 버린다!


대학 신입생 때 선배들로부터 배운 노래다. 힘든 경쟁을 뚫고 대학생이 되었다는 여유의 역설일까? 선배들은 술자리가 끝날 즈음 서로 어깨를 걸고 이 노래를 불렀다. 사실 내가 대학에 들어갔던 1988년만 해도 다른 사람과의 경쟁보다 나와의 싸움이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대학에 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대학에 떨어진 대부분은 남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운전면허 시험을 보러 가는데,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국민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아버지도 한 번에 붙었어.
필기시험 떨어지면 집에 들어오지도 마!


운전면허를 가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필기시험은 시험 전날 문제집 한 번만 풀어도 붙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그게 더 공포스럽다. 다른 사람은 다 붙는데, 나만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루 전날 문제집을 풀어봤더니 모르는 문제가 태반이었다. 공포감은 현실로 다가왔다. 다행히 턱걸이로 붙긴 했지만, 같이 시험 본 사람 중에 꽤 많은 사람이 떨어졌다. 대학도 그런 것 같다. 고등학생 중 30%가 갈 수 있을 땐 대학을 못 가는 것이 그렇기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70%가 대학을 간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건 어쩌면 ‘포기’할 수 없는 ‘기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30%밖에 대학을 못 간다면 포기가 더 쉬울 수 있다. 하지만 70%가 대학을 간다면 포기보다 기대의 영역이 커 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은 포기가 당연한 시대에 좁은문을 향해 돌진하는 사람뿐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난 인생에 있어 여러 번의 변곡점이 있었던 것 같다. 난 국민학교 때부터 형들을 따라 열심히 만화를 그렸다. 덕분에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미술 선생님의 권유로 미술부가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가 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을 기타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기타를 배웠다. 미대는 집에서 학원비를 대줄 여력이 없었기에 진작에 포기했고, 어설픈 기타 실력으로 막연하게 음대를 가고 싶었지만, 그때는 실용음악을 가르치는 대학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중, 고등학교 때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대학은 국어국문과에 입학했다. 시간이 제법 지난 지금도 가끔 가까운 지인의 얼굴을 그려 주기도 하고, 꾸준히 연습해 온 기타로 소규모 대중 앞에서 공연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늦은 나이에 공부가 하고 싶어 얼마 전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2016년 티스토리에 블로그를 만들고 나서부터이다. 처음엔 허전한 블로그를 보며 앞으로 블로그를 어떻게 채울지 막막했다. 매일매일 생각나는 대로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처음엔 글을 쓰는 게 익숙하지 않아 10줄을 넘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금은 지인들로부터 내 글이 너무 길다는 민원을 받는다.


보잘것없긴 하지만 내가 가진 재능 중 그 어떤 것도 하루아침에 얻은 것이 없다. 가끔은 보잘것없는 내 재능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난 이야기한다. 지금부터 하루에 매일 30분씩만 부러워하는 그 재능에 투자해 보시라고… 난 그렇게 하지 못해, 10년이 걸리고, 20년이 걸리고, 30년이 걸려 얻은 재능이라고… 농담이 아니다. 하루에 30분만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리거나, 기타를 치거나, 글을 쓸 수 있다면 1년 뒤, 5년 뒤, 10년 뒤에 다른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백수에게 시간은 돈이지만, 쓰고자 한다면 남아도는 게 또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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