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백수생활 #7
일찍이 나보다 한발 빠르게 백수의 가치를 통찰한 분이 있으니,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라는 책을 통해 백수의 관점으로 연암 박지원의 생애를 풀어낸 ‘본 투 비 백수’, 고미숙이다. 고미숙은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에서 한 달에 70만 원만 있으면 백수로 자립이 가능하며 88만 원이면 저축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늘 가난한 이유는 밥벌이랑 상관없는 소비 충동 때문이며, 일상적 상식으로 수입이 없으면 소비가 줄어야 마땅한데 소비가 늘 수입을 앞질러 간다는 것이다. 연봉 5,000만 원을 받으면 소비는 연봉 1억에 맞춰진다며 가계 부채 상승률의 원인을 과도한 소비 충동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당당한 백수로 살기 위해선 경제적 자립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경제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면서 살고 있는 백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고미숙의 지적처럼 소비 기대에 소득을 맞추기 위해 기를 쓰지 않는다면 자립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는 과잉생산의 모순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비인격체인 자본은 인간의 행복이 아니라 이윤을 위해 작동한다. 자본주의에서 인간이 사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자본주의에서 생존하기 위해 인간이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과잉생산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식민지배를 통해 시장을 확대하는 제국주의이다. 그런데 식민지 개척을 하기 위해 항로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투자의 개념이 등장해 일반화된 것이 바로 금융이다. 눈에 보이는 식민지를 비인간적으로 지배하는 것보다 우아하게 미래의 가치를 현재에 끌어다 쓰면 된다. 난 40대 초반에 7급으로 어공을 시작했다. 아무리 호봉이 적다고는 하지만 첫 월급을 받고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공무원 월급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한 7급 공무원은 여름휴가 때 가족과 지중해를 다녀왔다고 했다. 안정된 고용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다녀온 것이다. 50만 명이 공시를 준비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보다 안정적인 빚쟁이로 살기 위해 우리나라에 공무원 만한 직장이 또 어디 있겠는가!
소비 충동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구조가 안고 있는 문제다. 생산과 혁신은 필요의 산물이 아니라 이윤의 욕구로 인해 시작된다. 그 누구도 스티브 잡스에게 아이폰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소비자가 요구하지 않은 물건을 생산하고 나면, 이제 생산자는 그 물건의 필요성을 증명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등장해 성장한 것이 바로 광고산업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연예인은 아파트 광고에서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스마트폰 광고를 하는 모델이 가장 주목받는 연예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광고는 대중들이 가장 동경하는 연예인을 내세워 대중들의 소비 충동을 자극한다. 나도 아이폰을 쓰고 있지만, 애플은 자신의 탐욕을 가장 훌륭하게 혁신으로 포장한 기업이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애플에게 돈을 갖다 바쳤는지를 확인하려면 2017년 완공된 약 71만㎡ 규모(축구장 전용 면적의 100배)에 도넛처럼 생긴 애플의 신사옥을 보면 된다. 공사비만 우리나라 돈으로 5조 원이 넘게 들었다.
모두가 소비의 노예로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있으니 다름 아닌 백수다! 소비 충동을 해소하고 싶어도 할 돈이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소비 충동을 해소할 돈이 없다면 속 끓이지 말고 그냥 무시하자. 소비를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소비의 기준을 충동이 아닌 소득에 두라는 것이다. 소비 충동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자본주의의 노예에서 자유로운 백수로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