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백수생활 #6
관계는 우리에게 ‘힘’이 될까, 아니면 ‘짐’이 될까? 힘이 아니라 짐이 된다고 해도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은 관계가 짐을 넘어 ‘죄’가 되는 시대이다. 한 번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친목의 긍정성을 주장하다가 철퇴를 맞은 적이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왜 친목질을 하려고 하냐며 반대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온라인에서 친목을 도모하는 행위는 마치 도둑질처럼 친목’질’로 인식이 된다. 친목이 뭐가 문제냐고 항변을 해 보았지만, 온라인 세대는 오프라인 세대와 다른 관계의 문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친목이 긍정적인 100가지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친목 밖에 있는 누군가가 친목의 피해자가 된다면 모든 친목은 싸잡아 ‘‘친목질’이 된다. 학창 시절 왕따 문화를 경험해 온 온라인 세대에게 잘못된 친목은 친목에서 배제된 누군가에게 단지 상처를 주는 것을 넘어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는 위험한 행위였을지 모른다. 나아가 온라인 세대의 눈에는 학연, 혈연, 지역이 범벅이 된 오프라인 세대의 그 구태의연함이 혐오스럽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급기야 나는 내가 보지 못한 친목의 부정적 이면이 있음을 인정하며 커뮤니티에 공개 사과문을 올렸다.
꼰대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수용하는 '태도의 차이'가 그 기준이 된다. 꼰대는 진보와 보수,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를 떠나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거나, 다른 생각을 수용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부도덕한 보수와 싸우는 과정에서 꼰대스러운 진보가 등장했고, 가부장제와 싸우는 과정에서 여성도 꼰대가 될 수 있으며, 나이를 권력처럼 휘둘러온 어른들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온 아이들도 자신의 생각과 다른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이른바 어린 꼰대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내가 현재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자신과 다른 생각을 대하는 ‘태도’이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다양한 관계가 연대와 협력이 아닌 경쟁과 갈등, 그리고 권력관계로 작동하는 모습을 접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신념과 실력, 그리고 인맥의 역할 관계다. 우리는 신념이 곧 실력이던 시대를 살아왔다. 신념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구현되는지보다,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어떤 신념도 다른 신념을 대체할 수 없는 불확실성 앞에 놓이게 되었다. 지금은 씨를 뿌리면 그것이 열매를 맺는 필연의 시대가 아니다. 노오력이라는 필연이 성공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기 위해선 더 많은 우연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 오죽하면 운7복3이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우리에게 익숙한 문화콘텐츠에 비유들 하자면 신념은 기획이고, 실력은 제작이다. 그리고 문화콘텐츠가 확산되는 채널인 매체는 인간관계, 즉 인맥이다. 인맥을 부정적으로만 볼 이유는 없다. 인맥이 문제가 되는 것은 신념과 실력과 무관하게 작동될 경우에 한한다. 신념 만을 주장하는 사람은 꼰대고, 신념 없이 실력만 주장하는 사람은 영혼이 없는 기계와 같다. 그리고, 인맥에 기대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을 우리는 소위 전문용어로 ‘양아치’라 부른다.
백수에게 양아치가 되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백수가 백수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백수의 신념과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관계, 즉 인맥이 필요하다. 독야청청 홀로 서서 아름다운 백수도 없지는 않겠지만, 백수는 다양한 관계 속에 있어야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인간은 혼자 서 있을 수 없기에 한자로 사람 인(人)은 둘이 서로 기대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관계가 상처가 되고 생명을 위협했던 시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관계를 떠나 살 수 없다. 뜨거운 것은 뜨거운 것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이 있듯이 관계로 인해 생긴 상처는 관계로 풀어야 한다. 관계의 상처를 치유하는 백수의 오지랖은 관계를 더욱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