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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Nov 15. 2020

백수 문명의 시작!

인류 최초의 문명은 농경과 결합한 “계급 문명”이었다. 파라오에게 막강한 권력이 없었다면 이집트 문명이 꽃피울 수 있었을까? 자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인류는 가장 똑똑한 누군가에게 생산의 권한과 수확한 생산물을 지킬 수 있는 물리력을 위임했다. 결국 최초의 문명을 일으킨 계급 문명은 그 시작이 인류를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계급 간의 착취로 이어졌다.


그다음 문명은 “종교 문명”이었다. 자신을 착취하고 있는 지배계급이 신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피지배 계급을 지배하기 위해선 새로운 지배질서가 필요했다. 그래서 지배계급과 종교 권력 간의 수평적 권력 연대가 이루어졌다.


밀라노 칙령(313년, 라틴어: Edictum Mediolanense, 영어: Edict of Milan)은 로마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가 사인한 칙령이다. 주된 내용은 종교에 관한 관용인데, 종교적인 예배나 제의에 대해 로마 제국이 중립적 입장을 취한다는 내용의 포고문이다. 이로써 로마 제국에서 신앙을 가지는 것, 특히 그리스도교 신앙을 핍박하던 입장에서 옹호하는 입장으로 돌아선 사건이다(위키백과).


계급 문명에 이은 종교 문명은 불순한 의도와 무관하게 건축,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내가 종교 문명과 관련해 의도와 결과를 굳이 분리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의도가 선하다고 반드시 결과가 선한 것은 아니며, 반대로 의도가 악하다고 결과도 악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악한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종교 문명을 무너뜨리면서 시작된 근대 자본주의 문명은 “교육이 이룩한 문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은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그래서 교육은 계급과 종교에 비해 훨씬 세련된 착취 도구로 작동하기도 한다. 계급이 혈통에 의해 결정되었던 중세와 다르게, 노력과 재능에 의해 후천적으로 지위를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은 당시엔 매우 혁명적인 사상이었다. 그리고 노력을 추동하고 재능을 계량해 선발하는 것은 근대 교육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다.


이제 아이들은 여전히 특정한 사회적 환경 - 귀족, 상인 혹은 수공업자의 자식으로서 - 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그가 나중에 무엇이 될 것인지는 적어도 "원칙적"적으로 출생에 의해 미리 결정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생각은 특히 시민계급에게 만연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출생의 원칙 대신에 개인의 업적이라는 원칙이 관철된 귀족계급의 특권은 깨뜨려질 수 있으며 자신들의 사회적 신분상승도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헤르만 기섹케, 근대교육의 종말 중).


마이클 영(1915~2002)과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은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능력주의)"라는 단어를 통해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있다며 비판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또한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능력인 지성(지능?)이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져 마치 우월과 열등을 나누는 인종주의처럼 작동하고 있다면 '지성의 인종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종 차별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 낸 개념일 뿐이다. 인종이 지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되는 판검사는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범죄자가 그 존재의 이유가 된다. 그다음으로 똑똑한 의사는 몸이 아픈 환자가 없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교육문명사회에서 교육은 우열과 열등을 나누는 기준을 제공한다.

교육 문명의 다음은 무엇일까? 12월 말 출간 예정인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의 저자로서 난 교육 문명의 역설이 능력을 무시하는 “백수문명”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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