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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Jan 10. 2021

열아홉 일기

사춘기의 끝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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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자퇴를 한 딸이 쓴 글입니다. 딸의 허락을 득하고 올립니다. 만약 제가 글을 잘 쓴다면 그건 모두 딸을 닮아서 입니다.


열아홉이 되었다.

미성숙과 성숙 사이 애매하게 걸쳐져 있는 나이. 성인이 되기까지 일 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마냥 좋아할 수 없는 시기다. 좋기는커녕 대한민국에서는 조급해하고, 불안해하고, 끝도 없이 흔들리고 그런 것들을 반복해야만 성인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는 고등학교 3학년. 스스로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내가 아슬아슬한 열아홉이 되었다.

모든 변화들은 천천히 이루어진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 해가 넘어가는 그 짧은 순간에 나라는 사람은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연락이 많이 왔다. 열아홉이 된 소감을 물어보는 시시콜콜한 문자들. 연초 분위기에 잔뜩 들떠있던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어제랑 똑같은데, 딱 하루가 지났다고 나이만 먹었다. 어렸을 때는 한 살씩 먹어갈수록 좋다고 웃었는데, 이제는 그 기억도 감정도 흐릿했다. 한참을 핸드폰 잡고 머뭇거리다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답장을 전송했다. ‘나 너무 착잡해.’ 모두가 행복하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전할 동안 나는 노트북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무겁게 멍을 때렸다.

잘해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묵직하게 마음을 두드렸다. 몇 번 장난으로 던졌던 말이었으나 그 무게가 달랐다. 고등학교 교무실에 앉아 자퇴서를 쓸 당시에도 들지 않던 물음이다. 새로운 글 한 편을 시작할 때도, 정신 차리고 공부하기 위해 독서실에 등록했을 때도 해본 적 없는 고민이었다. 늘 나는 자신 있었다. 내가 선택한 길을 열심히 달려갈 자신이, 있었다. 이제 책임을 질 나이라고 생각했다. 십 대 후반이 된 이상 나는 물러날 곳이 없었고 도망치면 안 됐다. 까마득히 멀게 느껴지던 열아홉이 되고 나서 나는, 그 짧은 시간에 많이 울었다. 예상치 못한 부담감이 나를 무시무시하게 짓눌렀다. 고작 며칠 사이 눈물도 피도 감정도 흘리니 무기력했다. 속상했다. 그 많던 자신감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손에 붙잡을 수 있다면 잡고 싶었다. 나는 이제 고작 가벼운 바람 한 번에도 흔들리는, 나약한 열아홉이다.

문예창작과 진학이 내 삶에서 가장 큰 목표였다. 글을 쓰는 것이 좋았다. 글자와 단어와, 문장과 문단을 써내고 조합하며 머릿속에 가득 들어있던 신념과 사랑을 그려내는 게 행복했다. 또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좋아하면 기뻤다. 단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답답했다. 매일 카페에 출석도장을 찍고 타자를 쳤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따뜻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건 불안한 내 인생을 꽉 잡아주니까. 때때로 내가 쓴 글에 내가 위로를 받을 때도 많았다. 성공에 대한 욕심이 없던 나는 점차 마음이 부풀렸다. 높이 올라가고 싶었다. 내 글을 읽고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하면 좋을 것 같았다. 더 많이 위로를 받으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이 길로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나는 첫 발을 디뎠다. 대학을 가자. 더 많이 배우고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으니. 바람을 넣은 풍선처럼 처음으로 마음먹은 욕심이라는 건, 점차 크기를 더해갔다. 하루에 글을 한 편씩 써댔다. 시작을 하면 무조건 끝을 봤다. 머리 싸매고 새벽마다 앓는 한이 있어도 좋았다. 그래도 마냥 행복했다.

그런데 공기를 너무 많이 주입한 풍선은 터지기 마련이다. 혹은, 작은 구멍 하나에도 쑥쑥 작아진다. 요즘 내가 그랬다. 대학을 가지 못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압박감에 눌려 내 갈망은 갈수록 작아졌다. 더 이상 글을 쓰기가 싫었다. 최근 몇 달 동안 완결 낸 글이 정말 단 한 개도 없었다. 더 잘 써야 해, 더 예뻐야 해. 수백 번 되뇌며 써낸 글은 줄줄이 길어지기만 했다. 마음에 들지도 않은 글이 몇 만 자 단위로 분량을 늘려가고, 나는 지쳐버렸다. 하고 싶지가 않았다. 글을 써내는 족족 휴지통에 처박고 노트북은 덮어서 책상 한 편에 방치했다. 손이 떨릴 정도로 노트북을 열기가 힘들었다. 당연하게도 내 작업은 진도가 안 나갔고…… 뭐를 쓰든 망했다.

그리고 이 글은 내가 일 년 만에 쓰는 에세이다. 내가 내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쓰는, 어쩌면 나의 다짐이다. 또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또래들에게 선물하는 글이기도 하다. 이 에세이를 시작으로 다시 글을 사랑해 보려고 한다. 내가 하는 일들에 확신을 가져보려고 한다. 성공해보려고 한다. 피할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다면 용기를 가지고 부딪쳐봐야 한다. 쓰러질지언정 주저앉지는 말자고, 같이 달려보자고 당신께 손을 내민다. 힘을 내자고.

열아홉의 나는 앞으로 펼쳐질 모든 것이 두렵다. 하지만 꼭 딛고 일어서 이겨내고, 완전한 성인의 모습으로 스물을 맞이할 것이다. 내 새해 소망은 모든 사람들의 행복과 기쁨이고, 그렇게 되기 위해 나부터 스타트를 끊는다.

2021년 1월 10일, 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 에세이가 쓰고 싶어서 시작한 글입니다. 새해를 맞아 모두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짧지만 진심이 담긴 글로 마음을 전합니다. 올 한 해는 당신이 걱정 따위 없는, 매일이 찬란한 날들의 연속이길 기도할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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