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백수의 좌충우돌, 클럽하우스 배회기
나름 얼리하게 세상을 살아온 내가 이번엔 뒷북을 쳤다. 신성한 설 명절 노동을 마치고 페이스북을 보고 있는데, 지인이 신세계를 발견했다며 클럽하우스를 소개했다. 클럽하우스? 뭐지? 온라인에 도박장이 생긴 건가? 평소 "클럽"이랑 친해본 적이 없는 나는 도박장을 뜻하는 은어, "하우스"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일단 앱을 다운받아 실행해 봤다. 당연하게 가입을 하란다. 슬쩍 클럽하우스 검색을 해 보니 초대를 받지 않으면 가입이 안되고, 초대장이 고가(?)에 거래가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젠 뒷북도 못 치는 건가?"
그리고 잊어버렸다. 하루가 지나고 나서 클럽하우스 앱에서 알람이 왔다. 대충 보니 한 선배가 나를 아는 사람이라고 인증을 해 주었고, 클럽하우스 이용이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아싸~ 이제부터 뒷북을 한번 쳐 볼까? 앱을 실행했다. 낮 선 인터페이스, 낯익은 이름이 하나 보였다. 그냥 손 가는 대로 눌러보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누른 그 지인과 비공개 방을 연 것이었다. 그 지인도 클럽하우스가 뭔가 하고 기웃거리고 있는데, 마침 내가 불러서 들어왔다고 했다. 둘이 한 시간 가량 떠들었다. 둘이 하는 대화니 전화와 다를 바 없었다. 클럽하우스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주로 서로 사는 얘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아~ 클럽하우스는 그냥 전화 같은 거구나~
라고 생각하고 며칠을 보내고 있는데, 클럽하우스에서 '이상한' 알람이 계속 날아왔다. 알람은 대부분 영어였다. "가뜩이나 과로에 시달리는 백수 인생에 끼어들지 마!" 난 그렇게 며칠 동안 클럽하우스에서 보내는 구애를 거절했다. 계속 울려대는 클럽하우스 알람... 그중 익숙한 한글이 보였다. 채널A의 한 아나운서가 퇴근길에 서로 즉석에서 노래를 신청하고 불러주자며 연 방이었다. 들어가 봤다. 퇴근 시간, 난 선배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혼자 일을 하고 있었다. 천 명 가까운 사람이 방에 들어와 있었고, 10명이 넘는 스피커가 노래를 신청하고, 노래를 불러주고 있었다. 마침 차에 상비약처럼 늘 가지고 다니는 기타가 떠올랐다.
나도 참여해 볼까? 일단 먼저 간을 보고...
아무리 얼굴이 안 보이는 클럽하우스지만, 천 명 앞에서 준비도 되지 않은 노래를 부를 수는 없었다. 난 좋은 말로 세심하고, 나쁜 말로 쪼잔하고, 그 둘을 상쇄시켜 표현하면 소심하다. 결국 간만 보고 클럽하우스를 나왔다. 뭔가 아쉬웠다.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자기 얘기를 하는데, 왜 나한테는 그런 용기가 없을까? 그 아쉬움이 집에 돌아온 나를 다시 클럽하우스로 이끌었다. 내가 손을 들고 얘기할 수 있는 작고 아담한 방도 있지 않을까? 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좋아하는 웹툰을 서로 추천하는 방이었다. 웹툰? 일단 만화라고 하니 부담이 적었다. 그리고 맞장구쳐 줄 사람만 있다면 난 만화 얘기로 밤을 새울 수도 있는 투 마치 토커였다. 그래서 방에 들어갔다. 리스너로 대략 1시간 동안 간을 보다가 용기를 내 손을 들었다. 마침 서로 이름과 얼굴만 겨우 알고 있는 지인 하나가 스피커로 말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피커로 다시 2시간 가까이 기다리고 나니 나에게도 말할 기회가 주어졌다.
저는 대학 때 만화가게를 했구요. 그래서 지금도 만화를 좋아하구요. 제가 좋아하는 웹툰은 "유미의 세포들", "미래의 시간", "고수"구요. 태권 V와 관련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는데, 함 들어보실래요?
만화를 주로 웹툰으로 소비해 온 2~30대 모더레이터(moderator, 클럽하우스에서 대화를 이끄는 사회자)들은 고맙게도 50대 쉰세대의 만화 이야기를 인내를 갖고 경청해 주었다. 웹툰에서 시작해 과거 대본소 시절의 만화 역사까지 꿰고 있는 덕후들도 몇 있었다. 그렇게 웹툰으로 시작한 만화 이야기는 새벽 1시를 훌쩍 넘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Never Ending Story...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방을 열고 지켰던 모더레이터는 밤이 늦었으니 그만 방을 닫자고 제안했다. 웹툰 방은 매주 수요일 9시마다 열 계획이니 다음에 또 와 달라는 말도 해 주었다. 나이가 드니 눈치가 보인다. 저 말이 진심일까? 아니면 예의상 하는 말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클럽하우스에 중독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쩌면 도박보다 더한...
그리고 어제(2월 19일) 밤, 어떤 분이 거제도 출장을 다녀오면서 왜 서울에 살고 있는지 현타가 왔다며 방을 열고 있었다. 마침 웹툰 방에서 봤던 지인도 그 방에 스피커로 참여하고 있었다. 들어가서 일단 눈치를 봤다. 어제 웹툰 방에서 떨었던 나의 주접에 대해 그 지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 지인이 나간 후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스피커로 참여했다. 어제보다는 빨리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수도권 집중에 대한 정말 유익한 대화가 오고 갔다.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서울이 아니면 모두 지방이라고 인식할 정도로 수도권 집중이 도를 넘어섰다.
다음부터는 메모를 하면서 들어야 하나? 주옥같은 경험과 생각들, 그리고 정책 제안까지... 그러는 사이 새벽 2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다음을 기약하며 방을 닫았고, 난 클럽하우스를 통해 만난 사람들을 팔로우했다. 클럽하우스가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모르겠으나 신세계인 것만은 분명했다. 어쨌든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중독은 경계해야 한다. 앞으로 삶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