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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Apr 11. 2021

공정하다는 착각

작년에 출간된 마이클 샌델의 책 "공정하다는 착각"의 영어 원제는 "능력주의의 횡포(Tyranyy of Merit)"이다. 책을 출판하는 데 있어 글은 저자의 영역이지만, 제목은 책을 팔아야 하는 출판사의 영역이다. 아마도 한때 정의 신드롬을 일으켰던 샌델 교수의 후작을 출간하는 출판사의 입장에선 제목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능력주의의 횡포"라는 제목을 그대로 사용했다면 한국의 독자들은 샌델의 책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교육을 중심으로 한 능력주의 담론은 한국에서 "운도 실력이다"라고 주장하는 Ableism과 "실력은 운이다"라고 주장하는 Meritocracy 사이에 존재한다. 교육 = 입사라는 공식이 작동하고 있는 한국에서 실력이 운일 수도 있다는 주장은 다소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다. 실력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취하는 것이어야 교육이 영빨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도 실력이라고 주장했던 정유라의 페이스북 글로 인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Ableism에 반대하는 공감대는 충분히 합의가 된 듯하다. 정유라의 페이스북 글은 돌고 돌아 촛불 혁명의 기폭제가 되었으니 말이다. 미투 앞에 내로라하는 장사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처럼, 정유라의 발언으로 인해 촉발된 공정 담론은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유령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면 공정은 절대적 개념일까, 상대적 개념일까? 막 집어 든 책에 그 질문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발견해 여기에 소개한다.


공정의 두 차원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는 소득 소득, 학력, 인터넷 접속 같은 다양한 자산이 사회 집단이나 나라별로 분포된 양상을 보는 상대적 정의의 관념, 이것은 본질상 비교에 역점을 둔다.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의 상대적 지위에 초점을 맞추며 모종의 평등을 겨냥한다. 둘째는 구김살 없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 역량과 자유가 확보되었는가를 보는 절대적 정의의 관념이다.
상대적 정의의 요구는 절대적 정의의 권리와 충돌하기가 쉽다. 이것을 정치적 용어로 바꿔서 말하면, 더 많은 지분의 소득과 권력을 손에 넣으려는 전 세계 중산층의 각축은 힘없는 빈민의 기본권을 망가뜨리면서 이루어질 때가 많다. (볼프강 작스 외, "반자본 발전 사전" 서문 중)


애플빠인 나는 오래전부터 애플 워치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가 쓰던 아이폰을 감지덕지 물려 써 오던 아이들이 어느날부터 '공정성'을 내 세우며 새 아이폰을 사 달라고 요구하자, 난 아이들이 누리지 못하는 소비의 호사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자유와 평등이 그렇듯, 결과로써의 공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은 불공정이 만든 현실에 분노해야 한다. 누군가의 공정하지 못함이 다수의 물리적, 심리적 피해로 이어졌을 때 그 부당함을 소리 높여 알려야 한다. 동시에 일상에서 자신의 공정함을 성찰하는 태도는 우리 모두가 기계적이고 상대적인 공정에서 벗어나는 길로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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