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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Dec 24. 2021

드라마는 알고 있다! 교육이 막장이라는 사실을...

tvN 드라마 <멜랑꼴리아> 리뷰

아버진 늘 아버지가 원하는 인생을 저한테 살라고 하시죠.
제가 뭘 원하는진 왜 한 번도 묻지 않으세요?
- <멜랑꼴리아> 14화, 승유의 대사 -


2018 <스카이 캐슬>, 2020 <펜트하우스>, 그리고 2021 <멜랑꼴리아>... 이 세 드라마의 공통점은 입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의 교육 문제를 다루었다는 것이다. 2018년 <스카이 캐슬>은 불륜이나 출생의 비밀이 아닌 교육을 주제로도 얼마든지 막장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펜트하우스>는 그런 <스카이 캐슬>보다 더 막장이라는 말에 차마 볼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라는 말은 사실 핑계고 사실 보고 싶어 미치겠으나 TV는 늘 거실 마님께서 차지하고 있고, "넷플릭스"에는 <펜트하우스>가 없고... 그래서 아직 못 봤다. ㅠㅠ

눈썰미가 있는 분들은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멜랑꼴리아>도 "넷플릭스"에 없는데 어떻게 보고 있냐고...  


뜨끔!


쪽 팔려서 안 밝히려고 했는데, 사실 내가 현재 구독하고 있는 OTT 서비스는 무려 4개다. "넷플릭스"에 이어 아이들 등쌀에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하게 되었고, 원래 서바이벌을 멀리하던 내가 유튜브를 통해 <슈퍼밴드2>를 접한 후 제대로 보고 싶어서 딸이 구독하고 있는 "티빙"에 기생하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 유튜브에서 김수현이 출연한 <어느 날>이 하도 눈을 어지럽히길래 가족들 몰래 "쿠팡플레이"를 구독하기 시작했다. 정리하면 "넷플릭스"는 대세를 따르기 위해, "디즈니 플러스"는 아이들 등쌀에, "티빙"과 "쿠팡플레이"는 유튜브가 하도 졸라서 구독하게 되었다. "애플 TV"는 또 어떤 킬러 콘텐츠로 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지...

내 아이폰 첫 번째 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OTT 4형제...

문화 콘텐츠는 늘 시대의 약점을 비집고 들어온다. 무슨 큰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기보다는 그래야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시대의 약점은 불륜도 출생의 비밀도 아닌 "공정"이다. 그래서 문화 콘텐츠는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계급에 따라 서로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공정성"과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이라고 믿어 의심하는 공정성" 사이를 노린다. 공정성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소재는 뭐니뭐니 해도 교육이다. 이미 다양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기득권을 재생산하기 위한 도구이자 무기로 교육을 사용한다. 기득권이 아닌 박탈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반대다. 기득권 안으로 어떻게든 기어들어가기 위해 마치 로또를 사듯 교육에 돈과 시간을 배팅한다.


<스카이 캐슬>, <펜트하우스>, 그리고 <멜랑꼴리아>는 사실 막장 드라마가 아니다. 막장 드라마라는 용어에는 막장의 책임을 드라마에 전가하는 듯한 뉘앙스가 묻어 있다. 그렇지 않다. 드라마가 막장이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 자체가 막장이기 때문이다. 불륜이나 출생의 비밀은 일반적이지 않지만, 입시 경쟁 교육은 우리에게 마치 공기처럼 익숙하다. 그런 교육을 주제로 만들었다면 그건 "막장 드라마"가 아니라, "막장 교육" 드라마라고 칭하는 것이 맞다.


<멜랑꼴리아>는 "tvN" 수목 드라마로 2021년 11월 10일부터 시작해 어제 14화까지 달려왔다. 나처럼 정주행이 불가능한 사람은 "티빙"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티빙"을 광고하려는 의도는 1도 없다. 다만 쓸데없이 드라마 스포에 내 글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제 드라마가 가르쳐 주고 있는 정답을 말할 시간이다. 사실 드라마가 굳이 가르쳐 주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다만 그 정답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에 늘 오답을 선택한다.


<멜랑꼴리아>에는 주인공 백승유 외에도 두 명의 아이가 더 등장한다. 국회의원 아빠와 영화배우 엄마를 둔 예린과, 적자로 태어나 아성학원을 통해 계급 상승을 노리는 노정아 교장의 딸 진아... 예린은 수학 천재로 태어난 승유를 동경하는 동시해 질투한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교 1등에 매달린다. 예린의 부모는 그런 예린을 위해, 아니 그 이전부터 노정아 교장과 결탁해 시험 문제를 빼 돌리고 있었다. 더 이상 시험 문제 미리 얻을 수 없게 되자, 예린이는 폭주한다.


엄마 : 너 이거 뭐야? 너 이거 ADHD에 먹는 약 맞지? 너 이거 어디서 났어?
예린 :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나 머리 좋게 낳아 줬으면, 이렇게 약 먹으면서 공부할 필요도 없었고, 시험 때마다 전전긍긍 1등 못하면 어떡하지 하면서 벌벌 떨 필요도 없어서.
엄마 : 네 머리가 어때서, 그리고 뒷바라지해 주잖아. 너 성적 잘 받으라고 엄마 아빠가 온갖 거 다 해가지고 다 바치잖아, 지금!
예린 : 이번에도 해 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 전교 1등 만들어, 아니면 상관 마! 내가 약을 먹든 뭘 하든...
예린을 빌런으로  만든 건 누구일까? (5화)

그리고 예린은 자신의 아빠와 노정아 교장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를 목격한 후, 마침내 자식에 대한 소위 어른들의 걱정이 진정으로 자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예린 : 엄마 몰래 두 사람, 그런 사이었어요?
아빠 : 아니 저기 예린아, 그게 아니라
노정아 : 네 아빠가 나한테 약속한 게 있단다. 널 잘 봐주면 나한테 평생 충성하겠다고. 그 약속을 지킨 거뿐이란다.
아빠 : 입 다물어요. 예린아 듣지 마 아빠가 다 설명할 테니까
노정아 : 너 어린애야? 무슨 말인지 몰라? 거래를 했다는 거잖아 널 위해서...
예린 : 널 위해서?, 너 때문에? 거짓말하지 마! 다 진짠 줄 알았어. 나 잘되라고 그러는 거다. 날 위해서 그런 거다. 잘해야 된다. 근데, 말해봐요. 이게 진짜 다 날 위한 거였어? 아냐, 거짓말이야. 당신이 날 속인 거야. 도대체 언제까지 속일 작정이었어? 언제까지...
아빠 : 예린아, 저기 그게...
예린 : 나 이제 저 여자한테 이용 안 당해. 아빠도 더는 날 위해서라고 하지 마요.  
예린의 깨달음이 실천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13화)

한편, 엄마 노정아에 의해 사이코패스로 성장하고 있는 진아는 친구의 발표 아이디어를 표절하고, 명품 시계를 훔치는 등 소소한(?) 사고를 치다가 결국 14화에서 대형 사고를 치고 만다. 자신의 비밀을 알게 된 있는 친구 시안을 폭행해 의식을 잃게 만든 것이다. 난 <멜랑꼴리아>가 "막장 드라마"인지 아니면 "막장 교육" 드라마인지를 시안의 생사로 판단할 것이다. 작가님, 제발 우리 시안이 살려 주세요~ ㅠㅠ 분노한 노정아 교장은 마침내 딸, 진아에게 자신의 속내를 밝힌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더는 아무것도 망치지 마.
 여기서 더 망치면 그 누구도 가만 안 둬
그게 너라 해도 알아들어?
흑화 한 낭만닥터 김사부의 수쌤, 노정아 (14화)


이제 맨 처음에 화두로 던진 대사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저 대사는 정확히 30년 전 이맘때, 날 강제로 군대에 보내려는 부모님께 한 말이다. 모든 부모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행복의 기준 안에 자식들을 가두려 한다. 나는 그런 아빠가 아니라고 장담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부모는 꼰대가 될 수밖에 없는 원죄를 안고 살아간다.


성재 : 우리 아이가 태어나면 어떨 거 같아? 내 자식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 안 들까?
윤수 : 할 수 있는 걸 다 해서 내 자식 사랑하는 거랑, 남의 자식 피 눈물 흘리게 하면서 내 아이 앞세우는 건 달라.
성재 : 장담은 말자, 유성재 지윤수가 아니라 누구 엄마, 누구 아빠가 돼도 같은 마음 일진 두고 봐야 아는 거니까.


모든 부모는 자식들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다. (6화)

류성재의 질문에 답을 할 수는 없지만 조한혜정 교수가 2010년에 발표한 논문,  "후기 근대 세대 간 갈등과 공생의 전망"을 읽으면 작은 도움은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세대 간 갈등이 존재하지 않은 사회가 있었을까? 모든 인류사회에서는 세대 간 갈등이 존재했을 것이며, 특히 어른이 될 즈음의 청년들 중에는 기성세대가 매우 불합리하며 횡포하다고 느낀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 갈등은 기성세대가 경제 자원과 사회 정치적 권한을 소유하고 있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사회 변화에 따라 기성세대와 자라나는 세대가 가진 경험과 인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변화가 느리고 안정된 사회일수록 세대 간의 갈등은 심각하지 않다. 젊은 세대가 자라서 기성세대가 되면 그들이 누렸던 권한을 이어받기 때문이다. 농경사회처럼 변화가 크지 않은 곳에서는 어른 세대가 부당하고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청년들이 있더라도 그것은 개별적 불만에 그친다. 이 경우 장년 중심의 사회적 질서가 오래 지속된다. 반면 변화가 크고 혼란한 사회일수록 세대 갈등은 높아진다. 기성세대와 자라나는 세대가 겪은 경험과 인식상의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전환기일수록 젊은 세대의 경험과 인식이 중요하다. 그들이 기존 사회의 문제를 인지하고 풀어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조한혜정, 2010 "후기 근대 세대 간 갈등과 공생의 전망").


"선유자익(善遊者溺), 선기자추(善騎者墜)."라는 말이 있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물에 빠지고, 말을 잘 타는 사람이 말에서 떨어진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물에 빠져 익사하지 않는 방법은 대략 두 가지다. 첫째, 물을 멀리하는 것이다. 접시물에도 코를 박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 둘째,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물에 빠졌다면 물에 빠졌다는 것을 먼저 인지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도 두 가지다. 첫째, 어른이 되지 않는 것이다. 물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다. 둘째, 어른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와 무관하게 어른이 되었다면 자신이 꼰대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1980년 소피 마르소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영화 <라붐>에 등장하는 소피 마르소의 엄마는 중학생 딸에게 잔소리를 하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런 엄마가 되고 싶진 않았는데...
<라붐>의 소피 마르소

인간이 물 없이 살 수 없는 것처럼, 꼰대가 아닌 채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꼰대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스스로 꼰대라는 것을 인정하면 적어도 꼰대에서 멀어질 수는 있다. 나의 선의가 자식을 비롯한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선의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버리고, 자식을 걱정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꼰대성을 살필 수 있다면 조금씩 꼰대에서 멀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자식을 사랑하는 나의 사랑이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자식을 위한 것인지... 참고로 영화 <라붐>은 "티빙"을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1980년대, 소피 마르소의 풋풋한 매력에 잠시라도 빠졌던 사람이라면 꼭 다시 보기를 추천한다. 다시 본다면 아마 그때와는 다른 어떤 교훈을 느낄지도 모른다. 어느새 부모가 되어버린 나는 혹시 어렸을 적 부모님을 보며 느꼈던 꼰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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