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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Dec 06. 2023

답이 없는 질문에 대한 답...

<무인도의 디바> 두 번째 후기

18세기를 풍미했던 철학사조 중 하나인 "계몽주의"는 전근대적인 중세 질서와 맞서기 위해 시작되었다. 종교가 정치와 서로 엉켜 붙어 합리적 이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던 시대의 흐름을 폭력적으로 가로막자, 스피노자, 로크, 뉴턴 등은 계몽주의를 통해 근대로 향하는 빛을 밝혔다. 하지만 계몽주의는 상호작용을 허용하지 않는 교육과 유사한 꼰대적 경향성을 갖고 있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지만, 아래로 흐른 물이 수증기가 되어 다시 하늘로 올라 비가 되어 내리지 않는다면 그 당연한 이치는 깨지기 마련이다. 계몽주의를 통해 인간 사회의 저변에 흐르게 된 이성은 증발하지 않고 남아 과잉된 이성의 시대를 열었다.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일찍이 공자는 세 명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했다. 필연이 인간의 의지라면 우연은 자연이 던진 주사위라고 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그것이 부모와 자식의 만남이라고 할지라도 서로 다른 필연이 만들어 낸 우연의 결과이다. 난 다행히 자식을 서울에서 공부시키고 싶은 부모님을 만나 고향인 농촌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까지 나올 수 있었다. 단 한 번도 부모님께 공부를 하고 싶으니 서울로 이사 가자고 졸랐던 적이 없고, 또 부모님을 내 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니 서울에서 대학물을 먹은 것이 내가 노력해서 얻은 필연의 결과라고 여길 수는 없다. 즉, 세 명이 만나 길을 가는 "삼인행"은 우연이고, 그중에 스승이 있다는 "유아사"는 인간의 의지로 만들어 내야 하는 필연이라고 보아야 한다. 공자가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했든, 나는 공자의 이 말을 우연과 필연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하려 한다. <무디바>의 작가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두 번째와 마지막화의 부제를 "우연 VS 필연"으로 달았다.


무인도에 떨어진 목하는 무려 15년 동안 답이 없는 질문을 반복했다. 언제 무인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을 목하가 내릴 수는 없었다.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없던 목하는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다. 순간 우연히 무인도로 떠밀려 온 아이스박스를 발견하고, 그 안에 든 유통기한이 훌쩍 지난 라면을 끓여 먹으며 불확실한 5분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깨달으며 15년을 살게 된다. <무인도의 디바>는 15년 동안 무인도에서 버텨온 목하의 필연과 그러한 목하를 무려 15년 동안 찾아 헤맨 기호의 필연이 우연히 만나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드라마다.


인간의 운명은 사실 필연이 아닌 우연이 지배한다.


목하는 손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보며 5분 동안 답이 없는 질문을 잊을 수 있었다고 했다. 아이스박스에 들어 있던 라면을 끓여 먹으며 그 시간은 50분으로 늘어났고, 폭풍에 밀려온 쓰레기들을 치우고 재활용하며 5시간 동안 답이 없는 질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도 했다. <무디바>는 온통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답은 사라지고 질문으로만 채워져 있는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정답을 전혀 계몽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흘렸다. 만약 공자가 이 시대를 살았다면 "삼인행필유아사" 대신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三劇見必有學(삼극견필유학)
세 편의 드라마를 보면 그중에 반드시 배울 것이 있다


내가 <무디바>를 보며 배운 것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답이 없는 질문은 지극히 소모적일 뿐이다.

둘째, 우연과 필연은 동전의 양면처럼 이어져 있다.

셋째, 박은빈은 얼굴도 예쁘고, 연기도 잘 하는데, 노래까지 대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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