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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Feb 22. 2022

꿈을 빼앗아 간... 시대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1화 리뷰

네 꿈을 뺏은 건 내가 아냐, 시대지…


펜싱 선수의 꿈을 키워가고 있던 18살 나희도(김태리 분)는 IMF로 인해 학교 펜싱부가 없어지면서 하루아침에 꿈을 빼앗기게 된다. 항의하는 희도에게 선생님은 네 꿈을 뺏은 건 내가 아니라 시대라고 답한다. 펜싱을 포기하고 공부나 하라는 엄마의 강요에 맞서 희도는 펜싱 라이벌, 고유림이 있는 고등학교로 강제 전학을 당하기 위해 동급생 폭행, 패싸움 가담, 엄마의 옷과 화장품을 훔쳐 성인 나이트까지 출입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결국 희도는 최후의 방법으로 엄마에게 진지하게 자신의 꿈을 말하고 도움을 청하기로 한다.


사고 칠 용기는 있었는데, 엄마를 설득할 용기는 없었어.
나한텐 엄마가 제일 높은 벽일지도 모르겠다.


뻐뜨, 그러나...


희도 : 전학 가고 싶다는 거 진심이야. 나 이대로 시시하게 펜싱 그만두고 싶지 않아. 계속 성적 안 나오고 못하고 있는 거 맞는데, 나 진짜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까 도와줘.
엄마 : 노력하는 게 맞아? (희도가 입었던 옷을 집어던지며) 너 이 옷 입고 어디 갔어? 내 화장품도 손댔지? 화장하고 이 옷 입고 어딜 갔길래 술 냄새 담배 냄새 묻혀 왔어?
희도 : 나이트...
엄마 : 너 미쳤어? 응?
희도 : 미칠 만큼 간절했어. 나이트 가서 경찰한테 걸려서 강제 전학 당할 생각이었어.
엄마 :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고 있어. 이게 노력하는 사람의 태도야? 나희도 너 펜싱 시작할 때 천재 소리 들었어. 누구보다 우월한 시작이었어. 근데 지금 넌 어디 있니? 아직도 펜싱 신동, 거기 머물러 있잖아. 남들이 갈고닦고 나아가는 동안 너 혼자 제자리잖아!
희도 : 나도 그래서 답답하고 미치겠다고!
엄마 : 그럼 죽을 만큼 열심히 했어야지! 나이트나 들락거리고! 야, (만화책, 풀하우스를 찢어 던지며) 이딴 만화책이나 보고 있으면서 무슨 펜싱이고 전학이야!
희도 : (화를 내며) 엄마가 뭔데 풀하우스를 찢어? 엄마가 저 만화책보다 나은 게 있는 줄 알아? 엄마 내 경기 보러 한 번도 안 왔지? 나 경기 지고 집에 와서 혼자 속상할 때마다 나 위로해 줬던 거 엄마가 아니라 저 만화책이었어. 근데 무슨 자격으로 저걸 찢냐고! 뭐가 나아서! 엄마한테 오늘 전학 가고 싶다는 말 하려고 내가 무슨 용기를 냈는지 모르지? 강제전학 가려고 나이트 갈 때보다 엄마랑 대화할 때 더 큰 용기가 필요하더라. 엄마는 나한테 그런 존재야. 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


만화책을 찢어서 시원하게 날려 주시는 어머니...


부모와 자식은 지식의 차이, 경험의 차이, 시대 인식의 차이로 인해 늘 서로 다른 눈높이에서 대화를 한다. 그래서 늘 서로에 대한 절박함이 만나지 못하고 어긋난다. 그 가운데에는 언제나 사랑이라는 증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개입되어 있다. 나 또한 사춘기 딸로부터 사랑이라는 간섭을 멈춰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얼마 전 성인이 된 후 새벽 두 시가 넘었는데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딸이 걱정되어 참다 참다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딸은 술에 취해 길바닥에 누워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곤 전화를 끊었다. 오만가지 상념이 머릿속을 어지렵혔다. 잠이 올 턱이 없었다. 다행히 새벽 4시가 조금 넘어 딸이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후로도 한동안 잠이 들지 못했다.


불현듯, 내가 대학생일 때 생각이 났다. 한 번은 데모를 하다 종로경찰서에 잡혀간 적이 있다. 부모님은 경찰서 앞에서 내 아들 내놓으라고 형사와 멱살잡이까지 하셨다고 했다. 그해 겨울, 부모님은 학교에 강제로 휴학계를 내고 나를 군대에 보내셨다. 보통 남자들은 군대를 갔다 오면 철이 든다고 하는데, 난 제대 후 총학생회에서 일하며 손을 크게 다쳐 새벽에 붕대를 칭칭 감고 집에 들어온 적도 있다. 학교 근처에 있던 서울대학병원에서는 입원실이 없어서 응급처치만 했고, 다른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아버지와 함께 집 앞에 있는 한일병원에 갔다. 붕대에 가려진 내 손의 상처를 본 아버지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표정은 화가 난 표정이 아니었다. 원래 깊게 패여있는 아버지의 눈이 더 깊숙이 패여 들어가 정확한 감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난 나의 대학시절을 생각하며 느꼈다. 이것은 그저 어쩔 수 없는 부모의 업보라고...


김태리와 남주혁... 두 배우 모두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18살 희도와 훗날 멜로 라인을 형성할 것으로 보이는 22살 백이진(남주혁 분)은 성인 나이트클럽에서 부킹 당해 들어온 희도를 강제로 데리고 나온다. 왜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냐고 소리치는 희도에게 이진은 이렇게 말한다.


  법이 미성년자를 보호하는  알아?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야.  여기서 무슨 일에 휘말리는 상상 했어? 실제로 일어날 일이  상상의 범주 안에나 있을  같아? 전혀 아니야. 이런  오면  인생에 없어도 되는 , 없어야 되는 , 없는  훨씬 나은 일들이 생겨. 나쁜 일을 저지를  성인의 상상력과 미성년자의 상상력이 천지 차이라서...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내가 경험한 과거뿐이다. 사실 기억에 의지해야만 하는 과거도 확실하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현재는 더 모르겠고, 내일은 더더더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익숙한 과거에 의존해 익숙하지 않은 현실을 재단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억압한다. 우리를 고통으로 내몰고 있는 대부분의 사회문제는 한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시대와 그것을 어찌할 수 있다고 믿는 개인으로 인해 발생한다.


1998년 IMF는 많은 사람을 꿈을 빼앗았다. 그때는 그래도 빼앗길 꿈이라도 있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누군가에게 빼앗길 꿈이 있기는 한가? 혹시 꿈을 직업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시대는 아이들에게 꿈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꿈이라는 개념 자체를 지워버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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