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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Jun 24. 2023

부모의 업보…

한 번은…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하고, 후배들이랑 술을 마신 적이 있다.

뭐, 그때는 술을 마시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제대를 하고 돌아와 보니

막걸리와 소주를 마시는 후배들이 없었다.

그래서 후배들은 맥주를 마시고,

나는 혼자 소주를 마셨다.

그때만 해도 어지간하면 술값을 선배들이 내야 했던 터라

술값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다는 절박함도 없지 않았다.


혼자만 소주를 마셨으면 그렇게 취하도록 마시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지금 떠올리려고 하는 그날은

마침 나랑 비슷한 연배의 술집 사장님이 합석을 했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소주잔을 부딪히자 난 서서히 이성을 잃어갔다.

술 잘 마신다는 술집 사장님의 한 마디가 불을 지피기도 했고,

무엇보다 술값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난 음악성을 무시하면 수긍을 했지만,

주량을 무시하면 참지 않았다.

그리고, 소주는 꺾어 마시는 게 아니라는 근거 없는 소신도 있었다.

잔이 채워지기가 무섭게 소주를 한 입에 털어 넣었던 나는

술을 마시기 시작한 지 대략 두 시간여 만에 장렬하게 전사했다.

후배의 등에 업히며 난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나 오늘 못 들어간다고 우리 집에 전화 좀…


추측컨대 그 시간이 아마 8시가 조금 넘었던 것 같다.

9시도 안 됐는데 꽐라가 돼서 집에 못 들어온다는 후배의 말을 부모님은 믿지 않으셨다.

언젠가처럼 또 데모하다가 경찰서에 잡혀 갔을 거라고 생각하셨을지도…

후배 자취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속이 쓰렸고, 정신이 없었다. 눈을 떠 보니 아버지였다.


희태야, 일어나! 집에 가자.
아버지, 저 지금 너무 힘들어요. 자고 내일 들어갈게요. “


아버지는 참았던 화를 터뜨리셨다.


이 놈의 자식! 지금 어디서 술주정이야!
빨리 일어나 잠은 집에서 자야지! “


난 할 수 없이 일어나 아버지 차를 타고 집에 왔다.

오는 사이 술이 다 깼다.

집에 도착한 시간이 채 10시가 안 되었던 것 같다.

술과 함께 잠도 다 깼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술에 취해 꽐라가 되고 깬 시간이 한참 술을 마실 시간인 밤 10시라니…

마치 내 인생에 하루를 공짜로 선물 받은 느낌이었다.


현실로 돌아와서…

성인이 되고 외박을 밥 먹듯이 하는 딸에게 사정을 했다.

제발 잠은 집에 와서 자라고, 험한 세상에 네가 집에 안 들어오면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온다고…

물론 딸이 안 들어와도 코까지 골며 잘 잔다.

가끔 내 코 고는 소리에 깨서 딸이 방에 없으면...

걱정이 돼 잠을 설치다가 또 코를 곤다.

결국 협박과 사정을 곁들여 어쨌든 앞으로 외박을 안 하겠다는 딸의 다짐을 받아냈다.


그리고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방문을 열어보니 딸이 방에 없었다.

전화를 거니 바로 신호가 꺼졌다.

카톡에 남기고 싶은 잔소리가 태산이었지만, 꾹 참고 그저 이름만 불렀다.


은기야!


일을 하러 카페에 나왔는데 10시쯤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최대한 시크하게 전화를 받았다.


아빠, 나 지금 집이야.
지금까지 술 마시다 들어왔으니까 외박은 안 한 거야…

주정이 곁들여진 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지만,

어쩌랴, 이 모든 것이 부모의 업보인 것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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