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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Dec 26. 2023

마을, 교육, 그리고 공동체 2

1부 "몽상이 현실로"

몽상이 현실로


정확히 2012년 5월 21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처음으로 ‘지역사회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은평구청 기획상황실에 은평의 민과 관과 학이 함께 모였던 때가… 그 자리에는 녹번종합사회복지관 오은석 관장님과 조은희 팀장님, 마을N도서관 이미경 대표님, 평생학습관 김미윤 팀장님, 서부교육지원청 프로젝트 조정자였던 정용기 선생님, 서울시립 은평청소년수련관 조정현 부장님, 은평학부모네트워크(이하 은학네) 홍기복, 유성룡, 정상용 선생님, 역촌초등학교 김동찬 선생님, 은평구 지역사회 교육전문가 대표 고정원 선생님, 그리고 당시 은평구청 정책보좌관이었던 저와 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오리발질을 했던 교육복지과 박남춘 과장님, 김수지 팀장님, 채지현, 이지영 주무관님이 있었습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여전히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분도 계시지만, 다른 자리, 다른 위치에서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분도 계십니다. 조정현 부장님은 갈현 청소년문화의집, ‘쉼쉼’ 관장님이, 조은희 팀장님은 은평구청 정책연구단 복지정책관이, 정용기 선생님은 성북의 국공립어린이집 원장님이, 홍기복 선생님은 충암중학교 교장선생님이, 이미경 대표님은 은평구민을 대표하는 구의원님이 되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당시 거버넌스는 매우 낯선 단어였습니다. 단지 은평의 교육 시민단체인 은학네는 교육경비보조금에 대한 다양한 문제 제기를 했을 뿐이고, 당시 민선 5기 은평구청을 이끌었던 김우영 전 은평구청장은 2012년 신년사에서도 밝혔듯 교육경비보조금에 대한 개혁 의지가 있었을 뿐입니다. 보통 힘이 작은 이견은 힘이 더 큰 이견에 흡수되어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은 시민단체의 주장과 구청장의 의지가 거버넌스적으로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매우 이례적이고 혁신적인 정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 교육경비보조금 집행에 대한 이견

2012년 1월, 김우영 은평구청장은 신년사에서 교육경비보조금으로 학교의 시설이 아닌 교육콘텐츠에 투자해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갈 수 있도록 예산을 집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힙니다. 


학생들이 억지로 떠밀려서 공부하기보다는 스스로 재미를 붙일 수 있는 프로그램에 예산을 집중 투입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균등배분으로 지원되던 방식에서 벗어나 학교별 ‘자기주도학습’ 공모 등을 통해 우수 프로그램에 지원함으로써 사교육비 부담을 점차 줄여 나가겠습니다.   
- 2012년 김우영 은평구청장 신년사 중 -


은평구청장의 신년사가 발표되자 자기주도학습을 하고 있던 많은 업체들이 은평구청에 제안서를 들이밀었습니다. 동시에 은학네는 자기주도학습은 화장만 바꾼 또 다른 고가의 사교육이라며 구청장의 의지에 강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은평구청에 제안서를 제출한 자기주도학습 업체들은 대부분 은평구가 아닌 강남 언저리에 사업장을 가지고 있었고, 은학네의 지적대로 수혜 학생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예산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자기주도학습 업체에게 돈만 빼가지 말고 은평구에 자기주도학습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제안서를 보완해 달라고 요구했고, 동시에 은학네와 구청장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제3의 대안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2. 지역의 보물을 발굴한 <은평누리축제>

은평구는 2010년, 김우영 구청장이 전국 최연소 구청장으로 당선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참신하고 혁신적인 정책들을 추진해 나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주민참여예산제>였고, 다른 하나는 주민참여형 축제인 <은평누리축제>였습니다. <은평누리축제>는 주민이 구청에서 깔아놓은 무대의 관객으로 그저 박수만 치고 일어서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직접 기획과 집행과 평가에 참여하는 축제였습니다. <은평누리축제>의 백미는 역촌역에서 서부병원으로 이어지는 왕복 6차선 도로를 막고 펼쳐지는 광장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평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기관, 단체, 동아리들이 부스를 차려놓고 은평구민들에게 한껏 자신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2010년 광장축제에 참여한 한 주민은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은평에서만 30년 넘게 살았는데,
은평에 이렇게 다양한 기관, 단체, 동아리들이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네요.


흙 속에 묻혀 있는 진주는 누군가 그 진주를 캐내기 전에는 그저 흙의 한 부분으로만 존재합니다. 마을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이 시대가 요구하는 왜곡된 수월성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마을에는 ‘다양성’이라는 보물이 흙 속에 진주처럼 묻혀 있습니다. 주민이 축제의 주인으로 참여하는 <은평누리축제>는 오랫동안 등잔 밑에 잠자고 있던 은평의 보물들을 깨웠습니다.


저는 사실 외국이나 다른 지역이 가지고 있는 빛나는 성공 사례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 사례가 이식되는 순간 교조주의와의 갈등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한국에 유교의 영향력이 미치는 이유, 같은 자본주의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북유럽처럼 우아(?)하지 않은 이유, 그리고 교육이 사회의 성장이 아니라 개인의 계층상승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유는 그것들이 모두 우리의 요구와 합의에서 비롯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유교는 서민들의 삶보다 옆 나라 중국의 공자나 주자가 어떻게 말했는지가 더 중요한 논쟁거리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자본주의는 미국으로부터 이식되어 다분히 미국스러운 천박함이 묻어 있습니다. 선발이 중심이 되는 근대교육이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것은 조선시대부터였지만, 현재와 같은 형태를 갖춘 것은 일제 강점기를 통해서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와 경제, 그리고 교육에 대한 그 어떠한 저작권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작권자의 허락을 득하기 전에는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더라도 교조주의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작 그 저작권자들은 과거의 유물을 폐기한 채 이전과는 다른 길로 나아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은평누리축제는 다른 지역의 축제를 참조하지도, 이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은평의 민과 관이 함께 노력해 마을이라는 등잔 밑에 있던 보물들을 발굴하고 연결해 축제의 판에 올렸을 뿐입니다.


3.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다시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은평누리축제를 통해 그저 관객에 머물렀던 주민들이 지역사회의 당당한 주체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모처럼 주체로 등장한 주민들이 지역의 소중한 자원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연결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존재조차 몰랐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동안 풀지 못했던 문제들이 풀릴 수도 있고, 지역의 성장을 위한 새로운 의제도 떠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교가 구청에서 지원받은 교육경비보조금으로 마을의 교육콘텐츠를 구매하는 정책을 구상하여 자기주도학습을 반대하는 은학네에 제안했습니다. 최초의 제안은 제시된 그림처럼 매우 투박했습니다.

<교육콘텐츠 연계사업> 최초 구상 (2012년 2월 14일)


저의 제안이 은학네의 생각에 딱 들어맞지는 않았는지, 은학네는 여전히 반대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은학네 활동가 세 분이 비서실장을 찾아와 아무것도 모르는 정책보좌관이 엉뚱한 일을 벌이고 있다며 민원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비서실장에게 불려 간 저는, 그 세 분에게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의 구상에 대해 설명드렸습니다. 한 분은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으셨지만, 다른 한 분은 괜찮은 생각 같다며 한 걸음 물러나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분은 자신과 함께 해 보지 않겠냐고 맞장구를 쳐 주셨습니다. 친구 따라 은평에 와 아는 사람 하나 없던 저는 그 맞장구가 더없이 반가웠습니다. 저는 무슨 얘기를 해도 반대하시는 한 분을 설득하기 위해 무려 5개월 가까이 은평의 많은 전문가와 활동가들을 만나 사업의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그 고민의 끝이 바로 처음에 언급한 ‘교육연구모임’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2012년 5월 21일, 시간은 아마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획상황실에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먼저 제가 구상하고 있는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의 취지에 대해 설명드렸습니다. 설명이 끝나자마자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갑론을박의 요지는 대략 세 가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① 마을과 학교의 협력은 불가능하다.
② 학교가 마을의 교육콘텐츠를 받아들일 리 없다.
③ 차라리 그 예산을 다른 시급한 곳에 투입하자.


논의는 주로 세 번째에 집중되었습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교육경비보조금이 어떻게 쓰여야 한다는 주장이 오고 갔습니다. 그때 역촌초등학교에서 교육복지를 담당하고 있던 한 선생님이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교사들은 문예체(문화, 예술, 체육) 전문가가 아니라 교과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문예체에 대한 학생들의 요구가 계속 늘어나니까 교육청은 교사에게 연수를 통해 문예체도 교사들이 가르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마을에서 이 부분을 지원해 준다면 학교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학교가 마을의 교육콘텐츠를 좋아할 수도 있다고? 순간 논의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방향을 바꾼 것은 자리를 마련한 저의 어설픈 제안도, 교육시민단체의 강한 주장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작은 가능성이 만든 미세한 틈이었습니다. 그 작은 가능성에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움직였습니다. 저는 집단 지성이 가지고 있는 힘을 눈앞에서 목도했습니다.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을 하며 구청과도, 학교와도, 그리고 은평지역사회와 두루두루 관계를 맺고 있던 녹번종합사회복지관 오은석 관장님을 좌장으로 모시고, 그 모임의 이름을 ‘교육연구모임’이라 정했습니다. 그리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정책보좌관의 어설픈 제안을 한번 추진해 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2012년 6월 29일, <교육콘텐츠 연계사업> 설명회 중, 왼쪽부터 채희태 정책보좌관, 녹번종합사회복지관 오은석 관장, 김수지 교육기획팀장


은평의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은 그렇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교육연구모임은 다음의 3가지 관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① 민관학 교육거버넌스의 맹아적 형태로서 교육연구모임이 가지는 위상
② 마을과 학교의 연계, 협력 가능성뿐만 아니라 그 필요성을 구체화한 최초의 모임
③ 교육연구모임을 통해 정책이 갖춰야 할 세 가지 요소인 예산, 정책, 주체가 마련된 점


수당도 받을 수 없는 비공식 모임이었던 <교육연구모임>은 지역사회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8시간 넘게 도시락을 까먹으며 열정적으로 회의를 하고 사업계획을 검토했습니다. 제가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당시를 떠올리는 것은 단순히 추억에 젖기 위함은 아닙니다. 이미 관성의 수레바퀴 위에 올려진 정책의 발전 방안을 논의함에 있어 첫째, 그 정책이 시작된 최초의 의도와, 둘째, 그 의도가 만들어 놓은 예기치 않은 결과와, 마지막으로 셋째, 이미 통제가 어려워진 정책의 매너리즘에 대해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1장에서는 몽상으로 시작했던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이 어떻게 현실이 되었는지 10년 전 교육연구모임에 참여했던 위원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채희태 (전 은평구청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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