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백수 채희태 Dec 23. 2023

마을, 교육, 그리고 공동체 1

은평 교육콘텐츠 연계사업, 10년의 기록

드디어 나왔다. 2012년부터 은평에서 시작했던 <교육콘텐츠 연계사업> 10년을 기록한 사례집, <마을, 교육, 그리고 공동체>가... 대부분의 기초 자치단체는 마을과 학교가 협력하는 혁신교육이나 마을교육공동체 사업을 주로 광역 자치단체나, 교육청, 또는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아 시작한다. 하지만 은평구는 이례적으로 이미 2012년부터 구청이 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편성한 '교육경비 보조금'을 통해 마을과 학교가 협력하는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을 추진해 왔다.


외부 동력에 의존하는 사업은 한계가 있다. 통제가 불가능한 외부 사정이 변하면 작동을 멈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기초자치단체 공무원들은 그러한 경험을 수도 없이 해 왔을 것이다. 그래서 중앙정부나 광역의 필요로 시작한 공모사업에 참여를 주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앙정부나 광역의 생각이 바뀌면 현장의 민원을 고스란히 기초자치단체 공무원들이 감당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원래 가까운 곳에 있는 천사는 악마로 보이고, 멀리 떨어져 있는 악마는 천사로 보이기 마련이다. 혹시 그동안 중앙정부나 광역 자치단체를 등에 업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기초자치단체 공무원에게 소위 민이 주도하는 갑질 거버넌스를 해 온 것은 아닌지 멈춘 김에 잠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11년 전국 최초로 혁신교육지구를 시작했던 경기도는 교육감 색깔이 바뀌면서, 그리고 2015년 서울형 혁신교육을 표방하며 시작한 서울형혁신교육지구도 서울시장이 바뀌면서 예산이 날아갔다. 그 영향으로 혁신교육지구의 작동원리였던 민관학 거버넌스는 민이 빠진 반쪽짜리 거버넌스로 축소되었지만, 지역 자체 동력으로 시작되었던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은 올해로 11년째 변함없이 추진되고 있다.


외부에서 비롯된 동력을 내부 동력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타짜에 나왔던 아귀처럼 혓바닥이 길어지면 험한 꼴을 당할 수도 있으니 말을 아끼고 본격적으로 책 소개를 해 보도록 하겠다. 제목은 <마을, 교육, 그리고 공동체>, 부제는 "은평 교육콘텐츠 연계사업 10년의 기록"으로 잡았다. 누가? 내가! 사례집에 참여한 저자는 "교육콘텐츠 연계사업과 함께 해 온 50명의 민관학"이다. 책의 꼴을 기획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50명 가까운 저자들과 만나 인터뷰하고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정말 만만치 않았다. 다음은 목차를 살펴보자. 목차만 봐도 읽고 싶은 마음이 차 오르지 않는가?


오늘은 맛보기로 서문만 간단히 소개해 보겠다. 혹시라도 실물책을 받아보고 싶다면 <은평구청 시민교육과, 마을학교팀>이나 <은평 마을방과후지원센터>로 연락해 보기 바란다. 개인 배포는 어렵고, 마을교육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기관이라면 말만 잘하면 받아볼 수 있을 것이다.


3차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입체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두 개의 눈을 통해 3차원 공간 속에 존재하는 사물을 입체로 인지할 수 있습니다. 이는 두 개의 귀로 소리의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귀가 두 개인 덕분에 인간은 눈을 감고도 비행기가 어느 쪽에서 출발해 어느 쪽으로 날아가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입체로 인지한 사물은 안타깝게도 인간의 의식 세계를 통과하고 나면 하나의 점이 됩니다. 그 점을 우리는 ‘관점’이라고 부릅니다.

관점은 특정 대상이 형성한 경계의 벽에 맺힌 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관점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예는 바로 장님과 코끼리의 우화입니다. 눈으로 코끼리를 볼 수 없는 장님은 손을 더듬어 코끼리를 인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장님은 각자가 손으로 만진 부분을 코끼리의 전체라고 인식합니다. 장님을 비웃을 일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범하고 있는 오류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자신하는 이성을 이성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상상과 결합시켜 무수히 많은 사회 체계들을 양산해 왔고, 그렇게 형성된 사회 체계와 인간의 관계가 코끼리와 장님의 신세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을 제안했고, 또 누군가는 부족한 제안을 다듬어 그럴듯한 정책이 될 수 있도록 거들었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행정에서는 예산을 편성해 주었고, 마을의 다양한 주민들은 강사로 참여하였으며, 학교는 낯선 마을의 교육콘텐츠를 기꺼이 받아 주었습니다. 덕분에 은평의 아이들은 학교의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마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학교에서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육콘텐츠 연계사업과 관계된 많은 사람들은 각자 교육콘텐츠 연계사업과 관련한 독특한 관점을 형성해 왔을 것입니다.

그 수많은 관점 중 옳거나 그른 관점은 없습니다. 더 우월하거나 열등한 관점도 없습니다.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이 분모 n이라면, 교육콘텐츠 연계사업과 인연을 맺은 수없이 많은 관점들은 모두 분자 1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콘텐츠 연계사업 10년을 기록하는 이유는 지난 10년의 세월 동안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누가 더 우월하고 누가 열등한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교육콘텐츠 연계사업과 관련한 수없이 많은 관점들을 모아 서로서로 연결해 어렴풋하게나마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의 실체를 진단해 보고, 그 진단을 바탕으로 1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10년을 상상하기 위함입니다.

먼저 1부에서는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의 시작을 이끌었던 ‘교육연구모임’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작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어 2부에서는 10년 동안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에 참여해 온 마을강사, 학생, 교사, 그리고 그 사업이 지속가능하도록 예산을 편성하고 지원해 온 은평구청 담당 공무원의 이야기를 들어볼 것입니다. 이렇게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의 시작과 과정 속에서 생성되고, 때로는 단단하게 굳어진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교육콘텐츠 연계사업과 관련한 여러 관점들을 해체하고, 또 연결하고 나면 비로소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의 성과와 한계들을 객관적으로 진단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3부에서는 1부와 2부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이 향후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그 대안들을 고민하고 제안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012년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이 걸음마를 시작할 때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주셨던 홍기복 충암중학교 교장선생님, 그리고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이 정책다운 면모를 갖출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던 김미윤 전 은평구청 정책연구단 단장님이 건강과 개인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

채희태 (전 은평구청 정책실장)


매거진의 이전글 평생교육과 전문성의 역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