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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백수 채희태 Dec 27. 2023

마을, 교육, 그리고 공동체 3

2부 "좌충우돌, 교콘의 10년 분투기"


2부 "좌충우돌, 교콘의 10년 분투기"


<교육콘텐츠 연계사업> 이전의 마을과 학교는 그저 소와 닭의 관계였습니다. 어쩌면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있는 학교의 역할은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마을의 그 구질구질함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작동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학교를 통해 용이 된 아이들은 마을을 떠날 수 있었지만, 용이 되지 못한 아이들은 용이 되지 못했다는 패배감을 안고 마을에 남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교문을 사이에 두고 마을은 마을대로, 또 학교는 학교대로 그것이 교육이고, 그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에 누구도 의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많은 사람들을 교육의 현장에 참여시킴으로써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교육의 허상과 마주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이전과는 다른 마을과 학교의 관계뿐만 아니라 교육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을과 학교를 연계하기 위해 시작한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은 의도하지 않았던 성과들을 이끌어 내기도 했습니다.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은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습니다.


결혼 이후 출산과 육아, 학령기의 자녀를 두게 되면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 양육에 있어서 교육에 중점을 두게 되고 교육과 관련된 정보 및 평생교육, 직업훈련 등을 통해 교육과 관련된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자녀교육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이러한 경력 단절 여성 또는 다양한 분야의 교육강사로 활동하는 지역주민에게 원거리의 일자리가 아닌 지역 내의 맞춤형 일자리를 제공한 것이다.
<본문 85쪽, 마을강사 곽미영>


또한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은평이라는 마을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마을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교육 활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경험인지 알게 되었어요. 내가 교육을 하고 사업을 하는 것이 ‘단순히 일방적으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관계를 맺는 거구나!’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교육할 때 마을에 더 애정을 갖게 되고 모두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수업을 준비하게 되더라고요.
<본문 138~139쪽, 마을강사 임영은>


그리고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을 통해 마을의 다양한 구성원들은 과거와는 다른 교육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다 보니, 수업이 끝나도 아이들이 찾아오거든요. 그러면서 엄마와 선생님의 중간 같은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소통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 가는 제 모습도 발견하게 되고요.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으로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마을도 학교도 아이들도 점점 더 마음을 열어 가게 된 것 같아요.
<본문 159쪽, 마을강사 김선영>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아이들과 만나왔던 학교 선생님들은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을 통해 마을이 가지고 있는 교육의 역할과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교육콘텐츠 같은 경우에는 마을에 살고 있는 인적 자원을 활용해서 하는 거잖아요. 이런 형태가 있는 줄은 몰랐어요. 은평구에 이렇게 이렇게 많은 자원이 있는 줄 몰랐어요. 진짜 놀랐어요. 이 은평의 수많은 자원을 연결시킨 것이 바로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모든 걸 교사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행하는 것이 버거웠었어요. 그런데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을 통해 오히려 전문적으로 연구하신 분들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저희는 그분들을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어떤 매개자라는 생각이 들었죠.
<본문 203~204쪽, 김혜경 선생님>


아이들은 학교 너머 마을의 다양한 교육콘텐츠를 통해 교육을 더 넓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경기에 지는 게 싫어서 체육 수업을 별로 안 좋아했었는데, 마을 선생님이 지는 사람도 열심히 지지해 주셔서 지금은 친구들과 즐겁게 수업을 받고 있어요. 음악도 악보 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싫어했었는데, 마을에서 오신 선생님은 저희가 배우던 방식과 좀 다른 방식으로 가르쳐 주셔서 좋았어요. 아무래도 학교의 선생님들은 매년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방식이 익숙한데, 마을 선생님들은 음악이든, 연극이든, 체육이든 단순히 가르친다기보다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확실히 가르치시는 방법이 다른 거 같아요.
<본문 211~212쪽, 김서우 학생>


그뿐만 아니라 지역의 또 다른 섬으로 존재해 왔던 행정도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을 통해 마을과 시민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잖아요. 그런데 사실 2012년, 10년 전이면 그 시기에 미래를 내다보는 급진적인 행정을 은평에 접목시켰다고 볼 수 있어요. 저는 이 점을 굉장히 높게 평가해요. 대부분 사람들이 목표나 지향점을 갖고 있어도 그것을 실제 행정과 연결시키기 쉽지 않거든요.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의 목표나 지향점이 현장과 행정에 연결되어 실현됐다는 점을 의미 있게 생각해요. 사실 그런 사업은 시작하기도 힘들고 특정 관리자 몇 명의 의지로 실행하기도 매우 어렵거든요. 그런 사업이 10년 동안 지속해 왔다는 것은 구의 예산도 있었겠지만, 지역 내 기반이 갖춰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10년 전에 출발했고 성공적으로 안착될 수 있게 한 은평의 시민의식에 대해 높이 평가합니다.
<본문 233쪽, 은평구청 시민교육과 주서현 과장>


이렇게 은평의 다양한 민과 관, 그리고 학은 지난 10여 년 동안 마을과 학교 사이에서 <교육콘텐츠 연계사업>과 관계를 맺으며 각기 다른 입장과 관점으로 이전과는 다른 교육의 길을 찾아 좌충우돌 분투를 거듭해 왔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많은 분들이 은평에서 시작해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동시에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이 협력해서 추진해 왔던 혁신교육지구가 하루아침에 미래교육지구로 바뀌는 것을 지켜보며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또 다른 마음은 10년이나 묵은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의 새로운 도약과 혁신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학교에 뭘 더 해줄까?’라고 고민했던 그 시절의 순수했던 노력이 그리워지기도 해요. 다시 힘들어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창숙 선생님 말씀처럼 10년 묵은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의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을과 학교가 수줍게 서로를 바라보았던 그때의 순수성을 다시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본문 105쪽, 마을강사 고미경>
10년을 바라봤을 때 교육콘텐츠가 초창기에는 참 잘 진행되었는데 뒤로 갈수록 조금 정체돼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어요. 이제 뭔가 변화를 이루어 다르게 가야 되는 시점과 지금 그 기로에 서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본문 101쪽, 마을강사 서창숙>
마을의 강사가 방과후 강사와 별 다를 바 없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에요. 그래서 이 문제를 개선하려면 누군가가 선구자적으로 이 사업을 만들었듯이 은평 지역 내에서 아니, 더 크게 변화를 일으켜야 해요.
<본문 125쪽, 구립은평마을방과후지원센터 박성원 센터장>
앞으로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이 발전하려면 변화를 줘야 할 것 같아요. 어떻게 변화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행정 쪽에서도 의견을 수렴하고 지역사회에서도 의견을 내주시면 좋겠어요.   
<본문 236~237쪽, 은평구청 시민교육과 정 리 주무관>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 그 오랜 역사를 통해 무언가 안정되었다는 것은 그 시작이 아무리 혁신적이었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역설에 직면하기 마련입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시간이 지나면 낡거나, 변화된 시대의 필요에 의해 쓸모가 없어지기도 합니다. <교육콘텐츠 연계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낡아버린 자부심만으로는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고집할 수는 없습니다. 뒤늦게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을 벤치마킹해 각자의 방식으로 마을과 학교의 협력을 이끌어내며 새로운 혁신을 더해가고 있는 지역도 적지 않습니다.


혁신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이 10년 전에 아무리 혁신적인 정책이었다 하더라도 변화된 현실의 필요와 무관하게 존재한다면 여전히 혁신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은 갈수록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실의 필요에 귀를 기울이고 끊임없이 상호작용해야 합니다. 마을강사, 교사, 학생, 행정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크게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지난 10년 동안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이 진행되어 오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관점이 단단하게 형성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책의 서문에서도 밝혔듯 <교육콘텐츠 연계사업>과 관련한 다양한 관점의 시비우열(是非優劣)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 어떠한 관점도 <교육콘텐츠 연계사업> 전체를 아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은 교육에 관해 마을과 학교, 그리고 행정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에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 견해가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서로의 다름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 바로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이었습니다. 그 결과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은 마을과 학교, 그리고 행정 사이에 막연하게 존재하고 있었던 불신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새로운 ‘차이’가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10년 전과 다른 점은 그 ‘차이’가 변화와 혁신의 동력이 아니라 그저 잠재된 갈등으로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을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마을강사, 교사, 학생, 행정의 관점은 서로 엇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당연합니다. 서로 어긋나 있는 다양한 관점들이 서로 만나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거버넌스적으로 재해석되지 않는다면 수없이 사라져 간 다른 사업이나 정책들처럼 <교육콘텐츠 연계사업>도 하루아침에 사라질지 모릅니다.


독일 출신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작가, 정치 이론가인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다양성을 무시한 ‘합의’는 전체주의와 다르지 않고, ‘합의’를 목표로 하지 않는 다양성은 ‘드러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충고한 바 있습니다. 2부의 목적은 그동안 각각의 입장과 관점 안에서만 맴돌고 있었던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드러내지 않으면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서로의 생각을 알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 없다면 합의는 불가능합니다.


드러냄은 합의로 나아가기 위한 전제입니다. 모쪼록 지난 10년 동안 감춰 있었던 다양한 입장과 관점을 바탕으로 <교육콘텐츠 연계사업>이 새로운 교육 합의로 나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0년 전 <교육연구모임>이 그랬던 것처럼…….


채희태 (전 은평구청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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