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대비한 국가 차원의 사회과학 교육 연구 인프라 구축에 대한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등이 주최하고 [교육부]와 저한테 연구비를 주고 있는 [한국연구재단]이 후원한 <인공지능 시대의 국가 규범과 인문사회 제도 설계> 토론회에 땜빵 토론자로 다녀왔습니다. 모두가 인공지능 시대라는 난세에 올라타지 못해 난리들인데, 인공지능에 관한 다소 색다른 인문학적 통찰을 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색다른 통찰을 한 귀퉁이에서 거들었던 제 토론문을 공유합니다. ^^
: AI 시대에 대비한 국가 차원의 사회과학 교육 연구 인프라 구축에 대한 토론문
채희태(공주대학교 한국농촌교육연구센터)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정도전은 이방원에게 난세에는 난세에 맞서는 자, 난세의 희생자, 그리고 난세를 타는 자, 세 부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인공지능 시대 역시 일종의 난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는 사회학이 이 새로운 난세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논의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사회학은 단순히 인공지능이라는 난세에 올라타기만 해서는 곤란합니다. 사회학은 인공지능 시대에 비판적으로 맞서되, 인공지능으로부터의 소외를 살피고, 동시에 인류가 인공지능을 대하는 사회학적 통찰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욱인 교수님의 발표는 AI 시대 사회과학 교육⋅연구 인프라 구축이라는 시의적절 하면서도 구체적인 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데이터 아카이브의 역사적 전개, 공공데이터 정책의 현황, 그리고 생성형 AI와의 결합 가능성까지 포괄적으로 조망하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발표문 마지막 부분에 제시하신 “개인 저작물이 공공 저작물의 기반임을 재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은 이 시대의 핵심 쟁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아카이브가 단순한 자료 축적을 넘어 In Silico 연구 환경의 기반이 되고 있다는 언급 또한 매우 중요한 지적입니다. 사실 저도 인공지능을 쥐 잡듯이 잡아가며 이 토론문을 겨우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철학적 토대에 관해 몇 가지 생각을 더하고자 합니다. 특히 저작권과 데이터 소유권을 둘러싼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작권의 개념은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가 인쇄기를 발명한 이후, 복제된 콘텐츠가 누구의 소유인가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로크(John Locke)가 체계화한 이른바 소유권(Property) 개념은 “자신의 노동을 통해 만들어낸 것은 자신의 것”이라는 혁명적 사상을 제공했고, 이는 창작자의 지적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는 저작권의 철학적 토대이자 부르주아 혁명의 이론적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공지능 시대에 접어들며 이러한 소유권 개념은 근본적인 한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프롬프트를 입력한 사용자인가, AI 개발사인가, 아니면 학습 데이터를 제공한 원저작자들인가? 더 근본적인 질문은 AI가 학습한 데이터는 개별 창작자의 것인 동시에, 인류가 수천 년간 축적해 온 언어, 문자, 표현 방식이라는 거대한 문명의 유산이라는 것입니다. 이 집단지성의 산물을 특정 기업이나 개인이 독점하는 것이 맞을까요? 발표자께서 지적하신 “개인 저작물이 공공 저작물의 기반”이라는 인식은 바로 이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뉴턴(Isaac Newton)은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 메타, 구글, 오픈AI 같은 거대기술기업(Big Tech) 기업들도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거인은 단지 선배 과학자뿐만 아니라, 바로 인류 전체가 구축해 온 지적 인프라입니다.
우스갯소리로 저는 제 자신을 마크 저커버그가 운영하는 메타의 무임금 노동자라고 말하곤 합니다. 메타는 수억 명의 사용자가 생성하고 공유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2023년 기준 약 170조 원이 넘는 광고 수익을 올렸습니다. 이는 서울시 1년 예산의 3배가 넘는 규모입니다. 이 막대한 부가가치는 과연 누가 창출한 것일까요? 플랫폼을 만든 메타의 공로도 있겠지만, 그 기반에는 인류가 축적해 온 언어, 소통 방식, 문화적 표현이라는 거대한 유산이 있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수많은 선조들에게 그 대가를 지불할 수 없다면, 적어도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 그리고 미래 세대와 그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정의롭지 않을까요?
흥미로운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현재 모든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문자를 입력할 때 사용하는 ‘막대 커서“를 개발한 사람은 바로 제 작은형입니다. 과거 도스 시절의 깜박이는 네모 커서나 언더바 커서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막대 커서가 얼마나 혁신적인지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작은형은 의도적으로 막대 커서에 특허 등록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컴퓨터 사용자가 자유롭게 활용해야 할 기본적인 인터페이스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공익을 저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전 세계 수십억 대의 기기에서 사용되는 이 기능에 단돈 1원의 로열티만 받았더라도 상상할 수 없는 부를 축적했겠지만,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되었을 것입니다.
애플이 아이폰의 둥근 모서리나 바운스백 효과 같은 기능까지 특허로 등록하고 삼성과 수조 원대의 소송을 벌인 현실을 보면, 작은형의 선택은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집니다. 또한 개인의 정당한 권리 추구와 공익 기여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아야 할지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빅데이터는 이미 수많은 저작물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몰릭(2024: 27/238)이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AI 학습 자료에는 실수였든 고의였든 저작권이 있는 자료가 무단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단순히 “저작권 침해인가 아닌가”를 넘어서야 합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AI가 학습한 데이터, 그리고 AI가 생성한 콘텐츠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개인 창작자가 만든 콘텐츠는 그의 노동의 산물입니다. 동시에 그 창작은 과거 인류가 축적한 언어, 문법, 표현 방식 위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콘텐츠가 공공 영역에 공유되고, AI의 학습 데이터가 되어, 다시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창출된 막대한 가치는 특정 AI 기업이 독점합니다.
발표자께서 제시하신 데이터 아카이브 구축의 철학적 토대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구축하는 인프라는 단순히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검색하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의 집단지성을 어떻게 관리하고, 누구와 공유하며, 어떻게 가치를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선택입니다.
현재의 저작권 체계는 개인 창작자의 배타적 소유권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창작의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프롬프트를 입력한 사용자, AI 모델을 개발한 기업, 학습 데이터를 제공한 원저작자, 그리고 인류가 축적해 온 언어와 표현 체계까지. 이 모든 층위가 겹쳐져 있습니다. 발표자께서 지적하신 “과도한 저작권 제한(공공저작물 공개, 고아저작물, 저작권 기간 및 주체 제한)”의 필요성은 바로 이러한 복잡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창작 노동은 보호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인류 공동의 지적 유산을 독점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발표자께서 제시하신 국가 차원의 사회과학 교육⋅연구 인프라 구축 방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그 구축 과정에서 몇 가지 원칙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첫째, 공공 데이터의 진정한 ‘공공성’을 재정의해야 합니다.
발표문에서 언급하신 공공데이터포털, MDIS 같은 인프라는 분명 중요한 성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공 데이터가 결국 특정 기업의 AI 학습 데이터로만 활용되고, 그 가치는 독점된다면 진정한 공공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국가는 데이터의 소유자가 아니라 관리자로서 역할을 재정립해야 합니다. 공공 데이터를 개방하되, 그것을 활용해 창출된 가치의 일부는 다시 공공에 환원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공공 데이터를 활용한 AI 기업에게 수익의 일정 비율을 연구 인프라 구축에 재투자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둘째, 플랫폼 기업의 데이터 환원 의무를 제도화해야 합니다.
메타, 구글, 네이버 같은 플랫폼 기업들은 사용자가 생성한 콘텐츠로 막대한 수익을 올립니다. 이들 기업이 축적한 데이터는 개인 창작물의 집합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록입니다. 유튜브가 콘텐츠 창작자와 수익을 공유하는 모델은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이를 더 확장해서, 플랫폼 기업들이 축적한 데이터의 일부를 익명화하여 공공 연구 인프라에 제공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발표자께서 제안하신 “국가 디지털 통합 아카이브 플랫폼”은 바로 이러한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고 연구자들에게 접근 권한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창작자 보호와 공익 실현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발표문에서 지적하신 “연구 교육 목적 저작권 제한”은 매우 중요한 제안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저작권 모델을 설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AI가 생성한 콘텐츠는 일정 기간(예: 5년) 후 자동으로 퍼블릭 도메인으로 전환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개인 창작자에게는 초기 수익을 보장하되, 장기적으로는 인류의 공유 자산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한 “고아저작물”의 경우, 현재처럼 사장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일정 절차를 거쳐 공공 영역으로 편입시키고, 나중에 저작권자가 나타나면 합리적 보상을 제공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발표자께서 제시하신 “공공저작물 공개” 원칙은 이러한 방향과 맥을 같이한다고 생각합니다.
넷째, 국제적 협력과 표준화가 필요합니다.
데이터와 AI는 국경을 넘어 유통됩니다. 한 국가만의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발표자께서 제안하신 인프라 구축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국제적 데이터 공유 협약, 저작권 조화, AI 윤리 기준 등에 대한 국제 사회와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백욱인 교수님께서 제시하신 국가 차원의 사회과학 교육⋅연구 인프라 구축은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입니다. 데이터 개방성, 아카이브 구축, 인공지능과의 결합은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는 구체적 방법입니다. 다만 이 모든 인프라 구축의 철학적 토대는 “배타적 소유”가 아니라 “공유와 환원”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창작 노동은 보호받아야 하지만, 그것은 인류 공동의 지적 유산 위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빅테크 기업들이 거인의 어깨 위에서 창출한 가치는 다시 그 거인에게, 즉 인류 공동체에게 환원되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사회적 조정 기능을 담당해 온 주체는 시대에 조응하며 변화해 왔습니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정치가 사회적 조정의 중심이었고(士農工商), 자본주의의 등장 이후 시장이 사회적 조정의 핵심 기제로 부상하였습니다(商士工農). 그렇다면 인공지능 시대는 어떨까요? 한때 온라인 콘텐츠 기획자로 일하면서 프로그래머에게 의존했던 저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바야흐로 ‘공상사농(工商士農)’의 시대가 도래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술(工)이 사회적 조정의 중심축이 되고, 그 위에 자본(商)이 결합하며, 사회적 가치와 담론을 조정해 왔던 정치(士)는 그다음 순위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류에게 문명이라는 선물을 주었던 농업(農)은 소멸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현재 모든 사회적 행위자들이 인공지능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심하고 있습니다. 마치 인류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보다가 생태적 공존을 모색하게 된 것처럼, 미래 어느 시점에 인공지능의 권리나 지위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학은 기술 결정론에 포섭되지 않으면서도, 기술이 만드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대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생존이라는 근본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의 산물입니다.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을 이야기하며 함께 거론된 제1의 물결인 농업혁명은 인류 문명의 토대를 마련했고, 제2의 물결인 산업혁명은 압도적인 생산성을 바탕으로 물질적 풍요의 엔진이 되었습니다. 20세기 후반기, 도구의 스펙에 의존했던 생산성의 헤게모니는 지식정보를 손에 쥔 인간에게 쥐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마침내 생존의 문제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핵심 과제는 생산성의 무한 확대가 아니라, 이미 달성한 생산력을 어떻게 공정하게 분배하느냐의 문제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금융자본주의, 신자유주의를 거치며 여전히 성장 신화를 재생산하고 있고, 그 결과 우리는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의 문제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 앞에 인공지능의 쓸모는 양가적입니다. 한편으로 자본의 축적 논리를 더욱 강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가 당면한 분배와 공정성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쪼록 본 학술대회와 백욱인 교수님의 발표를 시발로 이러한 논의가 본격적인 사회적 합의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