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2025년 봄, 미국 테크 업계에서 묘한 풍경이 펼쳐졌다. 수십 년간 디지털 문명의 주춧돌을 놓아온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하나둘 사무실을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해고 통보를 내린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직접 키워낸 인공지능이었다. 미국 최대 급여 처리 기업 ADP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컴퓨터 개발자 고용은 2023년부터 2025년 사이 27.5% 감소해 1980년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스탠퍼드대 디지털경제연구소는 AI에 가장 많이 노출된 직종에서 22~25세 청년 노동자의 고용이 16% 상대적으로 감소했다고 분석했으며, 소프트웨어 개발자만 보면 그 감소폭이 약 20%에 달했다.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는 일부 프로젝트에서 전체 코드의 30%를 이미 AI가 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는다. 이른바 토사구팽(兎死狗烹)...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해 밤을 새워 코드를 짜온 이들이 완성된 인공지능에 의해 가장 먼저 대체되고 있다.
2016년 3월, 이세돌이 알파고에 1승 4패로 패배하던 날 한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교육부는 이듬해 코딩 교육을 초⋅중⋅고 필수 과목으로 도입했다. “코딩을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말이 학부모 카카오톡방을 달궜고, 학원가에는 코딩 열풍이 불었다. 대학 입시에서도 소프트웨어 계열 학과의 경쟁률이 치솟았다.
그로부터 6년 뒤인 2022년 11월, ChatGPT가 세상에 나왔다. 충격은 알파고보다 더 컸다. 이번엔 바둑이 아니라 글쓰기, 법률 분석, 의학 논문 요약, 심지어 코딩까지 해치웠다. 자연어로 코드를 짜는 이른바 ‘바이브 코딩(Vibe Coding)’, 즉 프로그래밍 언어 대신 일상 언어로 컴퓨터에게 원하는 것을 말하면 AI가 코드를 생성해주는 방식의 등장은 더 충격적인 선언을 담고 있다. 기계를 통제하기 위해 인간이 기계의 언어를 배울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 기계가 인간의 언어를 듣는다. 기계와의 인터페이스가 코드에서 자연어로 이동한 순간, 기계를 다루는 일은 더 이상 어려운 기계어를 사용하는 프로그래머들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오히려 언어를 가장 정교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기계를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이 되었다.
마치 차라투스트라의 성자처럼, 우리는 여전히 이공계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는다. 의대 열풍에 이어 인공지능 열풍이 이어지면서 전국의 대학들이 앞다투어 인공지능 관련 학과를 신설하고, 인문학 정원을 줄이고, ‘미래형 인재’를 외치고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성자와 헤어지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 성자는 아직 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구나.
IBM CEO 아르빈드 크리슈나(Arvind Krishna)는 AI가 수백 명의 인사 부서 직원 업무를 대체했지만, 그 자원으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마케팅⋅영업 인력을 오히려 늘렸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늘린 역할들의 공통점이다. 비판적 사고가 필요한 영역, 즉 기계가 아닌 인간을 상대하는 일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면서도 유독 채용을 확대하는 분야는 “전략적 사고와 커뮤니케이션”이다. 테크 기업들이 AI 대체 불가 역량으로 공통적으로 꼽는 것은 세 가지다. 맥락을 읽는 능력, 의미를 판단하는 능력,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는 능력. 인공지능은 텍스트를 생성하지만 의미를 만들지 못한다. 패턴을 학습하지만 의미를 묻지 않는다. 최적해를 제시하지만 “무엇이 좋은 삶인가”를 판단하지 못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흉내 낼수록, 역설적으로 더욱 중요해지는 것은 기계에게 던지는 인간의 언어, 즉 프롬프트다. 약 7만 년 전 인지혁명 이래로 언어로 의미를 설계하는 일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의 능력이었다. 아무리 AI가 진화해도, 프롬프트의 주인은 결국 인간이다. 그리고 좋은 프롬프트를 쓰는 능력은 코딩 실력에서 오지 않는다. 인간과 세계를 깊이 이해하는 인문학적 역량에서 온다.
14세기, 흑사병이 유럽 인구의 절반을 쓸어갔다. 중세를 지탱하던 신의 질서가 흔들렸다. 신을 섬기는 것이 존재 이유였던 인간은 다시 인간 자신에게 눈을 돌렸다. 그 혼란의 폐허 위에서 피어난 것이 르네상스였다. ‘인간 중심주의’의 부활, 문학과 철학과 예술의 황금기. 신의 그림자가 걷힌 자리에서 인문학이 꽃을 피웠다.
지금 우리는 비슷한 전환점 위에 서 있다. 알파고 이후 10년, 인류는 기계의 언어를 배우느라 인간의 언어를 소홀히 했다. 코딩을 가르치면서 글 읽기를 줄였고, 알고리즘을 익히면서 역사를 잊었다. 그런데 이제 인간이 기계의 언어를 몰라도 코드를 짤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인간에게 남겨진 자리는 기계가 처리하지 못하는 것, 즉 판단하고 공감하고 서사를 만드는 일이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중세를 끝낸 흑사병처럼 낡은 질서를 해체하고 있다. 코딩이 곧 미래라는 신화, 이공계가 곧 생존이라는 믿음. 그 신화와 믿음이 흔들리는 자리에서 제2의 르네상스가 발화를 준비하고 있다.
낯선 풍경이 아니다. 2016년 알파고 쇼크 때도 똑같이 했다. 그 결과 양산된 코딩 인력이 10년 만에 AI에 의해 대체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 한다.
인문학은 취업에 쓸모없는 ‘낭만’이 아니다. 인간과 세계를 해석하는 능력, 갈등하는 이해관계 사이에서 합의를 설계하는 능력, 기술이 설계한 세계를 인간의 언어로 다시 쓰는 능력. 이것이 AI 시대에 기업들이 가장 절실하게 찾고 있는 역량이다. 인문학은 시대가 바뀌어도 낡지 않는다. 기술은 흥망을 반복하지만,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은 단 한 번도 낡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둘러 버린 것이 정작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이제 미국의 해고된 개발자들이 증명하고 있다. 지금 우리 교육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다.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인문학 교육을 재설계하는 것.
신의 그림자 끝에서 르네상스가 피어났듯,
인문학은 기계의 영토 끝에서 다시 발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