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일까... 바람일까...
여자라면 누구나 운명적인 사랑을 꿈꾼다. 여행지에서 만난 갈색 눈이 투명했던 그 남자, 아무것도 모르던 대학 신입생 시절 내게 술을 따라주며 말을 걸었던 남자 선배, 곧 닫히는 문을 비집고 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회장님 아들……. 어릴 때부터 순정만화를 좋아했던 난 언제나 우연인 듯 다가오는 운명의 그이를 기다렸다. 그렇게 10대 때부터 남자 앞에선 항상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였고 3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 참 부지런하게 사랑과 이별을 반복했다.
하지만 결국 내 반려자로 선택한 남자는 내 이상형도, 우연히 다가온 운명도 아니었다. 나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동네 사람이자 20년 지기 남사친(남자사람친구)이 평생 그토록 찾아 헤맨 나의 짝이 될 줄이야. 게다가 내가 먼저 “같이 살자”고 고백했다니 나도 믿어지지 않는 이 상황. 그래서 호흡을 가다듬고 정리해본다. 내가 20년 지기 남사친과 결혼을 결심한 5가지 이유.
그리고 내 이야기를 읽고 난 후 당신 주변의 남사친이 신랑감으로 보인다면 절대 놓치지 말기를!
예전에 만났던 그이들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큰(?) 나머지, 아니면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했던 건지 내가 옷차림을 여성스럽게 하지 않거나 화장이 옅으면 싫어했다. 짧은 치마를 입으면 남들이 쳐다본다며 싫어하다가도, 때로는 섹시한 옷을 입고 거리를 다니며 남자의 기를 살려(?) 주기를 바랐던 그이들!
하지만 내 남사친이자 지금의 예비신랑인 그이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내가 치마를 입든, 츄리닝을 입든, 하이힐을 신든, 운동화를 신든, 립스틱을 빨갛게 바르든, 각질이 일어난 얼굴로 나가든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왜 아무말도 안 했냐”고 물으니 “어떤 모습을 하든 그것은 네 자유이자 권리”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지만, 예전에는 남자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꼬치꼬치 물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자가 본 것, 들은 것, 말하는 것에 맞장구 쳐주는 데만 급급했고 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걸 생각하는지 말하는 걸 꺼렸다. 혹시라도 상대방이 재미없어하면 안 되니까, 내가 상처받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내 남사친은 달랐다. 오랫동안 알았던 사이여서인지 서로의 관심사도 많이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예전 남친들과는 책 이야기를 애초에 하질 않았다. 잘난 척 한다고 할까봐) 같은 책을 읽고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고, 서로 이야기하며 의견을 맞춰가거나 다른 의견은 그대로 존중한다. 책을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좋은 선생님과 동료를 만드는 이 기분은 사랑 고백을 받을 때만큼 짜릿하다!
남사친이자 예비신랑과의 사이에서 정말 편했던 것은 돈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나와 그이는 서로의 연봉이 얼마인지, 지금까지 모아놓은 재산이 얼마이며 매달 얼마가 나가는지도 알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본 사이에 서로의 가정형편을 대략적으로 알고 있던 덕분이기도 하지만, 돈 이야기를 솔직히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외제차를 빌리고, 명품 대여샵에서 싸게 빌려온 핸드백에, 호텔 프론트에서 10개월 할부로 결제해달라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온라인으로 카드결제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워낙 오래 알았던 사이고 오랜 동네 친구라 나와 남사친의 지인들이 모두 겹친다. 만약 어느 한쪽이라도 바람을 피면 주변 지인들에게 폭풍 비난에 사회적 매장을 당하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라도 서로에게 충실하게 될 것이다.(안드로메다로 몰래 떠나지 않는 이상!)
예전에 만났던 꽃미남 연하남은 내가 일이 많아 너무 바빴던 그 사이에 직장 여자 동료와 여행을 떠났다. 연하남은 성숙하고 배려심 있는 연상녀를 좋아할 것이란 착각에 그의 회사 일이나 회사 동료에 대해 별로 묻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연하남과 느닷없이 연락이 안 되자 안절부절못했지만 그제야 깨달았다. 난 연하남 주변의 사람들과는 전혀 안면이 없고 연하남 역시 나를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시켜 주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지금의 남사친이자 예비 신랑의 지인들 연락처는 내게도 모두 있다!
내 눈에 오랜 남사친이 사랑하는 그이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시간’!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어느 남자도 남사친만큼 내 곁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가족으로, 때로는 사랑과 우정을 오가는 썸남으로, 때로는 피식 웃음이 나오는 추억으로 함께 해줬다. 내가 대학 입시에 실패했을 때도, 계속되는 구직 면접에 지쳤을 때도, 못된 선배가 나 몰래 내 친한 친구와 사귀고 있는 걸 알았을 때도, 내 남사친은 언제나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고 “다 잘 될 거야. 왜냐하면 너는 강한 아이니까”라며 응원해줬다. 함께 한 시간만큼 명확한 증거는 없다.
“앞으로 20년은 친구가 아니라 신랑이 돼줄래?”라 물었을 때, “20년 후에는 이혼할 거냐”며 웃은 내 짝! 운명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란 노래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아픈 사랑에, 허황된 운명을 좇지 말고 주변을 돌아보면 당신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운명의 그 이를!
*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께 죄송하지만... 사실 이 글은 허구입니다... 이런 남자를 만나고 싶어서 써봤습니당...예쁘게 봐주세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