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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안을 견디는 시간 Mar 26. 2020

비건으로 살아가기

길고양이가 가르쳐준 삶의 방식

길고양이를 먹이고 돌보는 캣맘이 된 후로 내가 겪은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비건(vegan)’이 됐다는 점이다.

길고양이들이 길 위에서 열악하게 살아가는 현실과 길고양이를 비롯한 동물들을 학대하는 자들, 동물을 그저 물건쯤으로 여기는 사회인식에 눈을 뜨면서

더는 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가 없게 됐다.


채식의 단계 중 비건은 ‘동물을 원료로 하거나 동물 실험을 거친 음식을 먹지 않고 채식만 하는 가장 엄격한 단계’라고 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르면 나는 엄밀히 비건이라기 보다는 비건에 가까운 채식을 하고 있다.


먼저 소가죽 신발, 구스다운, 오리털잠바 등 동물을 원료로 하는 의류를 입지 않는 것부터 시작했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 육류를 먹지 않은지도 오래다. 예전부터 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기에 육류를 끊는 데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다.


우유는 즐겨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2020년 2월 14일, 동물권 단체 ‘디렉트 액션 에브리웨어’(DxE)에서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 강제로 착유당하는 젖소들의 고통을 알리며 ‘고통에 연대하자’라는 퍼포먼스를 본 후로는 우유도 더 이상 좋아할 수 없었다.

물론 강제 착유에 대한 낙농업계의 반론이 있다. 그러나 우유를 대량생산하기 위해 평생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착유당하는 젖소들의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닐 것이다.

우유에 시리얼을 타 먹는 걸 좋아하던 나는 우유를 비롯해 카페라떼, 우유를 원료로 한 프림이 들어간 믹스커피, 빵, 케익, 초콜릿, 버터 등 유제품 섭취도 자연스레 줄이고 있다. 단 음식을 좋아하던 나로서는 고기를 끊는 것보다 우유를 줄이는 것이 더 힘들다. 하지만 인간 중심의 세계에서 젖소들이 말 못한 채 겪고 있는 모든 고통에 조금이라도 연대하고 싶다.


계란도 먹진 않지만 만약 다른 가족이 계란을 먹게 된다면 ‘동물복지계란(끝자리가 1 또는 2로 적힌 계란)’을 구매하도록 하고 있다. 


어류는 아예 먹지 않는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생선 요리 자체를 잘 하지 않아 생선을 먹어본지도 한참 된 것 같다.


화장품 역시 지금 이미 사용하는 화장품들을 소진하고 나면 비건 화장품을 구매할 계획이다.

비건이 되길 노력하며 조금이라도 동물을 비롯한 생명의 가치를 함께 생각하려다 보니 이젠 마트에 진열된 고기들을 봐도 불편한 마음이 든다.     


나를 캣맘으로 만들어 준 길고양이 '미미'. 지금은 더이상 만날 수 없지만 시간이 얼마나 흐르더라도 넌 나의 영원한 첫번째 고양이란다.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캣맘이 되면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참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동물원, 동물체험관, 낚시카페 등에서 재미로 물고기를 낚았다 풀어주는 사람들,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을 만지게 하는 사람들, 돌고래쇼•물개쇼를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만났고, 홍보글을 쓰고, 돈을 받았다.


처음에는 동물을 전시하는 행위에 대해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 다음에는 알지만 돈을 벌어야 하니 어쩔 수 없다며 동물원에 갔다. 사과상자만한 유리벽에 갇혀 몸 숨길 곳 없이 고개를 푹 숙인 여우를 안타까워하면서도 난 돈을 벌어야 하니 어쩔 수 없다고 외면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생명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돈을 벌어야하니 글을 쓸 수는 없다고 다짐했다. 이제는 더 이상 동물원, 동물체험카페 따위에는 가지도 않고 그곳에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쓰지 않는다.     


물론 가끔씩 내가 이런다고 세상이 바뀔까 싶은 생각도 든다.

비건이 정말 동물, 환경보호의 대안이 되는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기를 맛있게 먹고 좋아하는데, 나 혼자 먹지 않는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나 혼자 우유를 안 먹고 버틴다고 해서 젖소들이 더는 강제 착유를 당하지 않고 자신이 부여받은 삶과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을까.

내가 고기는 먹지 않지만 내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만들어내는 쓰레기들이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 이밖에도 내가 모르는 새에 동식물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가끔은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Photo by Jon Tyson on Unsplash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유하고 실천하기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 외에도 많은 분들이 비건으로 살아가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생명의 가치를 일깨우고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계시기에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른 존재를 학대하거나 함부로 살해하지 않고 존중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솔직히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어떡하겠는가. 제자리에 주저앉기보다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야하는 것이 나를 비롯한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그저 하찮게 여기는 길고양이, 그저 없애버려야 한다고 여기는 길고양이들이 나에게 준 가르침은 이렇게 한 인간이 삶을 사는 방식을 바꿔놓을 정도로 강력하다. 우리가 배울 의지만 있다면 길고양이, 유기견을 비롯한 많은 생명들이 얼마나 소중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비건으로 살면서 또 다른 생명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려 한다. 미약하더라도 그것이 내게 주어진 길 중 하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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