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문쿨루스와 간츠 그리고 이누야시키에 대하여
#수단이 중요한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중요한가?
어릴 적 부터 무수히 많은 만화, 소설, 영화, 애니를 보면서
거의 컨텐츠에 중독된 듯한 삶을 살고 있다.
좋았던 컨텐츠가 너무 많다.
문제는 '그래 난 이런 컨텐츠를 좋아하지'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상상력이 자극되는 것이 내 삶으로 들어와서
내 삶이 바뀐게 무엇인가라고 생각하면
사실 그다지 없다.
먹고사는 방식은 그대로이며,
저지르는 실수 역시 그대로이다.
가끔씩 삶의 무게에 완전히 짓눌러져서
숨조차 쉬기 어려울 때 어느 정도 내 심정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구나 정도의 Benefit을 준다.
#호문쿨루스, 간츠, 이누야시키는 상상력의 보고다
손으로 눈을 가리면 사람을 이루고 있는 욕망이
비쥬얼로 나타나는 호문쿨루스
외계인의 게임에 의해 죽고 죽이는 간츠
외계인의 신체조작으로 선과악에 대해서
농담조의 이야기를 심하게 우울하게 표현한
이누야시키
상상력도 이 정도되면 정말 끝판왕이다.
가슴에 불로달군 인장 찍듯이 박히는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근데 딱 여기까지다.
비현실적인 상상력과 현실세계의 괴리감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본다.
내가 손으로 눈을 가리고 남의 욕망을 보아도
아님 거울을 보며 내 욕망을 깨달아도
결국 욕망을 잘 처리하고 다스리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말짱 꽈앙이다.
#창작은 위로정도가 목표가 아닐까?
한 20년 정도 도시에서 경쟁하고, 그 안의 가치가 삶의 무대가 되었다.
몸은 늙어가고, 정신은 피폐해진다.
뭣이 중헌디? 라고 외쳐봐도
답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봐라. 따악 여기까지지
표현은 새로울 수 있다.
스트레스도 무지하게 빠져나온다.
근데 따악 거기까지다.
내가 살 수 있는 것은 '행복'은 아니다.
'다이소 정도에서 살 수 있는 기쁨' 수준이 아닐까.
혹시 인생에서 행복을 구하려하면 안되는거 아닐까?
기쁨 수준에 맞춰서 살아가는게 정답이려나?
기분좋은 새벽바람이 겨드랑이를 간지르면
세상이 좋아질 것 같지만, 착각일지도..
머엉 때릴까?
머엉 짖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