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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ien We Mar 04. 2024

9. 돌아오기

원래 빈방일테니

살다보면 여러가지 일들이 벌어집니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일터에서 버림받는 등 수도 없이 괴로운 일들이 생깁니다. 어떨 때는 내가 벌인 일의 결과이고, 다른 때는 타인이 벌인 일의 결과입니다. 앞에서 맞고, 뒤에서 맞습니다. 떡하니 앞에 서서 '그래서 어쩔 건데'하는 경우를 보기도 하고, 뒤에 숨어서 슬며시 미소를 짖기도 합니다. 끈임없이 타인을 통제하려 합니다. 이런 일들이 인생의 거의 대부분에서 발생합니다. 


이런 일들이 동시에 다가오는 날이 있습니다. 마음 속 저 깊이 묻혀있다가 갑자기 올라옵니다. 사소한 것이 계기가 되어 터져올라옵니다. 과거에는 분노했었습니다. 당한대로 갚아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세상에는 정의가 존재하며 그런기준에서 볼 때 억울함은 반드시 해소해야하는 감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살펴보면 결국 문제는 너무나 복잡하게 되어있어서 실마리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확고하게 믿는 가치 역시 모래처럼 무너져갑니다. 얽히고 섥힌 인간관계처럼 만들어진 감정의 구조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분노의 대상이 불명확해집니다.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 희생양을 찾기도 해보았지만, 결국 찾아내질 못했습니다. 


이런 시간을 보내오는 동안 종종 숨을 쉬기 어려워집니다. 공황도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지속적인 패닉에 마음과 몸이 모두 움추러들고 식은 땀이 납니다. 분노가 공포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이 순간은 영원히 지속될 것 처럼 느껴진다는 게 문제입니다. 약을 몇년을 먹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유일한 해결방법은 스스로 공포를 극복해야하는 겁니다. 죽지 않을거야 또는 죽어도 상관없어라는 신념이 생겨야 하는 데, 제 경우는 전자였습니다. 이를 극복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 비정상적인 반응체계가 다시 출발선에 온 개념이니까요. 


세상은 참 알수 없는게 나쁜 일들이 끝나면 좋은 일들이 올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연속된 일들이 또 생깁니다. 세상의 흐름이 바뀌고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바람이 불어옵니다. 옷깃을 싸메고 웃음을 지어봐도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빗물과 한기에 다시 몸이 움츠려듭니다. 이런 시간이 지속되면 감정이 바뀝니다. 해결된 공포 사이로 슬픔이 밀려옵니다. 순수한 슬픔입니다. 힘들고 지쳐서, 괴롭고 그리워서 올라오는 감정입니다. 웃어보려 애쓰는 건조한 얼굴이 사막 갈라지듯 써집니다. 눈물이 방울방울 맻히는 게 아니라, 걸어가다가 들리는 어떤 소리에, 장면에, 심지어 연관을 찾기 어려운데 그냥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어도 어느 새 누워있는 얼굴 옆이 젖어듭니다. 


슬픔이 가장 어려운 건 '무슨 짓을 해도 회복이 참 어렵다'는 겁니다. 억울하거나, 분노하거나, 무서울 때는 도망이라는 좋은 수단이 있습니다. 즐거움을 찾는 행동, 스트레스를 푸는 행동, 도망치는 행동이 잠시나마의 해결책이 됩니다. 하지만, 슬퍼지면 가라앉습니다. 생각에 물을 많이 부은 듯 명확히 보이지 않습니다. 흐리멍텅한 느낌에 소금기 어린 눈물이 섞여버린 것 같아져 버립니다. 


여기까지 오셨다면 거의 다 온 것 아닌가 싶지만 끝이 보이질 않습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감정으로 인해 복잡하게 발생하는 생각의 출발을 막아버리는 겁니다'. 울리면서 지속되는 소리를 듣습니다. 한 동안 울리다가 갑자기 조금 높은 종소리가 들리면 생각을 멈춥니다. 반복해서 듣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감정으로 인해 복잡하게 생기는 생각이 멈춥니다'. 이걸 반복합니다.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이 멈추는 버릇이 생깁니다. 즐겁지는 않지만, 슬픔도 멈춥니다. 분노도, 억울함도 조용해집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빈 방 안에 조그마한 촛불이 느껴집니다. 밝지도, 따듯하지도 않지만 텅빈 고요 속에 살짝 흔들리는 그 불빛이 안도감을 줍니다. 


오늘도 이렇게 돌아갑니다. 내 의지였는지, 아니었는지 모르지만, 감정으로 범벅이된 이 굴곡진 길을 다시 돌아갑니다. 한번 더, 한번 더, 한번 더 되새기면서 계속 돌아갑니다. 빈 방으로, 촛불하나 바라보며 고요해집니다. 큰 믿음은 없지만, 사소한 것 하나 하나에 확신이 버릇이 될 때 까지라고 기도합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돌아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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