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적셔내기

뜯기는 육신과 무거워진 마음을 다뤄내기란...

by Damien We

풀리지 않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다는 것은 2가지의 변화하는 모습으로 상상이 가능하다

처음 안 좋은 일들을 겪을 때면, 한 가지 일이 터질 때마다 몸의 일부분이 잘려나가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마치 야생동물이나, 괴수가 몸통의 일부분을 물어뜯어낸 것처럼 큰 구멍이 난 느낌을 가지게 된다. 피가 철철 흐르고, 야수의 입 크기만큼의 잘려나간 몸통을 시각적으로 느끼게 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오른쪽 몸통, 팔뚝, 정강이 등등이 뜯겨나가기 시작하면서 거울을 볼 때 몸 아래로는 거의 척추 뼈만 남은 듯 한 앙상한 처절함을 느끼게 된다. 이게 처음으로 안 좋은 일들을 겪을 때 벌어지는 시각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구멍 난 몸의 일부분들이 살아나지만, 희한하게도 마음속에는 그 무게를 전부 합한 것과 같은 느낌의 묵직한 돌덩이가 하나 생겨난다. 우린 그렇게 온몸을 찢기고 아문 상처가 전부 뭉쳐진 돌덩이를 계속 마음속에 얹고 살아가게 된다. 스스로가 상상하는 만큼의 돌덩이가 가슴속에 쌓여가면, 어느 순간부터 사람의 마음은 무겁고, 처연한 느낌을 갖게 된다. 하늘이 맑은데 슬프며, 바람이 부는 데 얼어붙은 느낌을 느끼게 된다. 계속 뜯기도 아물 때마다 천근만근의 무게가 가슴속을 꽉 채우며 그 어떤 다른 감정도 발붙일 곳을 없게 만든다.


세상이 물어뜯을 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무거운 돌들을 어떻게 들고 다녀야 하는가?

한 마리 야수가 앞에서 다가오면 예전의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아 지난번에 저 사나운 야수가 내 팔을 잘라갔는데... 내가 그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이번에 오는 놈은 다시 자라난 팔을 물어뜯을까 아니면 다리를 뜯어갈까... 공포가 극에 달하면 머릿속이 아찔하고 눈앞이 컴컴해지며 가슴이 멈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달려드는 그 야수가 결국 다리를 뜯어가고 한참이 지나면 뜯긴 다리가 자라나지만, 가슴속에는 돌덩이 하나가 더 생겨나게 된다.


뜯기는 과정은 무한히 반복된다.

그래서 이제 야수가 다가오면 몸에 힘을 뺀다. 저 야수는 특별히 나만 향해서 오는 놈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야수가 팔다리를 물고 있으면 자세를 바꿔서 빨리 뜯어갈 수 있게 해 준다. 힘을 뺀다는 건 느껴지는 고통을 허공에 뜬 채 바라보는 느낌이다. 역시 잘려나가는 건 아프구나 하면서 말이다.


마음속에 쌓여만 가는 돌덩이들은 깨뜨리기는 어렵다.
내 경우에는 최대한 이 돌들을 녹여서 내 몸의 다른 곳에 섞여 들여가기를 바란다. 많은 문장들을 마음속에 넣어보았다. 부처님의 말씀도, 칼융의 심리학도, 소소한 에세이 식의 철학도, 뇌과학과 명상책도, 요가도...

이해하고 체득하기에 사실 너무 어려웠다. 어렵고 어렵다. 아주 기본적인 전제를 만들어야 하고, 그 전제 위에 이론이 얹어지고, 그걸 타인에게 공명가능하게 만들어진 화두만큼 어려운 말들로 가득 차있다. 어떤 말들은 거꾸로 맥락이해가 어렵다. 00해라라고 하는데, 왜 00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굳은 걸 깨뜨려도 파편이 남는다. 녹여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난 초인이 아니기에, 한 번에 화두를 써서 깨뜨려버릴 깜냥이 되는 사람이 아니다. 뜯김과 무거움이 동시 발생하는 내 경우에는 힘 빼고 녹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마음속에 그득한 그 수많은 돌덩어리들에 계속해서 물을 붓는다. 눈물로 적신다. 괴로움으로 적시고, 슬픔으로 적시고, 분노로 적신다. 적시고 적시다 보면 눈물에 온갖 감정이 다 빠져나간다. 그냥 적실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조금씩 조금씩 녹아가리라.


하루에 세 번씩 어렵지 않은 나 만의 만트라를 외운다.

아침엔 물처럼 시작해라. 고요하게, 의식적으로, 작게.

낮에는 나무처럼 생생하게 뻗어 나라. 그러나 계획이라는 큰 틀을 벗어나진 말아라.

저녁이 되면 불기운인 화를 빼내고, 금기운을 써서 부드럽게 접고, 다시 항상 하던 대로인 뿌리로 돌아가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적어놓은 세 가지의 글귀를 보면서 돌덩이들을 계속해서 적셔나간다. 오래 걸릴 일이다. 언젠간 다 씻겨나갈 것이라고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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