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건너가기

오체투지. 아니 오체를 잘라내서라도 건너가야겠다... 난 지렁이일지도

by Damien We

살다 보면 부서질 듯 짓눌리고, 타들어가듯이 뜨거워진다.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을 겪게 된다. 커다란 변화도 벌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처음 발단이 된 원인을 찾더라도, 정확하게 변곡점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생각을 통해 입장을 세우고 나면, 보통 행동을 하게 된다. 나의 수많은 행동(선택)들과 타인의 수많은 행동(선택)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그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다른 크기의 여러 개 기어가 맞물려, 힘이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종종 그 힘이 너무 커서 사람은 짓눌리게 된다.


문제는 짓눌렸을 때다.

(영혼=정신=마음) + (몸)은 하나인듯해서, 한번 눌리게 되면 다 터져나가기 일쑤다. 터져있는 상태에서 한번 혹은 몇 번 더 짓눌리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나 같은 경우에는 '불안증, 공황발작, 조울증' 등이 왔었다. 그 후 오랜 시간 동안 '계속해서 소위 좋은 말씀의 오디오북 경청과 약물치료를 병행'했다. 4년 동안. 약으로 신경증세는 잡았으나, 계속해서 눌러오는 인생에 몇 번을 더 터졌다. 지금도 ongoing으로 계속 눌려진다.


눌려진다는 것은 압력 또는 저항을 느낀다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 '압력 또는 저항'이라는 단어다. 아무리 형이상학적이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물리적 특성으로 비유해서 이해하는 게 쉽다 보니, 눌린다는/저항감이 생긴다는 현상을 보면 눕혀진 사람의 위로 엄청나게 무거운 돌이 떨어지는 형상이 상상이 간다. 마음속에 쌓여있는 것이 마치 다양한 색의 물이 들어있는 물봉 지라고 상상해 보면, 이걸 터뜨리지 않는 한 눌리는 저항감을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


불교와 명상가/영혼 성찰자들은 이야기한다.

이 물리법칙으로 상상하는 것이 사실을 왜곡한단다. 사실 이 모든 것은 '개개인의 의식 속에 있는 Ego'가 보고 있는 Screen위의 영화 같은 것이라고 한다. Screen 속에서 'Self가 압력/저항감을 느끼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Ego'가 아닌 '의식'이란다. 그래서 일체가 무상/무아란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마치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면 영락없이 절벽으로 떨어진다는 걸 알면서 Matrix의 Neo처럼 떨어지라고 한다. 그것이 믿음이 되었던, Ego가 나(我/Self)가 아님을 깨달으라고 한다. 이렇다 보니 세상의 문제가 나를 짓눌렀을 때 깨달음을 통한 문제해결은 나에게는 아주 아주 불가능에 가까운 Solution으로 보인다.


그래. 건너가기가 너무 어렵다.

깨달았다는 사람들은 건너오라 하고, 짓눌린 사람들은 건너가지 못한다. 절벽으로 떨어진다. 마음이 짓눌려 터져 버린다. 매일의 루틴을 반복하고, 울음조차 세숫물이라며 힘듦을 씻어내려 하지만 씻겨나가질 않는다. 몸의 근력을 키우며 마음의 근력도 키우라 한다. 둘은 하나라고... 이 뫼비우스같이 짜증스러운 반복구간을 영원히 반복한다. 내려놓으면 편해질 것이라고 믿으며 힘겹게 걸어가면, 위아래가 뒤바뀌어 버린다. 건너가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뛰어내리면 허공이 땅바닥이 되고, 땅바닥이 허공이 된다. 도무지 뒤죽박죽이라 건너가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짓눌리고, 터지고, 채워지고를 반복하다 마지막 순간이 왔다

지난 초겨울 짓눌려 터져 버렸던 상처들이 우연히 다가온 행운에 다소 채워졌다. 하지만 거대한 기어들이 움직이면서, 다시 짓눌리기 시작했고 숨을 쉬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거의 모든 짓눌린 상처들이 터질 것 같은 마지막 순간이라고 느껴지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고 나서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이 짓눌린 상태에서 '회복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짓눌림의 상태로 남아있을 것인가? 이것이 바로 '건너갈 것인가?'라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 다큐멘터리에서 오체투지를 하며 몇 천 킬로를 고행하는 네팔 사람을 보았다. 그들이 건너가려는 곳은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고통과 엄청난 수고를 동반한 Flow 상태에 몰입하는 것으로만 설명될 부분은 아닌 것 같다. 오체투지로 온몸이 부서져나가며 순간순간 열반을 꿈꿨을까? 기복신앙처럼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을 기원했을까?


건너가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이 저 바닥에 처박혀서 몸 역시 그 근처에 도달했을 때, 숨쉬기 어렵고, 눈물이 났으며, 관계가 어려워졌다. 마음의 돌인지, 손위의 불덩이인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들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뭔가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고 무서웠다. 꿈을 꾸기 시작했고, 마음속의 저열한 열등감/무력감/우울감 등이 복잡하게 발현되었다. 어느 날 저녁, 지친 몸을 이끌고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들을 머릿속에서 주판알 굴리듯이 계속 계산을 하다가 어지러워졌다. 깊은 계곡에 계속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맹렬한 속도감에 나의 모든 신경과 근육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 아래에 처 박히고 나니, 삼각형 꼭짓점 같은 바닥에 거꾸로 꽂혀서 발버둥조차 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 꼭짓점의 끝에서 중력이 거꾸로 작용하는 것처럼 갑자기 이 점을 통과해서 건너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지 모르겠다. 의식인지, 자아상인지... 하지만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 오체를 다 잘라내는 한이 있더라도 건너가야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량이 너무 무거워지면 시공간을 휜단다. 마음의 돌이 너무나 무거워져서, 어느새 낙하하던 저 깊은 골짜기가 수평이 되고 그 점 안에서 구멍이 생겼다. 건너갈 수 있는 아주아주 작은 구멍이 보였다.


깨달음은 없었다. 스크린 위로 온갖 고통의 현실이 펼쳐지지도 않았다. 호흡을 조절해도 순간만 편해졌다. 결국 방파제같이 온 몸으로 파도를 맞은 후 온 몸과 정신이 파편이 되고 나서, 한 마리 지렁이 크기 정도가 남은 몸과 정신을 붙잡고 구멍을 건너가겠다는 의식이 생겼다. 경박단소하고 품위있게 고통을 지나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처절했다.


내 정신과 몸의 엑기스는 한 마리 지렁이처럼 작았다. 연약했다. 그리고 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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