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엇을 관찰해야하는 걸까? 관찰과 사유는 다른가? 깨달음은 뭘까?
내가 사주팔자를 처음 공부할 때는 낭월스님의 자평명리학 관련 책들을 읽었었다. 물론 이 스님만큼 쉽게 설명하시는 분은 세상에 없는 것 같다. 본인의 일주를 설명하면서 풀어나가는 그 부드럽고, 명확한 설명은 따뜻함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에 남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배우게되나, 결국 자기 자신의 것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과연 내가 내 인생을 살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싱가폴 창이 공항에서 첸나이로 가기 위해 기다리는 중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서, 관찰에 대해서 적어보려한다. 물론 사주팔자를 기본으로.
내가, 나라는 인간이 이렇구나를 알아가는 과정은 몇 년안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솔직히 초등학교 시절조차 가물가물하고, 중학교 때 만난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는 기억도 나지 않을꺼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자기를 중심으로 편향되게 되어있으니 말이다. 내가 내 인생을 기억하는 것이 뭘까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그냥 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부딪힌 타인과의 끈임없는 갈등과 애정의 굴곡 정도가 아니었을까.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지인도 대부분 그 시간대에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슈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왜곡해서 기억하게 된다. 내가 감정에 북받쳐 있으면 그들이 쉽게 던진 말이 돌이되어 다가오고, 내가 차분할 때는 벼락이 처도 잘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만큼 인간의 기억은 편향되어있다.
이런 맥락에서 누군가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벌어진 사건들과 변화에 대해서 가장 이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음...아무리 생각해봐도 철학이나, 종교는 아닐듯하다. 물론 과학자들이 명확한 것에 대해서 더욱 명확하게 실험을 해가면서 결론을 내리고 있으나, 부분의 정교화가 전체를 설명해주지는 않는 듯 해서 기다리기 어렵다. 유부브에서 보게되는 우주는 거인의 뇌이다 등등의 도저히 사고의 점프 없이는 헛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 상상들. 부정확하다.
대힌만국 2018년 트렌드, 2030 전 세계의 모습, 2009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등 모든 것은 정확한 예측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나마 이 모든 사람들이 가장 기대는 사고방식은 과거에서 현재까지는 이렇게 흘러왔으니, 앞으로도 이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가하는 정도일 것이다.
사실 다들 믿는 논리라는 것이 얼마나 구멍이 많은지는 다들 경험해봤을 것이다. 개인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점을 남이 완벽히 이해할 수 없고, 개인의 사고방식과 성장은 다들 다르기에 일단 어떤 이슈이건 조직적이지 않는 개인 몇 단계를 건너면 완벽한 오해를 자아낼 수 있게된다.
한동안 이런 생각을 했다. '작은 소나무 하나를 바라보면서 갑목 명상을, 촛불하나 켜놓고 정화명상을...'하라는 낭월스님의 말대로 노력해보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단지, 갑목을 소나무라고 하면 되는지, 정화를 촛불이라 비유해도 될런지에 대한 내 개인적인 생각이 생겼다는 점이다.
갑목은 소나무가 아니다. 자라나려고 하는 기운/에너지이다. 성장/발전/모멘텀/생기를 가진 내가 나인 이유를 갑목이라 한다. 갑목의 십신이 비견이라 하는데, 강한 주체성이라고 한다. 내 성향 상 모든 것을 시각화하려는 특징이 있다보니, 이런 그림을 상상하게 된다.
사람의 몸은 오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목질/화질/토질/금질/수질. 물론 수분이 약 75%라고 하나, 여기서 주목할 포인트는 나와 외부 환경을 구분하는 피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육체의 대부분을 살펴보면 물을 기반으로 한 체액/혈액 등이 대부분이고, 토질을 근간으로 한 오장육부와 피부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금질에 가까운 것은 손톱/치아/발톱 정도일 것이다. 그럼 화질은 무엇일까? 저주파 안마기에 반응하는 자기장 요소들, 그리고 박동을 하게 하는 에너지의 발화현상이 화질일 것이고, 목질은 이 모든 움직임의 원동력이되는 에너지일 것이다. 즉, 생명력이다.
목질이 에너지원이 되고, 화질로 발화하여 몸의 대부분인 토질과 금질을 움직인다. 이것이 육체다. 여기서 수는 순환을 담당한다. 막히면 정체되고, 아픈 이유가 그것이다.
반면 정신은 '목기운/화기운/토기운/금기운/수기운'의 다섯가지로 구분된다.
목: 호기심/호기심/호기심/자라나려는/변화하려는 마음
화: 규명/표현/명확화/불보듯이 명확하게 보려는 마음/시비를 가리는 마음
토: 유지하려는 마음/품으려는 마음/그대로 있으려는 항상심
금: 결실을 맺고, 단계를 바꾸려는 마음/살아있는 것을 죽여서라도 결과를 보려는 마음
수: 유연한 마음/유연하다는 것은 정에 이끌리지 않고, 수를 둘수있다는 측면에서 냉정하다고 본다.
동물이란 사주적으로 보면 무엇일까? 시간의 흐름에 따른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타고 나는 사람보다는 좀 더 직접적으로 오행적인 특성이 강하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애완견 한마리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개라는 존재는 오행이 다양하게 들어가지 않은 듯 하다. 일단 동물의 기본은 식욕과 성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성애를 가지고, 잡아죽여서 먹는다. 단순한 오행으로 구성된 사람 역시 비슷하지 않나...ㅋㅋ
일단 사람의 정신과 육체는 땔수 없는 요소들인 '음양x오행'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12지지_역시 오행'의 구성이다.
예를 들어 성장이 멈춰서 지친 목을 상상해보고 있다. 대기업에서 한동안 동기가 부여되고, 그 안에서의 성장을 토대로 직원들을 푸쉬하고, 사기진작시키고, 나름 성취를 기본으로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성장의 속도가 느려지고, 아래의 나무들이 더 크고 높게 자라기 시작한다. 나름대로의 생명력을 가지겠으나, 목의 세계에서 성장은 '살지 죽을지에 대한 바로미터'이다. 목은 성장을 멈추면 죽는 것이다.
대기업은 무엇일까? 아주 비옥한 토양이다. 그 안에 들어가있으면 자유롭지는 않지만 양분이 충분하고, 비도 적절히 와서 다른 재해에 대비해가면서 살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된다. 결실을 맺어가면서 비 자유로움에 대한 답답함을 타협한다. 물론 조직의 성장 정신과 함께하면 좋겠으나, 모든 인간이 그럴 수는 없다고 본다.
목은 유독 환경을 중시한다고 한다. 어디에 뿌리를 내리는가가 관건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세상을 둘러보면 우린 꼭 살아있는 나무와 지내고 있지 않다. 죽어있는 나무도 나무다. 성장을 멈춘 갑목이 갈아지고, 다져지고, 용액에 빠져 방부목으로 변화하여 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육질의 변화이지, 정신의 변화가 아니다'
이 점이 헷갈리면 관찰은 헛수고가 된다.
육질은 화학/과학/목공/열처리/3D 프린터 등으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정신과 기운'이다.
세상의 모든 갑목일주들은
이걸 깨달아야 할 것 같다.
난 성장/변화하는 에너지라는 점을....
꼭 잘 살지 않아도,
어제와 다르면 만족할 줄 알아야 목은 행복해진다.
오늘은 갑목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다음엔 을목과 병정화에 대해서 생각해보려 한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