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캐나다 경험담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나는 실리콘밸리에 오기 전에 캐나다에서 6년을 살았다.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에서 4년을 살았는데 그때 다니던 회사에서 빅토리아로 전근을 보내줘서 2년간은 빅토리아에서 살았다. 참고로, 빅토리아는 밴쿠버 근처에 있는 섬 도시로 굉장히 아름답고 작은 도시이다.
코로나 이후에 캐나다를 한 5년간 방문하지 못했다가 지난달에 친구의 결혼식이 있어서 2주간을 방문했다. 토란토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작은 도시였는데 이번에 가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살고 있는 실리콘밸리와 캐나다를 비교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한 10년 정도 미국에 있게 된 나의 경험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오늘은 내가 느끼는 "차별"이나 그에 연관된 개인적인 경험을 좀 소개하려 한다. 우선 읽기 전에 두 가지점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상기시켜드리고 싶다. 첫째, 우선 여기서 소개하는 캐나다에 관한 경험은 10년 전의 일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던가? 지금의 캐나다는 나의 기억과 경험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둘째는 내가 살던 오타와와 빅토리아는 지금 사는 샌프란시스코와 비교하면 작은 도시이다. 캐나다와 미국의 비교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큰 도시에 사는 것과 중/소 도시에 사는 차이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소 재목이 캐나다와 미국의 경험이지만, 좀 더 정확하게 하면 10년 전의 오타와와 지금의 샌프란시스코 비교로 하는 게 더 맞다.
내가 한 20년간 외국에서 살다 보니까(캐나다로 이주하기 전에 호주에서 2년 정도 살기도 했다), “차별” 특히 “인종차별”은 정말 누구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그 경험과 뉘앙스가 다르더라. 같은 인종이고, 같은 도시에 살고 있어도, 어떤 사람은 크게 “차별”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별로 그런 걸 못 느끼고 산다. 또 이것은 본인이 Korean-American/Canadian(즉 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계 사람)이냐 아니면 나처럼 한국에서 태어나서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고 외국으로 나간 사례이냐에 따라서도 많이 틀리다. 좀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키가 크냐, 아니면 생김새나 스타일이 Asian American 같으냐 아니면 K-pop 스타 같으냐에 따라서도 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각 또 ‘저 사람은 분명히 ㅇㅇ일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관여한다. 영어로 이런 관념, 특히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Stereotype이라고 한다. 이런 고정관념을 만드는 데는 개인적인 경험보다는 간접적인 경험, 예를 들면, 미디어의 영향이나 속해있는 기업 또는 사회의 분위기/문화가 많이 작용한다.
나이가 들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살아보니까 요즘은 실력, 외모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중요시 여기는 것이 socioeconomic status, 즉, 사회경제적 지위인 것 같다. 내가 뭐 하는 사람이냐. 내가 가진 기술이 무엇이냐, 즉 지금 부자냐, 얼마나 부자냐, 또는 부자가 될 가능성이 있냐가 어디에 가서나 “나”를 다른 사람들이 보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한 예로, 내가 처음에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던 회사가 금융계 쪽이었는데, 우리 회사 투자자들이 거의 아시아계 부자들이었다. 그리고 우리 회사로 가끔 투자자의 자재들이 "인턴"으로 와서 몇 개월 경험을 쌓고 가는 경우가 있었다. 영어를 못하고, 문화를 잘 몰라도, 부자라서 그런지, 어디 가서 꿀리지 않고 당당하게 잘 만 살더라. 이런 사람들은 정말 "차별" 같은 것은 한 번도 경험 안 하고 사는 사람들 같았다. 물론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다르게 말할 수 도 있겠지만, 내가 요즘 보기에는 이런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인종을 뛰어넘는 듯하다.
내가 실리콘밸리에 살면서 겪는 차별은 솔직히 거의 없다. 모두가 잘해주고, 친절하고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러려고 애를 쓴다. 뭐 속 마음들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난 그렇게 느끼고 믿고 산다. 나는 여기에 살면서 내가 유색인종이라서 진급을 못 했거나,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생각 또는 고민을 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있었더라도 극히 적었다. 여기에는 아시아인들도 많고 특히 성공한 아시아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아시아인이라서 받는 차별은 생각하기 힘들다
실리콘밸리에는 차별이 전혀 없나?
내가 처음 실리콘밸리에 도착했을 때 분명히 느껴지는 “차별” 이 있었다. 그때는 내가 구직자였고,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에서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캐나다에서 해오던 일을 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실리콘밸리에는 내가 예전에 하던 일을 하는 업종조차 없었다. 그리고 비슷한 업종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실리콘밸리에서 하고 있는 일, 즉, 앱을 만드는 일에는 전혀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면접은커녕, 이력서도 내밀곳이 없었다.
처음 구글과 메타 근처에 월세를 마련하고 낮에 개와 산책을 할 때 몇 번을 사람들이 나에게 혹시 dog walker냐고 물었다. 개를 직업적으로 돌보는 사람이냐고 묻는 것이다. 그냥 아니라고 하고 웃어넘겼지만,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약간 의아했었다. 또 한 번은 우리 집에 경찰이 2명 찾아와 벨을 눌렀다. 다른 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다른 주민들이 이 집이 버려진 집인데 누가 무단침입으로 살고 있다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우리 집에 들어와서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갔다. 난 그때는 아마 누가 집 번호를 잘못 알고 신고를 했나 보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 이후에 우리 집으로 협박 비슷한 쪽지가 왔다. 우리 집 앞마당에 잡초가 무성하다면서 즉시 정리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경찰이 아니라 소방관을 부르겠다는 쪽지였다. 그 동네에서 1년에 한 번 하는 block party에 가면, 누구네 누구는 구글에서 일하고, 누구는 페이스북에서 일한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시간이 좀 지나고, 취업도 하고, 처음 살던 동네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했다. 물론 동네의 분위기가 달라서 일 수도 있지만, 요즘에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해본 기억이 없다.
내가 오타와에서 살 때가 성인이 된 후에 가장 힘든 때였다. 물론 그때는 한국을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었고, 외국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해서 그랬던 것도 있고, 내가 일했던 회사가 다른 일반 회사들보다 사뭇 경직된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점도 있다. 참고로 내가 다녔던 회사는 군사/국방 쪽 일을 하는 영국계 회사였다. 그래서 직원들이 거의가 나이가 많은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전직 군인들도 많았고, 평균나이가 거의 50쯤 되었다. 그리고 90%가 백인이었다. 이때 내가 더 힘들었던 이유는 내 직속 상사 때문이었다. 인종차별적인 발언도 나에게 몇 번 했고, 지금 같아서는 상상도 못 할 말도 안 되는 일도 몇 번 시켰다. 그러고 나서 회사에서 빅토리아라는 곳으로 이직을 권유받았을 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섬 도시였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사를 결정했었다.
월급이나 조건도 많이 좋았고, 꽤 전문적인 일을 했었지만, 역시 아무래도 조직의 분위기나 문화가 많이 뒤떨어진 회사였다. 그래서 2년의 빅토리아에서의 생활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고, 꼭 차별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이유에서 2년 만에 정리해고를 당했다.
캐나다에서 6년을 살면서, 몇 가지 겪은 일을 소개하겠다. 우선 참고로 다시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일이다.
오타와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니하오”라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아시아사람은 곧 중국인이다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그때는 좀 있었다.
얼마나 한국이 못 살면 여기에 왔냐?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 어떤 사람들은 한국을 북한하고 혼동한다. 그리고 내가 북한에서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몇 봤다.
'아시아인들은 똑똑하기는 한데 높은 직위를 별로 원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웬만큼 진급은 하지만 최고 경영직으로는 자발적으로 안 들어가는 것 같다.'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 회사 인사과장이 나에게 한 말이다.
그리고 내가 들은 최고의 인종차별적 발언은 -
너는 꼭 우리 집 청소하는 사람들을 연상케 해.
내 직장상사가 그러더라. 이런 것이 대표적인 인종차별적 발언이다. 같은 회사에서 같은 사무실에 일하면서도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나 같은 인종은 대부분 “청소부”나 음식점 “종업원”이 대부분이다라고 은근히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번에 캐나다에 갔을 때도 아무래도 샌프란시스코에 살다가 가서 그런지, 캐나다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할 때 기분이 좀 상했다. 예를 들면, ‘요즘은 백인 세무사가 없다. 다 ㅇㅇ나라 사람들이다’. 또는,’ 병원에 가면 ㅇㅇ국적 간호사에 ㅇㅇ나라 의사들 밖엔 없다. 그래서 의료의 질이 떨어진다’. 백인 청년의 어머니는 ‘요즘은 회사들이 유색 인종만 고용하느라 백인들은 뽑지를 않는다. 우리 아들의 취업이 걱정이다’. 이런 이야기를 내 앞에서 서슴지 않게 하더라. 나는 그 자리에서 굉장히 당황하고 어색했다.
이 사람들이 나를 유색인종이라고 생각을 안 하는 건가? 아님 내가 ㅇㅇ국적이 아니니까, 나에게 해당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직도 미스터리다.
이런 이야기를 내가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서 몇몇 친구들에게 했다. 친구들은, ‘어머, 나는 캐나다 사람들은 다 착한 줄 알았는데.’라고 놀라더라. 물론 캐나다 사람들, 거의가 착하고 친절하다. 그리고 내 앞에서 저런 말을 한 사람들도,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무시하려고 한 말이 아니라, 나도 그 말에 공감을 하겠지 하는 생각에서 했을 것이다. 특히 차별은 보통 “무지”, 즉 모르는데서 오는 경향이 많다. 아시아사람 한 명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 들이 못 미더울 수 있고, 흑인을 한 명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을 무섭다고 여길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차별"은 도시가 작고, 인구에 다양성이 없을 경우에 더 많이 볼 수 있다. 또, 인종차별은 개인의 도덕성과도 무관한 경우가 많다. 우리가 특히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들을 다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보통은 그냥 무지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들이다. 장난으로 던진 돌이 개구리를 치는 격이다. 물론 그중에는 다른 사람들을 나쁘게 대하는 저 질의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한 예로 내가 아는 한국분의 아들이 영국에 산다. 그분의 7살 된 손주는 영국에서 공립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참고로, 외국에서는 공립이냐 사립학교에 다니냐를 많이 따진다. 그만큼 사립학교의 숫자도 많고, 또 좋은 사립학교가 많으니 돈이 많은 사람들의 자재들은 아무래도 사립을 많이 간다. 그런데 이 손주가 다니는 공립학교 선생님들이 거의 다가 유색인종, 즉, 이민 1 - 2세대란다. 참고로 이민 1세대는 나처럼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다른 나라로 이주한 사람들이고, 2세대는 보통 부모가 이주한 사례들이다.
그러면서 내 지인이 나에게 하소연을 하기를, 학교 선생님이 된 다는 것은 그냥 공부를 잘하는 것뿐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나 그 나라 국민으로서의 정체성(Pride)도 커야 하는데, 선생님들이 다 이민자라 내 손주가 뭘 배울지 걱정이 된다고 하시더라. 그때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가만히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얼마나 그것이 논리에 어긋나는 발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반박도 안 하고 그냥 돌아온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역사는 배우는 것이고, 긍정심이나 자긍심도 개인의 경험이나 지식 또는 감정에 따라 느끼는 것이지 꼭 그 나라에 오래 살아야, 아니면 조 부모가 그 나라에서 태어나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또 훌륭한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역사나 국민으로서의 정체성 말고도 다른 많은 요소들이 필요한데 그렇게 싸잡아서 보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장 생각하는 “차별”의 좋은 예다.
나도 외국에서 이민자로 열심히 살아가면서 이런 소리를 안 들으려고 많이 노력하는데. 또 그분의 아드님도 영국에서 똑같이 힘들게 그런 남들의 고정관념을 바꾸려 노력하고 살고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약간 슬퍼지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이민자들이 겪는 고충 중 하나다. 아무리 노력을 해서 자격증을 따거나, 취업 또는 승진을 해도, 많은 사람들이 현지인에 비해서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민자들에게는 현지인들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다.
한국에서도 요즘 유튜브나 Reddit r/korea 등에서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를 가끔 접하게 된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한국인이 아니고 외국인이라서 경험하는 어려움을 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고, 또 요즘 잘 나가는 IT기업에서 모셔간 외국인 인재들은 좋은 대우를 받고 잘 지내는 사람들 이야기도 많이 접한다. 또 가끔 한국 공영티브이에서도 한국말을 나 보다도 잘하는 외국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볼 때면, 한국도 이제 이런 진정한 글로벌한 multi-cultural / multiracial 사회로의 진입이 시작되었구나 싶다.
캐나다는 코로나 이후에 파격적인 정책으로 엄청난 수의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고, 이런 추세는 오랫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그래서 현지 사람들이 갑자기 바뀐 사회의 다양한 인종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다. 여기저기에서 인종문제들이 거두 된다. 갑자기 IT 쪽에서 정리해고를 많이 한 것도 이민자들의 탓으로 돌리고, 응급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늘은 것도 이민자들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캐나다 정부가 이민자의 숫자를 급격히 늘린 것은 아래의 이유들 때문 들이다.
캐나다도 우리처럼 고령화되는 사회를 뒷 바침할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
전문인력이 많이 필요하다. 지금 캐나다에서는 미국에서 H1B(단기 고용 기술 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직장을 잃으면 무조건 이민자로 받아주는 정책을 시작했다. 그만큼 전문인력, 특히 IT와 의료 쪽 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캐나다도 지금 저인금의 일자리는 남아돈다. 음식점, 커피숍 그리고 농촌등 많은 현지인들이 이런 저인금의 고된 일을 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럼 인건비를 올려야 하는데, 인건비를 올리느니 이민자를 받아들여서 일자리를 메꾸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투자등 많은 돈이 시장에서 줄고, 소비의 위축도 걱정하는 문제 중 하나다. 역시 사람이 많으면 전채적인 소비도 늘어난다
위의 이유들은 전문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쉽게 추측이 가능한 이유들이다.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캐나다정부의 이민자 숫자를 늘린 몇 가지 배경이 되었다.
또 캐나다는 지난 수년간 치열한 이민경쟁을 미국과 해왔다. 많은 이민자들이 캐나다에 와서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따고, 웬만큼의 경력을 쌓은 후에 미국이나 유럽으로 두 번째 이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것은 특히 IT 업계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다. 캐나다의 입장으로 봐서는 정말 큰 손실이다. 우선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교육하고, 안정시키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고, 몇 년 후 그 이민자가 드디어 사회에서 큰 힘이 될 때 다른 나라에 빼앗기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령화 사회를 준비하는 단계로 이민의 문을 좀 더 열 정책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나는 한국 정책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지만, 지금 미국이나 캐나다의 경우를 봤을 때는 앞으로 젊은 사람들, 또 실력 있는 사람들 특히 IT와 의료 쪽의 젊은 인력을 모셔가려는 전 세계의 경쟁전은 더 치열 해질 것 같다.
우선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라난 사람으로서 외국에서 살면서 최근 몇 년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더 많이 알고, 좋은 이미지와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20년 전 만해도 한국을 중국에 속한 나라로 알거나(타이완과 혼동), 베트남이라고 생각하거나(전쟁 때문에), 아니면 북한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한국 음식 한 둘 쯤은 알고 있고, 한국 드라마, 영화, 가수등을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인종차별이 좀 심하다고 느끼는 사회는 아무래도 많은 문화와 인종을 겪어보지 못해 능숙하고 민첩한 자세가 나오지 않는 것뿐이지, 사람들은 다 똑같더라. 요즘은 거의 모든 곳이 인종을 넘어서서 부와 부의 가능성을 더 보는 것 같다. 어디에서 살던, 본인이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주어진 일에 감사하면서 사는 수 밖에는 없는 것 같다. 나를 모르면서 나를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을 바꿀만한 힘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내 태도를 바꾸는 것뿐이다.
대문은 Photo by Tim Marshall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