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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der Jul 27. 2023

공부 잘해야 살만한 나라

그래서 난 한국에서 살기 어려웠나 보다

얼마 전에 지인이 혹시 한국에서 IT Security에 관한 강연을 할 만한 사람을 알고 있냐고 물어왔다. 나는 이쪽 분야 전문가가 아니어서 아는 분들 중에 찾아보겠다고 했더니 이왕이면 한국에서 명문 대학 졸업자 또는 미국 대기업(구글이나 메타) 출신자로 알아봐 주면 고맙다고. 요즘은 한국에서 명문대학에 나와서 실리콘밸리에서 오래 일 하다가 한국으로 와서 강연하시는 분들도 많고, 또 미국 Ivy League 출신으로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다가 한국에 온 사람들도 꽤 많아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아무래도 강연자의 스펙이 중요하다고 덧붙이셨다.

역시 한국에서는 학벌이 좋아야 뭐든지 할 수 있군요.

그렇게 말하는 나에게, 그분은 본인도 한국에서 30년이 넘게 전문직으로 일을 하면서, 학벌이 가장 큰 약점이라고 고백 아닌 고백을 하시더라.


요즘은 한국에 가면 가족이나 친구들이 왜 한국에서 안 사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지금처럼 실리콘밸리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한국시간으로 밤 12시부터 아침 9시까지 근무(샌프란시간에 맞춰서)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솔직히 한국에서의 취업? 더군다나 개발자로써의 취업? 은 자신이 없다.


서울에서 e-commerce회사를 오랫동안 운영하시는 지인을 지난해에 만났을 때 IT 회사들, 특히 작은 회사들은 사람을 뽑기가 힘들더라는 말을 하더라. 그래서 이때다 싶어 혹시 나 같은 사람 한국에서 일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글쎄.

우선 학교도 별로고, 전공이 컴퓨터 쪽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리콘밸리에서도 난다 긴다 하는 회사들 FAANG(Facebook, Amazon, Apple, Google)에 다닌 경력도 없으니, 취직을 한다고 하더라고 신입사원정도의 등급이 아니면 모를까, 중/상위 등급으로 취업을 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분석이었다. 한국 내 상주하는 실리콘밸리 회사들, 아마존이나 Salesforce 등도 한국 안에서의 취업은 실리콘밸리 보다 더 치열하다고 하더라.


실력이 있으면 어디서나 성공한다

맞는 얘기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꼭 장담할 수는 없지만 실력이 있고 노력을 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문제는 "실력이 있다"의 기준이다. 한국에서는 "실력"의 의미에는 학벌/학력이 꼭 들어가는 것 같다. 아니면 최소한, 자격증 또는 시험의 결과가 있어야 한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면 그만큼 너는 무엇을 시켜도 잘할 수 있는 놈이다라고 인정을 받는 것이다. 또 좋은 대학출신이다의 의미는 너는 문제를 해결할 만한 방법을 찾을 가능성을 배운 놈이다라고 해석한다. 더 나아가서, 너는 학교 다닐 때 노력하는 놈이었구나가 된다.


그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좋은 대학에 못 들어간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할 만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가고, 가능성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또 노력을 하는 놈인지도 알기 어렵다고 해석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도 비슷하다. 다른 점은 한국은 어느 자리에서나, 즉, 경력이든 신입이든, 또는 어떤 분야던, 예술가던 엔지니어던 이 공식이 도입이 된다. 그래서 인생의 첫 8년부터 19 - 20년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성공도가 많이 결정된다. 또 성공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얼마나 넓으냐도 결정된다.


미국에서 Ivy League에 나오면 첫 취직하는데 우선권이 많이 쥐어진다. 특히 신입 사원, 인턴등은 명문 학교 졸업자에게 기회의 폭이 더 있는 듯하다. 그래서 여기서도 학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증거가 지난달에 미국 대법원에서 내린 몇몇의 인종(흑인과 남미계 인들)을 우대한 대학의 입학을 법적으로 금지시킨 일이다. 일정한 인종을 대상으로 대학들이 더 많은 입학 기회를 준 것이 헌법에 어긋나는 정책으로 판결이 난 것이다. 대학의 입학정책이 법정까지 가게 된 이유는 어떤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이런 대학의 특정 인종우대정책 때문에 학교입학에서 떨어졌다고 주장하며 정책을 고발한 데서 시작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여기서 읽을 수 있다.

인종 우대정책의 지속을 원하는 학생들의 대법원 앞 시위

또 Ivy League를 나온 졸업생들이 받는 연봉도 다른 대학들과 대비할 때 높다는 결과가 올 초에 USNews에서 보도가 되었다. 이런 현상은 신입뿐만 아니라 경력직에도 반영된다.

USNews 출처. 여기서도 명문대 나오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이런 기사를 읽을 때 정말 사람 사는 곳은 똑같구나. 미국도 역시 학벌이 최고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현재 미국에서 살고 일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고 강조하고 싶다. 여기는 기회가 많고, 또 모든 직업군이 학력을 중요시 여기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기술에 집중하는 실리콘밸리에서 명문대학에 나오지 않아서 후회한다고 말하거나, 아니면 승진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 본 적이 없다. 같은 맥락으로, 명문대학 나온 사람들한테서 학벌 때문에 ㅇㅇ회사에 들어갔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Harvard 연줄로(network를 통해) ㅇㅇ회사에서 자리가 난 것을 알게 돼서 지원했고 입사하게 되었다 또는 MIT를 나온 선배가 추천해 줘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듣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성공 또는 취업 자체가 학벌로 좌지우지된다는 말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지금 linkedin에 가서 아는 회사를 입력하고 거기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공개된 프로필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양한 배경과 다양한 학력을 가진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것은 구글이나 메타에서도 마찬가지다. Ivy League를 꼭 나와야 이런 회사들에 입사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 다 명문대학 출신도 아니다.

실력이 있으면 어디에서나 성공한다

이 말은 특히 내가 실리콘밸리에 와서 처음으로 공감했던 말이다. 한국에서 살 때도 이 말에 동의는 했지만, 그 말은 나에게 해석되기를, 나는 실력이 없어서(공부를 못해서) 성공을 못하는 게 당연하구나 로 해석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생각할 때 한국에서 살 때와 실리콘밸리에서 살고 있는 지금의 "실력이 있다"라는 말의 정의는 많이 바뀌었다.


"실력이 있다"의 의미

엔지니어들에게 있어서 누가 실력이 있다는 것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사람 또는 빨리 해결할 수 있는 사람으로만 해석된다고 오해를 많이 한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실리콘밸리에서도 밥 굶을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우선 이렇게 엔지니어로써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면접도 잘 보고 또 처음에는 조직 내에서 많은 찬사를 받을 수 있다. 근데 그냥 문제해결능력 즉 우리가 쉽게 코딩만을 잘하는 사람을 실력이 있다고 평가받기는 어렵다. 정말 실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탁월해야 하지만, 조직 안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는가가 우선시된다. 여기서는 얼마나 팀원을 많이 돕고, 자신의 지식을 공유하려 노력하고, 회사를 좋은 길로 이끄느냐 또는 좋은 길로 이끄는데 힘이 되느냐가 진정한 "실력자"로 찬사 받는다. 오랫동안 회사에 다닌 선배님들이라고 해서 다 대우받지도 않고, 승진하지도 않고, 나이가 어리고 고등학교만 나왔다고 내려다보지도 않는다.

내가 여기에서 앤지니어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코딩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정말 빛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일을 할 줄을 알는 사람들이다. 가끔은 정말 똑똑한 엔지니어인데 직장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계속해서 떠도는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과 일 하는 게 힘들어서 그렇다. 이런 사람들은 이력서를 보면 계속해서 여러 회사를 6개월, 1년 정도 다니다가 그만두는 사례가 많다. 면접을 볼 때 왜 이렇게 많이 이직은 했냐라고 물으면, 정말 운이 좋지 않아서 여러 회사를 다닐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도 간혹 있었지만, 거의 다는 "상사가 좋지 않았다.", "팀원들이 나를 따르지 않았다." 또는 "나는 맡은 일을 다 잘했는데, 회사가 계속해서 방향을 바꾸는 바람에.." 이런 이유가 한두 번이 아니라, 거의 모든 이직의 이유다. 즉, 나는 실력은 있는데, 남들이 또는 환경이 뒷받침이 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 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우리가 실력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아무리 똑똑해도 조직사회에서 함께 일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쓸모없는 비싼 tool이 되어버린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우리말이 딱인 사람들이다.


초반의 몇 년의 경력을 제외하고는 본인의 일에 대한 경험과 실력 그리고 성과에 따라 실리콘밸리에서는 몸값을 메긴다. 여기서도 FAANG처럼 큰 회사에 다니면, 그다음의 이직은 좀 쉬워지는 경향은 있다. 그러나 꼭 FAANG이나 큰 회사에 다니지 않는다고 해서 본인이 성공할 수 없다고 좌절하는 사람도 없다. 내가 일전에 대기업/ Startup 선호도에 관한 글에서도 설명했지만, 여기서는 죽어도 대기업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런 것이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여기서는 그냥 선호도라고 여긴다. 꼭 대기업에 들어갈 수 없어서 Startup에서 일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그저 다른 미래를 꿈꾼다고나 할까? 스타트업에서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도 많고, 재택근무나 다른 여러 가지 요소를 이유로 Startup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많다.

IVY League학교들. 요즘은 사실 별로 의미가 없다.

썩어도 준치?

그런데 많은 사회나 조직사회에서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는 식으로 이런 화려한 학벌이나 경력을 은근히 선호하는 경향도 있긴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정말 똑똑한데 한 회사에 1년 반 이상을 다닌 적이 없는 친구가 있다. 내 친구지만 정말 너무할 정도로 일에 있어서는 나르시스틱(narcissistic)한 면이 많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전부다 idiot들이고, 상사는 stupid 하고 아무도 자기의 큰 포부와 계획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친구, 직장을 찾는 데는 문제가 없다. 실리콘밸리 회사들 중에 안 다닌 회사를 꼽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이력이 화려하다. 그중에는 Meta, Netflix, Apple 같이 큰 회사들도 들어있다. 이 친구가 "나 또 이직했어."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그 새로운 회사의 팀과 매니저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참고로 내가 Ivy league를 글에서 많이 언급했지만, 요즘은 미국에서 명문학교는 곧 Ivy league라는 생각은 많이 없어졌다. 물론 Harvard를 명문대학 취급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지만, 요즘 새로 뜨는 대학도 많아져서 꼭 여기에 들지 않아도 알아주는 대학들이 많이 생겼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는 UC Berkeley와 Stanford 출신들이 많다. 지역적인 요인 때문이다. 이 밖에도 MIT, Carnegie Mellon, Georgia Technology 등 컴퓨터 공학 쪽으로 알아주는 학교들도 명문학교로 여긴다.

   

공부를 못하면 불편한 나라, 한국

내가 어려서는 우리 가족이 나를 "어디를 가도 성공할 놈"이라고 했다. 그만큼 나는 기발하고, 창의적이고 문제를 다른 쪽으로 해결하는 면이 있었다. 한 가지 못하는 게 있었는데, 바로 공부였다.

어쩜 그렇게 공부를 못했는지, 노력을 안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정말 시험을 못 봤다. 공부만 잘하면 정말 세상에 못 할 것이 없을 것이라고 내 고등학교 때 담임이 하신 말은 아직도 칭찬인지 꾸증인지 헛갈린다.


공부를 못해서 좋은 대학에 못 가고, 좋은 대학에 못 가니까 좋은 직장을 못 다닐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나는 이상하게 대학교 때 진로를 뒤집어서 외국계 회사에 나름 일찍 취업을 했다. 몇 년을 즐겁게 회사 생활을 하다가 다음 목적지를 찾을 때 난관이 왔다. 더 이상 갈 수 있는 곳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자격증공부를 시작했지만, 역시 공부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포기를 하고 외국으로의 유학을 결심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외국에서 쭉 살게 되었다.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 사회는 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었고, 나도 꼭 공부가 아니더라도 다른 것에 도전하고 성공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차츰 배웠다. 지금도 내가 캐나다나 호주로 가서 엔지니어로 취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yes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maybe가 내 최상의 대답이다.


나는 역시 한국에서 찾는 인재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학력도 좋지 않고, 고시를 볼 자신도 없고, 그렇다고 대 기업에서 진행하는 빡센 면접에 날고 기는 이들을 제치고 붙을 자신도 없다.


왜 난 한국 = 실패를 떠올릴까?

요즘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아직도 학력 때문에 좌절하거나, 학력 때문에 취업 또는 승진이 힘든지, 아니면 요즘은 실력만 있으면 당당하게 도전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단 한 번도 대기업에 이력서를 내지 않은 것은 누가 내지 말라서도 아니고, 내가 대기업에 다니고 싶지 않아서도 아니었고, 완전히 시간낭비라고 생각한 나름대로 전략이었다.

한국 가면 보는 공무원학원 광고

한국에서 공부를 못하는 건 참 서러운 일이었다. 지금은 아니길 바란다. 내가 8살부터 19살까지 살아온 그 짧은 시간의 결과가 내 평생을 좌우한 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또 공부 말고도 실력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이 많다. 시험과 자격증만이 성공을 보장하는 사회는 공부를 못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지 않았고, 나는 그것이 나만의 손해가 아니라 사회적인 손실이라고 믿는다.


인생을 살면서 배울 것도 너무 많고, 또 그 배움을 통해서 내 인생이 더 값어치 있어지고, 또 내가 나를 존중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경험이다. 학력의 결과로 또는 공부를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그 사회의 다양성은 사라진다. 다양성이 없어지면 사회는 재미가 없어진다.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기를 덜 희망한다고 들었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Photo by Vasily Kolod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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