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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지 Jul 21. 2024

스토리

광고회사의 제안 실책 1. 보편적인 흐름

완성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이야기에는 기승전결이 존재합니다. 이야기가 흥미로우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지만, 반대로 진부하고 예측이 가능하면 외면당합니다. 대중문화 중에서 이러한 부분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마 영화일 것입니다. 상상력과 짜임새의 정도가 관객수로 나타나기 때문이죠.


명작은 전개와 결말을 알고서도 다시 찾게 만듭니다. 하지만 졸작은 보지도 않았는데 결말을 알 것 같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진부하게 느껴지는 클리셰의 존재 여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영화는 과거부터 감동적인 스토리의 영화가 많았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효과적이었을지 몰라도, 요즘에는 이런 영화가 나오면 '또 신파 영화네'하며 조롱받기 일쑤입니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콘텐츠를 SNS나 OTT를 통해서 경험하죠. 이는 좋은 작품과 그렇지 못한 작품을 구분하는 눈과 예측의 수준을 높여주었습니다. 시대가 흘러가고 변화함에 따라 기대치는 높아지고 클리셰는 더욱 많아졌음을 의미합니다.


제안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광고주는 관객이고 광고회사는 감독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여전히 수많은 광고를 광고회사가 만들지만, 이제는 광고회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마케팅이라는 큰 범위에서 보면 광고주가 더 깊은 경험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영화의 예와 마찬가지로, 광고주는 오랜 세월 동안 많은 광고회사의 제안을 받아보고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시장과 소비자를 보는 눈을 키웠습니다. 광고주 내부에도 특정 마케팅이나 광고에 대한 전문적인 조직이 많이 생겼습니다. 또한 미디어를 통해 많은 지식을 습득했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누구나 광고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광고회사의 제안서는 과거의 보편적인 흐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장 상황, 소비자 행태, 트렌드에 대한 설명을 전형적이고 건조하게 나열하며, 마치 대단한 현상과 인사이트를 얻은 것처럼 설명합니다. 게다가 광고주를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정보와 지식이 부족했던 시대에는 이런 방식이 효과적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광고주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진부한 내용들이기 때문입니다. 상향 평준화 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영화나 그와 비슷한 콘텐츠들을 보며, 제안서에 적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저의 해답은 '스토리'입니다. 앞서 언급한 시장 상황에 해당되는 부분들은 제안서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들이기 때문에 모두가 안다고 해서 간과해서는 안될 것들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나열해서도 안 되며, 특정 제안 흐름에 맞춱 스토리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야 합니다. 광고주가 요청한 과제를 풀어나가면서도, 제안에 대한 흥미를 스토리를 통해 끌어가야 하는 것이죠.


'왜 굳이?'라 생각하신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만약 그 제안이 경쟁PT이며 5개의 광고회사가 참여한다고 하면, 광고주는 진부하고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섯 번이나 반복해서 들어야 합니다. 지루할 뿐만 아니라 관심을 끌 수 없습니다. ("알겠고, 그래서 너네는 뭐 할 건데?")


그래서 때로는 광고주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말도 제안서에 담습니다. 맥락 없이 보편적인 흐름에서 말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점수를 깎아먹겠지만, 스토리로 풀어내면 인정하고 납득할 수 있는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3사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장이 있습니다. 이 중 한 광고주가 제안을 요청했습니다. 어떻게 스토리를 담을까 고민하며 팩트를 찾던 중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경쟁을 해왔지만, 한때는 한솥밥을 먹기도 했으며, 서비스적으로 서로 많이 닮아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의좋은 삼형제'가 파국으로 치닫고, 결국 각자도생하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는 스토리를 해당 광고주의 캐릭터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희극 후에 비극이 있었지만, 이번 광고를 통해 다시 희극이 되리.'


실제로 이 광고주는 탄탄한 스토리를 가진 시장에 속해 있었고, 이러한 팩트를 기반으로 제안서를 전래동화처럼 풀어냈습니다. 이 광고주는 매우 소비자 지향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내부 문화도 밝고 젊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이 적합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흥미롭고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이처럼 스토리를 통해 제안서를 구성하면 광고주에게 더욱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광고주의 감정을 자극하고 이해를 돕는 데 큰 도움을 주죠.



모든 광고주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광고회사에 대한 판타지적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광고주 내부에서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제안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제작은 이러한 기대를 제작물로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기획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반적인 제안서의 내용으로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광고주의 특정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고, 그 시장을 스토리 측면에서 바라보고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떤 광고주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광고주만을 위한 맞춤형 제안서를 만든다면 색다르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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