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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고 Jun 25. 2018

게으른 사람도 사업할 수 있어요!

천성이 게으른데, 어떻게 사업을 하는 걸까요.

많이 바쁘지?


 사업을 하면서 주변으로부터 종종 듣는 말입니다. 흔히 개인 사업은 정신없이 바쁘리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회사원이던 시절에도, 사업하는 지인들을 보면 으레 '엄청나게 바쁘겠다'라고 지레짐작했으니까요.

 실제로 사업을 하면 신경 쓰고 처리해야 할 일이 아주 많습니다. 매달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고, 매출의 변화를 살피고, 고객 요청에 응대하고, 직원들에게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상담하고, 사업장 상태를 관리하고, 앞으로 무엇으로 벌어먹고 살아야 하나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등... 일일이 꼽자면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죠. 간단히 말하면 회사의 인사, 회계, 재무, 운영, 영업, 마케팅, 기타 모든 업무를 아주 소수의 인원이 모두 처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거기다 개인 스케줄도 더하고 주변의 지인을 챙기며 만나는 자리까지 합하면 몸이 여러 개여도 남아나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내가 바쁜가?'라는 물음에는, 회사에 다닐 때보다 바쁘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회사원이던 때보다 신경 써야 할 일은 더 많아졌는데 말이죠. 몸은 바쁘되 마음은 바쁘지 않습니다.




부지런해도 늘 쫓기는 회사생활.

 일이 많은데도 이렇게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내 생각과 호흡에 맞추어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는 늘 쫓기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 의지와 생각과는 관계없이 업무가 주어지고 내 일정이 결정되었습니다. 때로는 주말에 일을 하지 않는데도, 금요일에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일 때문에 주말에 연락이 오지는 않을까, 월요일에 어찌 될까 가슴을 졸이는 때도 있었죠. 내가 일하는 업무 영역 안에서만 일하면 되었지만 영역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 내게 영향을 줄까 전전긍긍했습니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사업은 내 생각과 호흡의 속도와는 전혀 관계없이 굴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의 속도가 내 호흡보다 너무 느리면 숨 막히듯 답답하게 되고, 회사가 너무 빠르면 항상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겠죠. 이 시대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회사가 너무 빨라 늘 일손이 부족해서 야근과 특근을 밥 먹듯 하며 쫓기거나 끌려가는 경우가 많겠네요.

 특히 심리적으로 쫓기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긴장감이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회사에서는 내가 내 업무 영역 안에서 역할을 그럭저럭 잘 수행해낸다고 해도, 상사에게 보이는 내 모습이 나를 평가하고, 심지어 내 선에서 완료한 일도 상사에 의해 뒤집어지거나 반복 수정해야 하는 일이 잦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의 수행은 내가 하더라도, 업무의 완료는 늘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일상이 반복되죠.


회사에서는, 나와 관계 없이 굴러가는 회사의 속도에 나를 맞춰야 합니다. 영화 <레이더스>의 한 장면.


게으른 사람도 하는 창업 생활.

 저는 게으른 편입니다.

 잠도 많은 편이고, 움직이는 것도 싫어하는 편입니다. 집에 콕 박혀있는 소위 '집돌이'입니다.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나 모임을 했다 하면 집에 돌아와서 침대부터 찾는 타입이죠. 여가 생활도 건강과 체력 관리를 위해 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지만, 그 외에는 독서나 게임, 영상 시청 등 야외활동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천성 때문일까요, 그 전 날에 얼마나 일을 늦게까지 했든, 회식 때문에 술을 얼마나 마셨든, 어떤 힘든 일이 있었든 간에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출근해야 하는 회사 생활이 더 힘들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2000년대 중반쯤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생활 키워드 중 하나는 '아침형 인간'이었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매일 아침 이른 시간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고 일과를 시작하는 사람이 그만큼 긴 하루를 보내고 일에서의 성취도 더 잘 해낼 수 있다... 뭐 그런 논리의 생활습관이었죠.

 그러나 아침형 인간, 곧 부지런하고 근면한 사람 만이 사업을 이끌 수 있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부지런한 습관이 아예 의미가 없느냐!라고 반문한다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저 사람마다 생활 패턴이 다를 뿐입니다. 사업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하든 말이죠. 꼭 정형화된 패턴에 개인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각자의 능률을 최대화하는 패턴에 맞추어, 행동과 스케줄을 설정하고 움직이면 되는 것입니다.


한때 우리나라를 뒤흔들었던 책 <아침형 인간> . 그러나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제한한다며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오른쪽은 Russell Foster의 TED 강연.


 나 자신의 일정을 내 손으로 조율하고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창업 후의 제 삶은 아주 자유로워졌습니다. 시간 여유가 넘친다거나 할 일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터지는 일 때문에 바쁘고, 스트레스도 받지만, 내가 바쁜 시간과 바쁘지 않을 시간을 내 손으로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살고 있죠.




게으른데 어떻게 사업을 해요?

 요새도 저는 일찍 일어나도 오전 8~9시, 보통은 10시가 넘어서 일과를 시작하곤 합니다. 하루에 일정을 빡빡하게 잡아도 3개 이상의 일정을 소화하지 않고요.

 하지만 제 천성이 게으르다고 해서 매일 빈둥거린다면, 사업은커녕 어떤 일도 해낼 수 없겠죠. 제가 게으른 와중에도 그럭저럭 2개의 게스트하우스 사업장을 운영하고,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준비하고, 사업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크게 세 가지 덕분인 것 같습니다. 바로 1) 책임감, 2) 우선순위, 그리고 3) 효율성입니다.

(물론 이 요소들은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기준이며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각자 나름의 원동력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1) 책임감

 처음에 제가 게스트하우스 사업에 뛰어든 것은 어떤 대단한 각오나 소명을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개받은 친구가 시작한 숙박 사업에 호기심을 가지고 시작했죠. 그러나 시작은 호기심이었을지언정 일을 해 나가는 과정은 순탄하지도 않고, 문제는 늘 산재해 있으며, 장애물도 아주 정말 매우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정도로만 할까' 혹은 '이 문제를 내가 헤쳐나갈 수 있을까' 심지어 '여기서 그만 할까'라는 고민이 스멀스멀 올라오지요.

 그럴 때마다 제가 이 사업을 이끌도록 만들어준 가장 큰 원동력은 책임감입니다. 일단 시작한 나의 사업, 어떻게든 이끌어나가고 살려 나가자, 이왕 시작한 거 끝장을 보자, 어디까지 내가 만들 수 있나 가능성을 시험해보자는 마음 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만큼이나 내 돈을 꼬나 박았는데! 그리고 내 소중한 지인들이 나를 믿고 투자해준 돈도 적지 않은데! 작은 장애물 앞에서 주저앉을 수는 없죠.

 마치 한 명의 자식을 키워내는 것처럼(제가 비록 가정은 없습니다만) 하나의 생명을 가진 나의 사업이라는 유기체를 온전한 성체로 키워내고자 하는 책임감입니다. 그렇기에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새로운 차별점을 찾고, 더 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죠. 이 태도는 단순히 '하던 거니까... 다른 할 거리도 없으니까... 이거나 계속해야지...'와 같은 자포자기 방식의 마음가짐과는 다릅니다.

 이는 제 친애하는 동료 브런치 작가 경욱의 글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성격도 배경도 아이템도 다르지만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뭔가 일단 시작했으면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끝장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참고 글: https://brunch.co.kr/@kkw119/15).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책 <그릿(GRIT)>에서도 단지 시도 만을 하는 창의성과 열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어갈 수 있는 끈기가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2) 우선순위

 게으른 사람한테 책임감만 잔뜩 있다면 곧 부담감으로 다가와 오히려 분별력을 흐리게 하고 큰 압박을 가할 수 있습니다. 천성은 게으른데, 마음에는 무거운 짐짝을 짊어지고 있으니, 본인은 괴롭고, '뭘 할지도 모르는데 일단 뭐라도 하고 보는' 멍청한데 부지런한 "멍부"가 되죠.

 게으른 사람은 똑똑하게 게을러질 필요가 있습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의 4가지 유형. 그러나 다들 자신은 "똑부" 혹은 "똑게"로 착각한다 카더라......

 회사원의 입장에서는 반복적인 작업을 매크로 혹은 MS 엑셀 VBA를 사용해서 자동화하거나, 영리하게 협업을 하는 방식이 "똑게"의 방식일지 모르겠지만 사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task의 우선순위를 정리하는 것이 필수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해야만 하는 일은 본인 손으로 직접 조정하고 수행하지만, 덜 중요하거나 단순한 일은 위임하고, 그보다도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일은 과감하게 생략할 수 있는 분별 능력과 결정력이 필요하죠. 그렇지 않는다면 게으른 사람이 이것저것 불필요한 일까지 도맡아 하느라 본인이 피로해지고,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순간에 방전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어요.

 예컨대, 새로운 사업장의 허가를 받거나 행정 절차를 밟거나 거래처, 업자와 계약하는 등 운영자 본인이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일에는 나서지만, 견적을 협의하거나 품질 수준을 확인하거나 경쟁자를 조사하거나 시설 수준을 체크하는 등,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명확한 기준이 합의된 업무라면 과감하게 믿고 위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최종 결정권자로서 책임을 지고,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는 명확히 파악하고 있어야겠죠.


3) 효율성

 똑똑하고 게으른 "똑게"의 결정적인 부분이 바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내 눈 앞에 일이 생겼을 때 일단 엉덩이부터 떼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 최선은 아닙니다. 잠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어떤 식으로 일을 처리해야 '내가 가장 덜 귀찮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죠. 다른 말로 하면 잔머리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하루에 여러 개의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면, 어떤 거래처와 몇 시에 어디서 약속을 잡아야 내 동선을 최소화하고 한 번에 만나고 올 수 있는지.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면, 어떤 곳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누구에게 물어보면 가장 믿을 만한 의견을 얻을 수 있는지. 시간과 체력을 써서 일을 해야 한다면, 돌쇠처럼 내가 나서서 우직하게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인건비를 쥐어줘서라도 시킬 수 있는 일인지. 데드라인까지 일을 마쳐야 한다면, 최소한 언제까지 어떤 task를 하면 문제없이 덜 귀찮게 일을 마칠 수 있을지.

 사업하는 사람에게도 침대 밖은 위험하기 때문에, 침대 밖에서 일하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꼭 필요한 일을 가장 덜 귀찮은 방법으로 빠른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방법을 먼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일단 팔뚝부터 걷고 나선다면 며칠이나 걸려서 힘들게 끝낼 일을, 두어 시간 앉아서 고민하고 방법론을 마련하면 효율적인 방법으로 하루 만에 끝낼 수도 있죠.

 이렇게 효율성을 추구하는 자세는 단순히 개인의 업무 수행뿐만 아니라 사업 전체적으로도 비용을 줄이는 데에 아주 좋은 방법론입니다. 불필요하게 여러 번 반복해서 했던 업무를 자동화할 수도 있고, 여러 사람에게 몇 배의 인건비를 지불해야 하는 일을 모아서 한 번에 처리할 수도 있으니까요.




 게으른 제가 어떻게 사업을 할 수 있는지, 돌이켜 보면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나 일의 우선순위나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나 뻔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4~5년 전의 제게는 멀게만 보였던 창업의 길을 가능하게 한 태도이기도 해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여기에 정리한 모든 것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자신 맞춤형 솔루션이기 때문에 독자 여러분은 자기 나름의 태도와 방법론을 찾는다면 좋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게으른 집돌이 타입의 사람도 이런 식으로 사업을 하기도 하는구나...라는 관점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게으른 성격에 이렇게 장문을 쓰는 것도 힘들었다는 점도... 부디 알아주셔요. ㅠ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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