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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고 Jun 21. 2018

풋내기 자영업자가 바라보는 임대차 보호법.

별다른 법률 지식도, 대찬 분쟁도 없었지만 3년 간 겪은 경험에 따라.

저는 3년 간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자영업으로 전향해, 현재 사업장 2개를 운영 중이고 3번째 사업장 오픈을 준비 중인 3년 차 자영업자입니다.

올해 초에 임대차 보호법 개정안이 나왔지만 최근 관련된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고,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죠.


약 3년 동안 임차인으로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개인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과 임대차 보호법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정리할 겸, 자영업자의 입장에서 겪는 이야기들을 이 곳에 풀어보고 싶었습니다. 전적으로 자영업자-임차인의 입장에서 쓰는 글이니 관점이 편향될 수 있다는 부분은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1) '힙 플레이스'는 결국 임대료를 따라 움직인다.

소위 '핫 플레이스', '힙 플레이스'는 2~3년 정도마다 그 위치를 옮기고 있습니다. 제 활동 반경이 서울과 수도권 위주이니 서울 시내를 얘기해보자면- 10여 년 전에 인사동과 삼청동이 처음 '힙 플레이스'로 떠올랐고, 그 이후에는 홍대입구와 상수동, 북촌과 서촌, 이태원과 경리단길, 성수동과 연남동을 거쳐 최근에는 문래동, 익선동과 을지로로 그 위치를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런 힙 플레이스들의 이동 경로를 보면, 보통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에 예술가들이나 개척자들이 작업실 겸 생계유지를 위한 가게를 열고, 그런 특색 있는 가게를 찾아 발 빠른 얼리어답터와 힙스터들이 발굴해 냅니다. 그 뒤에는 그런 힙스터들을 따라 일반 소비자들이 따라 소비하고, 그 지역 전체가 힙 플레이스 상권으로 떠오르는 사이클을 반복하고 있죠.

그렇게 상권이 활성화되는 과정에, 뜨는 동네에서 한몫 챙기기 위해 프랜차이즈나 대규모 자본이 임대료를 웃돈을 주면서까지 들어오고 주변의 건물주들이 '옆집이 올리니까 나도 올려야지!'하며 덩달아 임대료를 올리면서 기존 주민들과 초기 예술가/개척자들이 쫓겨나 다른 동네를 찾아갑니다. 이런 과정을 우린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부르고요.


이런 과정 때문에 특색을 잃고 망가져 버린 대표적인 동네가 삼청동입니다. 2007년 정도부터 한옥을 재해석한 가게들과 특색 있는 점포들이 들어서면서 큰 인기를 끌었지만 2010년 즈음부터 프랜차이즈들이 자리 잡거나 재건축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초기의 예술가들과 상인들은 이미 삼청동을 떠난 지 오래, 기존 동네의 색깔을 잃어버리고 최근에는 그저 그런 서울 동네가 되어버렸죠. 물론 이런 선례가 있기에 최근에는 동네 상권에 프랜차이즈의 진출을 막으면서 문제가 완화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름 난 셰프나 스타들, 수십 억 규모의 중견급 자본이 투자하는 형태로 상권을 장악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죠.


여러 가지 예방책이 있다곤 하지만 기존의 젠트리피케이션 사이클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울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대표적 피해 지역, 삼청동. 출처: http://ppss.kr/archives/132953 


2) 최대 계약 기간 5년, 보장된 기간이 짧으니 돈벌이에만 몰두할 수밖에.

최근 힙 플레이스의 괜찮은 가게를 찾을 때 많은 분들이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통해 찾으실 겁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경우, 그럴듯한 사진을 보고 찾아간 가게들은 정말 '사진만 잘 나오는' 가게이거나, 보기에만 그럴듯한 곳이라 실망스럽기도 한데요.


일각에서 지적하는 부분들을 살펴보면, 힙 플레이스라고 불리는 가게들이 정말 고민이 담긴 음식이나, 체계화된 서비스와 같은 핵심 경쟁력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저 사진 잘 찍힐 만한 인테리어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서 소비자들을 끌어모으고, 가게 가치를 끌어올려 권리금 높게 받고 양도하는 장사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는 거죠.


맞는 지적이며, 사실 저 또한 그런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현행 임대차 보호법의 한계-5년이라는 계약기간이라는 근본적인 원인이 존재합니다. 현행 임대차 보호법 상에서는 5년 뒤에 건물주에 재계약을 해줄지 여부조차 불투명하고, 재계약을 한다고 해도 임대료를 얼마로 협상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임대차 보호법에서 임대료 상승률을 제한하는 기간은 5년까지이기 때문이죠.


얼마 전, 서촌에서 한 족발집 주인장이 둔기를 들고 건물주를 폭행한 것 때문에 구속된 일이 있었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10134700)


정말 위험한 범죄이고 폭행 행위는 엄중하게 처벌받아야 할 일이지만, 수년 동안 한 자리에서 족발 장사만 하며 생계를 이어왔는데, 새로 건물을 인수한 건물주가 임대료를 300만 원에서 1200만 원으로 4배 인상을 한다고 하니 수개월 동안 법적 분쟁을 해가며 버텼고, 수 차례의 강제집행에 불응하다 결국 쫓겨난 후, 건물주와 통화하다 이성을 잃고 그런 사건이 벌어졌다는 사연입니다.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갈등이 비극적으로 치닫게 된 서촌의 족발집


위의 사례는 극단적이지만 현실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임차인인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보호기간이 끝나는 5년 후에 건물주가 맘이 변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건물을 인수하는 경우 지금 임대료보다 폭증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항상 갖게 되죠.


특히나 최근처럼 내부 인테리어를 어떤 컨셉으로, 어느 정도로 꾸미느냐가 관건인 시대에는 초기에 투입되는 설비와 내장공사 비용이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로 소요됩니다. 투자한 입장에서는 당연히 들인 돈을 회수하고 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싶겠죠.


따라서 5년이라는 계약 기간 안에 어떻게든 최대한 이익을 뽑아내고, 계약 만료 전에 가게 가치를 올려서 다른 임차인에게 권리금 두둑하게 받고 양도, 그다음 임대료가 저렴한 다른 지역으로 옮긴다... 는 것이 돈을 빨리, 많이 버는 우월 전략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판국에 한 곳에 진득하게 자리 잡고, 하나의 아이템을 유지하면서, 본질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인정받는 가게는 찾기 힘들어졌죠.

어떤 동네에서 정말 인정받고 맛집, 혹은 좋은 가게로 소문이 나더라도, 임대료에 떠밀려 다른 지역으로 옮기게 되면 그 아이템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니까요. 물론 정말 생활의 달인, 장인 급의 유명인사들은 어느 동네를 가나 손님이 따라가겠지만 90% 이상의 대다수 상인들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저 또한 이런 추세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좀 된다 싶으면 너도 나도 아이템 따라 해서 비슷한 가게가 우후죽순 생기고,

인스타에서 유명하다 해서 가보면 소품 예쁜 거 몇 개 갖다 두고 그저 그런 음료와 간식 팔고,

진짜 괜찮은 가게들은 점점 찾기 힘들어지고,

좋은 가게가 있다고 해도 몇 년 뒤에 가보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그저 그런 다른 가게가 그 자리 차지하고.


하지만 현재의 임대차 보호 5년 한정이라는 시스템 안에서는

그럴듯한 비주얼로 사람 끌어모아서 상권과 가게 가치를 뻥튀기 한 다음에 다른 임차인에게 양도해서 권리금을 챙기는 게 우월 전략이라는 얘깁니다.



3) 건물주의 재산권: 임대료 상승률은 얼마가 적당한 것일까

어떤 의견 중에는, 임대차 보호를 10년으로 늘리고 강제하면 건물주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우려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면 맞는 말입니다.


건물주의 입장에서는 건물 가치를 떨어뜨리는 유흥/퇴폐업종이 아니라면, 어떤 가게가 들어오든지 임대료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잘 내주고, 혹여나 대박 나서 근처 상권 활성화시켜주면 웃돈 받고 건물 양도하는 게 가장 좋은 방향입니다(어째 임차인하고 돈의 스케일만 다르지, 메커니즘은 비슷하네요).


안정적으로 임대료를 받는다는 관점에서는 5년에서 10년으로 기간을 늘리는 게 호재일 수도 있겠지만,

임대료 상승률의 상한선을 5%으로 제한한 채 임대차 보호 기간만 10년으로 늘려버린다면, 혹여 상권이 활성화되어 건물 가치가 올라간다고 해도 10년 안에는 임대료를 크게 올려 받을 수도 없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임대료와 직결된 건물의 가격을 올릴 수가 없기 때문에 자기 재산 가치가 묶여 버리는 거죠. 주택이나 아파트는 수년 사이에 몇 배가 오르는 일도 빈번한데 10년 동안 가치를 묶어 버린다면 반발이 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주택 가격은 주변 환경 변화에 따라가는 경향이 강한 반면, 상가 건물의 가치는 주변 환경 외에도 임차인의 퍼포먼스에도 의존한다는 점이 다르긴 하지만요.


이번 궁중족발 사건에서 얻은 사회적인 관심을 바탕으로 임대차 보호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고 합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1&aid=0000450871).

이번 기회를 통해 임대차 보호 기간을 10년으로 늘리게 된다면, 임차인의 입장에서는 초기에 투자하는 시설 비용을 기간 안에 수익으로 커버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고, 좀 더 안정된 사업 환경에서 가게를 운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당연히 좋은 방향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건물주의 재산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장기 계약 시에는 각 계약 연차마다의 적정 임대료 상승 상한 요율을 달리 한다거나, 장기 계약하는 건물주는 임대사업자의 세율에 혜택을 주는 등, 건물주의 재산권도 일정 부분 보장할 수 있는 부분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4) 임대료가 문제인가 인건비가 문제인가

이건 최저임금 얘기가 나올 때 항상 왈가왈부가 벌어지는 단골 주제 중 하나인데요. 결론은 케바케입니다.

업종에 따라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해야 하는 업종이 있고 그렇지 않은 업종이 있고, 근무시간의 길고 짧은 정도도 다르기 때문에, 어떤 비용이 원흉인가 라는 질문에는 사실 절대적인 답이 없습니다.


예컨대, 저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기에 다수의 객실이 필요하고, 비교적 넓은 공간을 임대해서 사용하지만 인건비는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편입니다. 임대료가 인건비의 배 이상 소모되고 있는 형편이기에 임대료가 수익성에 훨씬 더 큰 요소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해야 하는 요식업이나 기타 서비스 업종이라면 인건비가 더 크리티컬 하겠죠.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고용주-피고용인의 갑을 관계와 임대인-임차인의 갑을 관계로 생각했을 때...

대부분의 자영업자가 임대료에는 별 말을 못 하고 아르바이트생 근무시간을 조정하거나 아예 고용 인원을 줄이는 방향으로 비용 절감을 하는 광경을 보곤 합니다. 마음이 아프죠.


5) 그래서 결론은?

결국 건물주인 임대인이건, 자영업자인 임차인이건 각자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저는 자영업자이기에 임차인의 입장에서 정리하면 초기에 투자하는 시설 비용, 회수 기간, 매달 나가는 임대료, 5년 안에 뽑아내야 하는 수익, 양도할 때 받는 권리금, 모든 것이 얽힌 문제입니다.


저도 첫 번째 가게가 벌써 계약한 지 만 3년 되었는데, 오픈한 후로 부족하지 않은 수익을 내고 있지만...

임대차 보호 기간인 2년 안에 양도하고 나간다고 가정했을 때, 예상되는 권리금과 수익을 다 합해도 초기에 투자한 시설 비용을 겨우 맞출 수 있을 정도입니다. ㅠ_ㅜ


만일 초기 시설 비용에 대해서, 건물 전체의 시설을 손 보아 건물의 가치를 올리는 일이니 건물주가 좀 분담하라고 할 수 있지 않냐고 반문하시는 분이 계실 수 있지만... 대부분의 건물주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더군요.

"나는 다달이 따박따박 월세만 받으면 돼. 너 아니어도 월세 낼 사람 많고, 네가 시설을 고치든 말든 네가 장사하는 사정이지 나와는 관계없다. 싫으면 딴 건물 알아봐"가 대부분 임대인의 태도라 보시면 됩니다.


어쨌든, 추후에 법이 개정된다고 해도 임차인의 영업 안정성을 보장하면서도 임대인의 재산권도 적절한 수준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면 좋겠네요.

결국 모든 것은 소비자에게 영향이 가는 것이니 더욱 신경 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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