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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고 Jul 04. 2018

우린 약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잊은 것은 아닐까

독일은 일상 속에서 약자들과 더불어 살고 있었다.

얼마 전,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독일을 2-0으로 이기는 대이변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전의 2경기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던 대표팀이기에 더 기뻤고, 경기가 끝난 직후 모든 것을 쏟아냈다는 듯 그라운드 위에 쓰러지는 선수들을 보며 자랑스러운 마음이 더했죠.

하지만 무엇보다 제 눈길을 끈 것은 경기 후 독일 대표팀 감독 요아힘 뢰브의 인터뷰였습니다.


“패장이지만 너무 멋있다” 평가받는 독일 감독 인터뷰(영상)

사진 출처 - 뉴시스

“대한민국 선수들은 지치지 않았다. 경기 템포를 아주 높게 유지했다. 기량에 찬사를 보낸다”며, 자국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판단했습니다. “이제 독일은 지는 해와 같다. 독일은 이제 옳은 결정을 내려서 미래에 더 잘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진단했습니다.


인터뷰를 보면서 속 좁게 상대 팀을 깎아내리거나, 선수들을 저평가하거나, 혹은 단순히 감정적으로 반성하고 아쉬워하는 것을 넘어 철저하게 자신들을 객관화하고 진단하고 평가하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태도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질서 있고 균형 잡힌 강대국다운 모습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독일에서 약자들을 배려하는 것.

독일의 강대국다운 모습은, 보통은 2차 대전의 원흉으로서 과오를 인정하고 지속적인 자기반성하는 모습에서도 찾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제가 2년 전 독일 남서부를 여행할 때 발견했던 사소한 배려들에서 떠올리곤 합니다.


2년 전 이맘때, 저는 쾰른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게임쇼 GAMESCOM에 참여하기 위해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제가 여행했던 프랑크푸르트-쾰른-뒤셀도르프와 같은 도시들은 독일에서도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도시들이었고요.

독일의 정돈된 건축물들, 맛있는 맥주와 그저 그런 음식들에서도 독일의 특색을 느꼈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한국에서와 이질감을 느꼈던 것은, '길거리에 장애인들이 많이 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길거리에서는 종종 시각장애인들이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을 볼 수 있었고, 버스나 트램(도시 내에서 레일 위를 따라 이동하는 전차), 지하철 등에서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 이용객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이동하면서 탔던 버스에도 두어 번 휠체어 이용객이 탄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을 위해 경사로가 설치되고 탑승하는 데에 시간이 다소 소요되었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휠체어 이용객들이 탑승할 수 있도록 돕는 버스와 전철 경사로. (출처: wheelchair travel)
자전거나 휠체어 같은 다양한 이동수단으로도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턱이 거의 없는 독일의 거리.


약자를 기다릴 여유가 없는 한국의 사람들.

물론 우리나라에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의 이동 편의를 위해 전철역 계단에 리프트 설치, 엘리베이터 설치가 확대되고 있고 버스도 저상버스 운행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휠체어를 탄 분이 전철을 이용하는 건 본 적이 있어도 버스를 사용하는 건, 아쉽게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관련기사(휠체어 발판 작동 못하거나, 자리 잡기까지 6분)를 보면, 우선 보도와 버스의 높낮이가 터무니없이 맞지 않거나, 경사 발판이 아예 작동하지 않는 등 환경적인 문제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인식 문제였습니다. 휠체어 탄 승객을 보고 난색을 표하는 버스기사, 경사로가 설치되고 탑승하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재촉하거나 경적을 울리는 사람들약자를 위한 기다림과 양보의 여유를 갖지 않는 사람들의 인식이 큰 문제였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천성이 나빠서, 악해서가 아니겠지요. 다만 우리 사회가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여유가 없기에, 사람들의 마음 또한 그렇게 자리 잡은 게 아닐까 합니다.

서울 시내에도 저상버스가 운행하지만, 휠체어 이용객이 타기엔 어려움이 많습니다(출처: 조선일보)




약자도 움직이고 싶고, 오락을 즐기고, 행복하고 싶다.

다시 독일로 돌아가 볼까요. 2년 전 독일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를 발견한 또 하나의 큰 부분은 바로 '오락과 여가'였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프랑크푸르트의 축구경기장-Commerzbank Arena와, 쾰른의 대형 컴플렉스-Koelnmesse 모두,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이용하기 편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Koelnmesse에서 열렸던 GAMESCOM에 입장하는 과정이었습니다. 3일 간 전 세계의 유명한 게임사들이 신작을 발표하고, 수많은 게이머들이 게임을 체험하고 다양한 즐거움을 만끽하는 그 자리에서, 장애인들 또한 정말로 편하고 자연스럽게 입장하고 오락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티켓을 확인하고 행사장으로 입장하는 입구에서는 장애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널찍한 출입구가 한편에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의 출입구를 양보하는 데에 비장애인들은 불만을 표하지 않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줄을 서고 기다렸습니다. '빨리빨리' 이용하고 싶어서 장애인 출입구로 새치기하는 사람도 없었고요. 행사장 내부에서는, 시각 장애인도 이용하기 편하도록 바닥 곳곳에 점자판이 깔려 있었고, 휠체어 탄 사람도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널찍한 폭의 대기줄, 게임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게임을 즐기고 싶은 게이머들은 누구나 같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게임을 체험하고, 오락을 만끽하는 모습이 정말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독일 Koelnmesse에서 열린 게임쇼 GAMESCOM.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잘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설의 설계나 사람들의 일상에서 느껴졌던 점은, 이 모든 과정이 어떤 특혜나 형식적인 양보라고 느껴지지 않고, 정말 당연하게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배려였다는 것입니다.

몸이 조금 불편한 사람들도 똑같이 이동하고 싶어 하고,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 하는 것을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그들을 위해 조금 기다려주거나 내가 조금 불편한 것도 당연하게 여기는 여유가 느껴졌습니다.




한국은 약자들과 함께 사는 것이 너무나 낯설다.

작년에 우연한 기회에 장애인권 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강사 분이 교육을 진행했는데, 말이 약간 느리고 발음은 조금 부정확했지만 힘 있는 목소리와 분명한 메시지 덕에 뇌리에 깊이 각인된 교육이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장애인 특수학교 설치와 장애인 집단생활시설 처우를 얘기하지만 이것은 철저히 비장애인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관점입니다.

장애인들은 집단생활시설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아파트나 주택에서 살고 싶어 합니다. 매일 기상 알림 듣고 일어나, 내가 먹고 싶지도 않은 메뉴의 급식을 먹고, 통제된 시설에서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늦잠을 자고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밥을 먹고 생활하고 싶습니다. 시설의 설계와, 약간의 도움만 받는다면 가능하겠죠.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몸과 마음이 다소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별도의 학급과 특수교육 교사는 배정되어야 하겠지만 마치 수용시설처럼 비장애인들과 격리된 지역에 몰아넣고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평범하게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합니다.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가고 싶지만 이 역시 어렵습니다. 장애인 전용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전용 자가용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치면 도와주는 사람 없이는 탑승조차 힘들고, 보도는 온통 움푹 파인 홀과 높은 턱이 산재해 있어서 잠시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단체로 생활하는 시설이나 학교조차 '집값 떨어진다'며 반대하고, 마치 장애가 옮는 것마냥 장애인을 피하는 현실에서는 자연스럽게 어울려 사는 세상을 생각하는 것은 머나먼 꿈일 뿐입니다.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 사회는 장애인의 존재를 잊어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합니다. 어릴 때부터 격리된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성인이 되어서도 격리된 시설에서 생활을 하며, 이동권도 제한된 상태에서 평생을 살아가니까요. 비장애인은 장애인들을 일상에서 접할 일이 없고,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는 점점 장애인의 존재를 잊어가는 겁니다.



저는 장애인권 운동가도 아니고, 어떤 NGO 기관에 몸 담은 적도 없는, 그저 평범한 자영업자일 뿐입니다. 하지만 2년 전에 독일을 여행하면서- 그리고 이따금 참여하는 봉사활동과 장애인권 교육 등에 참여하면서- 이 문제에 조금이나마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제가 적극적으로 사회운동을 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나 개인의 삶에서라도 '약자들을 위한 기다림과 양보'를 당연한 배려로 생각하고, 조금의 여유를 갖고, 기다릴 줄 아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이 글 또한 이런 저의 경험과 배움과 관점을 조금이나마 더 알리고자, 썼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두어 그 존재를 억지로 잊기보다는, 조금 양보하고 배려해서 모두가 어울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 그런 모습이 바로 선진국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P.S.

간혹 발달장애를 가진 분이 전철을 타면,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차량 안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하는데요. 비장애인이 보기엔 다소 낯설어서 이상하게 쳐다보는 경우도 많고, 때로는 어르신들이 꾸짖기도 하는데, 그 장애인 개인에게는 하나의 도전이고 그를 혼자 보낸 가족에게도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 합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 아니라면, 억지로 돕지 않아도 되고, 그냥 전철에서 책을 읽고 스마트폰을 보고 통화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보면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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