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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고 Mar 27. 2019

자영업자는 사실 타영업자가 아닐까

혼자서 모든 것을 떠맡기엔 버겁기에, 다른 사람을 믿어보아요

우리나라 경제에서 자영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합니다. 2018년 기준 전체 취업자 약 2,682만 명 중 자영업자는 약 564만 명으로, 전체의 21%에 달합니다. 쉽게 말해 한국에서 돈 버는 사람 5명 중 1명은 자영업자라는 뜻이죠.

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779



작년 한 해에 이어 올해까지, 언론을 통해 "자영업의 위기"라는 보도가 줄지어 나왔습니다. 어떤 언론에서는 폐업률이 90%이라는 어마 무시한 수치를 언급하며, 내수경제가 파탄 지경인 것을 우려하기도 했죠.

폐업률 90%에 육박하는 수치가 '새로 연 상점 수' 대비 '폐업한 상점 수'의 비율이기에 기존에 영업을 하고 있던 상점들의 폐업률을 나타내기에는 통계의 함정이 드러난 보도들이었습니다.


10곳 중 9곳이 폐업하는 전 국가적인 위기 사태는 아니긴 해도, 여전히 자영업 경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폐업률은 10년 전에 비해 줄어들었지만 전체적인 폐업 사업자 수는 여전히 높은 실정이고, 아래 기사에서 조명한 생존율의 관점에서 보면 가게 10개가 문을 열면 그중 4곳이 1년 내 문을 닫고, 7곳 이상이 5년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죠. 자영업 비율이 높은 '음식·숙박업'은 특히 1년 생존율은 59.5%, 5년 생존율은 17.9%에 불과해 '버티기 힘든' 자영업의 실태를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http://mn.kbs.co.kr/news/view.do?ncd=4029966


당장 한국의 어느 도시를 가든 거리에 즐비한 음식점과 가게들을 보면 자영업의 비중을 체감할 수 있고, 수시로 바뀌는 가게 간판들과 "임대 문의"라고 붙여 놓은 상가 공실들을 보면 자영업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죠.


몸이 스무 개 서른 개라도 부족한 자영업자의 일


자영업(自營業. self ownership)이라는 용어의 사전적 의미는 스스로를 고용해서 영업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보통은 주변에서 가장 접하기 쉬운 음식점이나 카페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직원이 없거나 소수의 직원 만을 고용한 상태로 운영자 스스로 관리와 실무까지 하는 모든 장사의 형태를 자영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음식점부터 슈퍼마켓, 부동산 중개사무소, 학원, 공증사무소, 소규모 인쇄소, 철물점, 피트니스 클럽까지... 수많은 형태의 자영업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자영업자는 운영자 스스로가 모든 기능을 맡는다 했지만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것이 또한 자영업입니다. 운영자로서 사업장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하루하루 운영하는 것은 기본이고, 고객을 맞이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은 물론 드나드는 돈을 관리하는 회계, 세무에도 신경 써야 하고 법적 행정적인 서류 작업도 해야 하죠. 크게는 투자된 자본과 채무를 관리하고 사업장 시설 유지 보수에도 신경 써야 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자영업자 혼자서는 몸이 수십 개라도 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없습니다.

환영분신술을 못 쓴다면 혼자 다 어찌하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고 집중하자


모든 일을 평범한 개인 혼자서, 특히 처음 사업장을 차려서 장사를 시작한 초보 자영업자라면 더더욱 해내기 어렵습니다. 저도 이제 어느덧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 지 4년 차인 자영업자이지만 아직도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고, 시시각각 발생하는 고객들의 요구사항에 응대하는 것은 지금도 진이 빠지는 일이며 혹여 시설에 문제라도 생기면 해결하는 데에 온 신경이 쏠리곤 하죠.

조금은 진부한 조언일 수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먼저 정의 내리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자영업도 엄연한 사업이기에 꼭 운영자가 해야만 하는 핵심적인 일이 있습니다. 내가 해야 하는 일/할 수 있는 일의 기준은 자신이 정해야 하는데, 그 기준은 일의 중요도일 수도 있고 일의 난이도일 수도 있죠. 

선택과 집중을 잘하면, 멋있습니다.


일의 중요도에 따른 정의

상품/서비스를 구성하고 가격을 결정하는 일이나, 기본적인 정책과 기조를 결정하는 일, 협력 관계인 다른 업체와 계약을 협상하고 타결하는 일, 홍보 전략의 큰 그림을 그리고 핵심 전략을 짜는 일 등은 중요도가 높은 일들이며, 이는 운영자가 직접 책임지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사업을 영위한 기간이 길어지고 규모가 커질수록 초기에 운영자가 직접 처리했던 일들의 중요도가 밀려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시설 관리나 청소, 고객 연락 응대, 가수금 미납금 정산 같은 일들은 초기에는 운영자가 직접 자기 손으로 해야 하지만 사업장을 운영하는 시스템이 정립되고 숙련도가 높아지면 직원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죠. 거래처 계약이나 홍보 전략 수립 같은 큰 업무도 많이 반복되어 익숙한 시스템이 생기면 직원에게 일임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중요도가 높은 일이란 "비일상적인" 일일 수도 있습니다. 평상시 업무에서 벗어난 큰 업무들은 운영자가 직접 책임지고 처리해야 하겠죠.


일의 난이도에 따른 정의

일은 어렵고 쉬운 정도에 따라 분류할 수도 있습니다. 난이도는 지극히 상대적인 것인데, 다른 사람에게 어려운 일이 내게는 쉬울 수 있고 내게 어려운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쉬운 일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의 성격을 난이도에 따라서 구분하려면 운영자 자신의 강점이 무엇인지부터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운영자 자신이 꼼꼼하지 못한 성격인데 손익 회계를 다루거나 혹은 시설 청소를 맡는다면, 운영자의 시간과 노동을 투입하더라도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일을 붙잡고 있다 보면 효율도 나오지 않으니 내적 스트레스까지 받을 수 있겠죠.

꼭 해야 하는 일인데 운영자 자신이 영 소질이 없어서 잘 해내지 못하는 일이라면 과감하게 다른 사람에게 일임하고, 운영자가 강한 부분에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전체 사업 운영에는 득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믿고 일을 맡겨 보자


위에서 정의 내린 대로 일을 구분하고 나면, 이제 내가 해야 하는 일/할 수 있는 일을 솎아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분류해낸 일은, 내가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 일/할 수 없는 일은 과감하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합니다. 여기서 부탁을 하는 대상은 직원일 수도 있고 외부에서 아웃소싱을 할 수도 있습니다.

운영자가 직접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붙잡고 있다가 꼭 해야 하는 일을 놓친다면 전체 사업의 관점에서 오히려 손실입니다. 무엇보다 모든 일을 십자가 지듯 다 짊어지고 하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겠죠. 일의 효율성과, 선택과 집중, 운영자 자신의 체력 안배와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라도 일을 과감하게 위임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떠안다가는 본인이 먼저 쓰러지기 마련.

 

직원을 채용하거나, 외부의 전문가에게 아웃 소싱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당연히 발생합니다. 다른 사람의 시간과 노동을 빌려 쓰는 것이니까요. 직원을 채용할 경우 매달 일정한 급여가 발생하는 것이므로, 직원에게 맡길 일의 범위와 성격을 사전에 명확히 구분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외부에 아웃 소싱할 경우 비슷한 도움을 제공하는 다른 업체와의 비교 대조를 통해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겠죠.

이때, 무엇보다 운영자 대신 일을 수행해주는 사람들을 믿는 것이 우선입니다. 의인불용 용인불의(疑人不用 用人不疑)라는 말을 기억하세요. 의심이 가고 미심쩍은 사람에게는 아예 일을 맡기지 말고, 한 번 일을 맡겼으면 의심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특히 후자의 '한 번 일을 맡기면 의심하지 말라'를 지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이 아니다 보니 자꾸 걱정하고 의심하게 되고 급기야 범죄 예방 목적인 CCTV를 직원을 감시하는 데에 쓰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신중하게 사람을 골라 일을 맡기고, 한 번 맡겼으면 나 대신 일해주는 사람을 의심하지 마세요.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154495


과감하게 일을 위임하면서 좋은 인연을 만나기도 합니다. 제 경우 가볍게 일을 맡기는 파트타임 직원을 채용했다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일을 잘 해내고 어떤 면에서는 운영자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마치 본인의 일처럼 책임감 있게 일을 맡아 해내고, 저보다 훨씬 세심하고 꼼꼼한 사람이죠. 이 인연 덕분에 장기간 일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정식 직원으로 채용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많은 자영업자들에게 현실은 가혹하고 힘듭니다. 회사라는 큰 조직의 일원으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달리, 신경 쓸 것도 너무나 많고 무엇보다 어깨 위에 내려앉은 책임감이 아주 무겁지요. 자영업(自營業)이기에 운영자 스스로 모든 것을 떠안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효과적으로 일을 나누고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언제든지 기댈 수 있는 타영업자(他營業者)가 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믿고, 과감하게 위임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남는 시간과 여력을 새로운 일에 투자하는 결단력을 가져보아요. 그리고 조금 더 여유가 생긴다면, 때로는 거리를 두고 내 사업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가져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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