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고 Feb 18. 2019

퇴사한 장사꾼이 자아를 찾는 방법

하루하루를 생존하면서 뜻 밖에 찾게 된 나의 모습.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스스로에게 늘 해왔던 질문입니다. 내가 어디에서 왔고 어떤 사람인지, 왜 살아가고 있으며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묻고, 고민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나름의 답을 내립니다.

하지만 숨 쉬는 시간조차 낭비일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몰입하고 고민할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각종 소셜 미디어와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과할 정도로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기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조차 구글링 해서 찾을 것만 같네요.


자아를 찾는 방법으로는 고대의 선지자가 사용하여 지금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몇 가지 대표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훌쩍 여행을 떠나 며칠에서 수개월 간 타지에서 삶을 살거나, 명상을 통해 자신 속으로 깊게 파고들어 마음의 모습을 찾는 등의 방법들이 그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지금의 자신이 살고 있는 바쁜 일상에서 물리적으로 자신을 떼어놓거나(여행), 정신적으로 자신을 떼어놓는(명상) 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물리적으로 나를 뗴어놓는 여행, 정신적으로 나를 떼어놓는 명상을 통해 자아를 고민한다고 합니다.


저의 경우 뒤늦게 찾아온 중2병 사춘기를 겪던 고등학교 1학년 때 이후로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여유가 그다지 없었습니다. 대학교 학부생활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병역 의무를 수행하면서, 혹은 취업 준비를 하면서는 타인에게 보이는 내 모습이 어떤지만 고민했던 것 같아요. 학교에선 성격이 밝은 체하며 억지로 왁자지껄 떠들고, 군대에선 정해진 규율에 나를 짜 맞추어 넣어 생활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는 소위 '자소설'을 쓰며 내 모습을 꾸미기 바빴죠.



일을 하면서 비로소 찾은 자아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던 저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뒤늦게 찾아왔습니다. 회사에 들어가 일을 시작하고 내 손으로 돈을 벌면서 이렇게 살면서 나이가 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이전까지의 학창 시절과 대학생 시절에는 이러한 생활을 몇 년 간 하고 나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생활을 할 것이라는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회사생활은 그런 기약 없이 아주 오랫동안 같은 환경에서 같은 일을 해야 할 것이었죠. 늦깎이로 시작한 자아 찾기는 '내가 이 일을 아주 오랫동안 하게 될 거라면 나는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가?'라는 생각부터였습니다.


그 고민은 회사 환경이 불안정해지면서 더 심화됐습니다. 이전에 썼던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첫 글에도 썼지만 경영실적 악화 때문에 구조조정이 시작되었고, 자신에 대한 질문은 조금 바뀌었습니다. '내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한다는 기약조차 확신할 수 없는데 굳이 할 거라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라고 말이죠.


그리고 회사를 나와, 장사를-게스트하우스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https://brunch.co.kr/@backgo/2



나는 사실 나를 잘 모른다


"그건 너답지 않아"
"그래서 나다운 게 뭔데?"


타인이 제 멋대로 나를 판단할 때, 우리는 나다운 것이 무어냐고 반문합니다. 내 입장이 되어본 적도 없으면서 나답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반응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정작 나는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나요? 어떤 것이 나다운 건지 생각하고 정리해본 적이 있나요?

그래서 나다운 게 뭔데?


저는 사업을 하고서야 내가 누구인지,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를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회사라는 시스템에서 나와 내 손으로 직접 사업을 기획하고 장사를 시작해서, 하루하루의 생존을 고민하고 나뿐만 아니라 타인(직원들)의 삶까지 책임지는 상황이 되었을 때 내가 누구인지 더 깊게 생각하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행이나 명상이 자아를 찾는 방법이라면, 저에게는 사업이 곧 반복되는 일상에서 물리적으로 나를 떼어놓는 여행이자 정신적으로 나를 격리하는 명상이었던 셈이죠.




i) 내 모습을 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행동과 반응으로 나타나는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전부터 친했던 편한 사람들을 만날 때와 사회생활을 하면서 업무 상의 상대를 만날 때의 모습은 물론 달랐고, 동업자들과 치열하게 아이디어를 논하고 마찰을 겪으면서, 일을 맡기기 위해 채용한 직원들을 대하고 업무를 지시하면서, 외부자들- 계약 상대, 잠재적인 투자자, 동종업계 경쟁자들과 미묘한 긴장감 속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나타나는 나의 모습이 모두 다른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업을 하며 새삼 발견한 내 모습


사람을 대할 때뿐 아니라 각각의 상황에 대응하는 내 모습 또한 달랐습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닥쳤을 때 그것에 대응하면서, 소정의 성과를 거두었을 때 기뻐하지만 또 다른 미래의 기회와 위험을 생각하면서, 중대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순간이 닥쳤을 때 타당성과 합리성을 검토하면서 새로운 나를 보았습니다.


그렇게 발견한 내 모습은, 나라는 사람이 맡은 일은 끝까지 책임지려 하지만 때로는 미련할 정도로 우직하고, 데이터와 사실에 기반해 신중한 판단을 하지만 때로는 답답할 정도로 우유부단하며,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쌓고자 둥글둥글하게 사람을 대하지만 때로는 음흉한 상대에게는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ii) 내 역량을 보다.

사업의 아주 일부분의 기능과 책임을 맡아 반복적인 삶을 살던 회사원 시절과는 달리 사업에서는 기획부터 실행, 관리, 운영, 인사, 재무, 회계, 마케팅, 고객 대응 등 전방위의 모든 기능을 담당해야만 합니다. 누군가 맡기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일을 만들어야 하고, 마감 기한이나 일의 완성도 또한 내가 결정해야 하죠.


이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분야에서 역량이 있는지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동시에 무엇을 못하는지, 어떤 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나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상당히 분석적이고 이미 일어난 현상에 대해서 패턴을 파악하는 것은 잘하지만 생각보다 번뜩이는 직관이나 아이디어는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큰 기획이 있으면 어떤 일을 할지 to-do-list를 수립하고 차근차근 단계 별로 일을 만들어 완성하는 것은 잘하지만, 그 속에서 정말 꼼꼼하게 챙겨야 하는 디테일은 부족했죠. 어떤 부분에 강점이 있고 약점이 있는지 잘 파악할 수 있었기에 아웃 소싱하는 것이 더 나은 업무 또한 명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iii) 내 생각을 보다.

제가 비록 짧은 시간 사업을 했지만, 나름의 우여곡절과 부침을 겪었습니다. 만 3년 동안 장사했던 시간은 체감 상 마치 10년은 지난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느리게 느껴지는 희로애락의 시간을 지나면서, 내가 왜 사업을 시작했는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지, 사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특히 생각지도 못한 압도적인 난관에 부딪히게 되면 일말의 회의감과 함께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드는 때도 있죠.


나는 이 사업, 이 장사를 하면서 진정으로 무엇을 지향하고 있을까요? 나는 왜 사업을 할까요? 돈, 명예, 영향력, 삶의 원동력, 책임감, 인생 공부, 지속가능성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있기에 사업의 이유를 단 하나로 결정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지향성을 가지고 사업을 하고 있는지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튼튼한 가치관을 설정하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나의 개인적인 관(觀)을 설립하는 의미뿐 아니라, 운영하고 있는 사업의 방향성과 가치 또한 결정하게 되기 때문이죠. 운영자가 지향하는 가치는 직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상품과 서비스에서 드러나게 되며, 고객들은 신기하게도 그런 운영자의 태도를 귀신 같이 잘 파악해 내더군요.

운영자의 심지가 가늘고 이리저리 휘둘리게 되면 사업 또한 갈피를 못 잡고 표류하게 됩니다. 내 사업이 재무적 성과를 추구하는지, 혹은 사회적인 영향력을 추구하는지, 지속가능성을 위해 공동체에 기여할지, 그 과정에서 어떤 기준과 원칙을 가지고 이해관계자들과 관계를 맺을지 기준을 세워보세요.




마치 여행하는 듯, 명상하는 듯 사업을 통해 내 자아를 찾는 과정은 쉬운 여정은 아니었지만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는 과정이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닥치는 눈 앞의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하루살이처럼 살 수도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과거보다 더 나은 나로 성장하고 싶었기에 '사업을 하는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더 고민했습니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한 템포 쉬고 한 걸음 떨어져서, 숨을 돌리고 모습과 상황을 관조해보곤 했습니다. 아무리 급하게 느껴지는 일일지라도 며칠, 짧아도 몇 분 동안 고민하고 판단할 시간 정도는 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나에게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좋은 일이 생겼는데, 어떤 이유로 이런 성과를 얻었을까, 우리 팀과 직원들 덕인가, 환경이 좋아서인가?
갑자기 큰 문제가 닥쳤는데, 지금 하고자 하는 대응이 정말 최선일까, 객관적으로 옳은 판단일까?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기분이 그저 내 머릿속에서 만든 허상 아닐까, 다른 사람도 나에게 공감할까?
맡아서 하려고 하는 이 일은 타당한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거나 함께 분담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나?


이렇게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생각과 가치관과 행동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고, 자연스럽게 나는 어떤 일을 잘하고 못하는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인지, 특정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 사람인지, 어떤 욕망을 가진 사람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매일이 생존의 연속인 혹독한 사업의 길에서 살아남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성과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생존의 과정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성취가 아닌가 합니다. 사업에 뛰어드는 용감한 도전자 여러분 또한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과 명상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