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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고 Oct 16. 2017

게스트하우스 창업기03-공상하다.

텅텅 빈 생각을 시작.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외, 회사 때려치고 나온 자영업자 하찮은 회사원의 글뭉치:
brunch.co.kr/magazine/hahoetal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아무리 그럴듯한 아이템이라도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마음이 내키지 않아 동력을 잃기 십상이다. 부가가치가 어마어마한 보석 같은 상품이라도 내가 잘 모르거나 잘할 자신이 없다면 쓸모없다.


흔히들 젊은 나이에 창업을 하면 플랫폼 비즈니스나 O2O 같이 새로운 트렌드에 맞춘 아이템을 잡곤 한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고 미래 가치 또한 높더라도 IT 분야는 내가 잘 모르는 분야였고, 난 개발 능력 또한 전무했다. 무엇보다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나는 가상의 시공간에서 수요와 공급을 창출하는 비즈니스보다는, 재화든 서비스든 뚜렷하게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을 손님에게 팔아 돈을 버는 고전적 비즈니스가 더 명쾌하고 재미있어 보였다.

그래, 소위 말하는 '장사'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길거리의 모든 것에서 숫자를 어림잡아 읽기 시작했다.

손님이 많은, 혹은 적은 식당은 무엇 때문에 그러한가?

그저 맛있다고만 생각했던 식당에 갔을 땐, 이 음식에 쓰인 재료는 단가가 얼마일지, 주방-카운터-홀에서 일하는 사람은 몇 명이고 인건비는 얼마나 될지, 총 몇 석의 좌석이 있고 식사 시간은 대략 몇 분이며 하루에 몇 명이나 올 것이고 회전은 어떻게 될지.

데이트 코스를 오가며 예쁘다고만 생각하고 지나쳤던 아기자기한 공방에서는, 상품을 파는 온라인 채널이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상품을 사는지, 상품 판매 외에 유료 강좌와 같은 활동을 하는지.

각 동네마다 손님들은 연령층이나 성별이 다른지, 물가는 어떤지, 골목에 숨어있는 맛집은 사람들이 어떻게 찾아내는지, 흔한 요식업 외에 다른 종류의 자영업은 어떻게 장사하는지, 몇 개월 파리 날리다 결국 간판을 내리는 가게는 왜 망했을지.

생각들 중 대부분은 그저 자문자답하는 텅 빈 생각들, 공상들이었다.



그러나 질문을 하며 생각의 공간을 만들고, 나름의 대답을 하며 공간을 채우다 보니 매일 보는 광경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시기, 나는 동대문에서 전철역 두 개 정도 떨어진 동네의 오피스텔에서 거주했다. 다소 번잡하고 후줄근한 동네지만, 사무 밀집지역인 종로와 적당한 거리 덕에 신축 오피스텔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갓 회사원 생활을 시작한 2014년 초부터 출퇴근길에 중국인들이 많이 보였다. 그 근처에 위치한 레지던스형 숙소에 묵으러 오던 사람들. 일상적으로 별생각 없이 그들을 보던 때에는, 이 동네에도 중국인들이 오네, 복잡하다, 단체로 우르르 몰려다니네, 따위의 스쳐가는 느낌뿐이었다.


그런데 다른 시선으로 보니 그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은 다 어디서 오는 걸까? 왜 관광지도 없는 이 곳까지 오는 거지? 그러자 그들의 손에 잔뜩 들린 짐이 눈에 띄었다. M 쇼핑몰, D 쇼핑몰 등 동대문 번화가에 위치한 쇼핑몰 봉투를 들고 다니는 중국인들. 그렇다면, 동대문에서 쇼핑을 하고 두 정거장, 2km 이상 떨어진 이곳까지 숙소를 구하러 온다고? 

우선 온라인 예약 사이트를 통해 근처 지역의 숙소들을 검색했다. 작은 게스트하우스부터 규모 있는 호텔까지 형태도, 가격도 천차만별이었다. 공통점은, 예약 사이트마다 가까운 날짜에는 대부분 방이 없었다.

찌릿, 하며 소름이 돋았다. 여기서 뭔가 하면 확실히 사업을 할 수 있겠다.


공상 속에 두루뭉술한 문답 만이 맴돌다가, 드디어 중심적인 생각이 잡히기 시작했다. 외국인, 그중에서도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숙박 사업. 위치는 동대문 근처.



텅 빈 공상에 뚜렷한 중심 생각으로 뼈대를 잡고, 관찰한 데이터와 숫자를 짜 넣으면 그럴듯한 구상(構想)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저 공상 만이라면 한낱 백일몽으로 끝나기 십상이지만, 구체적인 구상을 시작하면 실행으로 이어지는 원동력이 된다.


이런 사업, 혼자보단 여럿이 하는 것이 좋겠지. 떠오르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대학 학부 시절 주변 사람들에게 몇만 원부터 몇 십만 원까지 십시일반 투자를 받아 1년 반 동안 수많은 국가를 여행한 친구. 여행기를 갈무리하여 개인 출판까지 했던, 당돌하고 에너지 넘치는 친구였다.

싱거운 안부나 묻고 밥 한 끼 하자는 말이라면 오히려 꺼내기 어려웠겠지만, 뚜렷한 동기와 목적이 있으니 의욕이 솟았다. 바로 연락을 했다.


야, 재밌는 일 같이 해보지 않을래?



<하찮은 회사원의 탈출기> 중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글 목록:

게스트하우스 창업기-프롤로그:        https://brunch.co.kr/@backgo/1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눈 뜨다.        https://brunch.co.kr/@backgo/2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2-갈피 잡다.    https://brunch.co.kr/@backgo/3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3-공상하다.     https://brunch.co.kr/@backgo/7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4-관찰하다.     https://brunch.co.kr/@backgo/4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5-구상하다.     https://brunch.co.kr/@backgo/8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6-만남.            https://brunch.co.kr/@backgo/5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7-설레다.         https://brunch.co.kr/@backgo/6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8-숨 고르기.     https://brunch.co.kr/@backgo/9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9-계산.             https://brunch.co.kr/@backgo/10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0-헤매다.       https://brunch.co.kr/@backgo/11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1-첫삽 뜨기.  https://brunch.co.kr/@backgo/33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2-만들어지다.https://brunch.co.kr/@backgo/37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3-그랜드오픈.https://brunch.co.kr/@backgo/38

게스트하우스 창업기-에필로그:         https://brunch.co.kr/@backgo/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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