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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고 Oct 02. 2017

게스트하우스 창업기01-눈 뜨다.

회사 밖의 세상에 개안(開眼).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외, 회사 때려치고 나온 자영업자 하찮은 회사원의 글뭉치:
brunch.co.kr/magazine/hahoetal


한 때 나도 회사를 사랑했다.


사업이 안정적이면서도 급여와 대우도 좋은 회사. 거기다 좋은 사내문화까지 갖춘 기업.

뭇 취준생들이 꿈 꿨고, 나 또한 취업을 준비하면서 꿈 꾸었고,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이다.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인생 최고의 성취인 듯 기뻤고, 입사 초기에는 내 손으로 돈을 버는 기쁨과 든든한 회사에 대한 소속감에 한껏 들떴다.


좋은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과 일하게 된 것이 즐거웠고, 합리적인 기업문화를 갖추어 가는 모습-예컨대, 불필요한 보고 문서 작성과 회의를 최소화하고 정시 퇴근을 의무화(!)하는 등- 그 변화를 경험하는 것도 즐거웠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도 잠시, 나의 입사 전까지 연이어 호(好)실적을 달성하던 회사는 그 해 여름부터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외부 환경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여러 지표가 암울하게 나타났다. 회사 사람들은 회사의 기반 사업이 흔들린 것은 아니라며 서로 위로했지만 실제로 나타나는 숫자는 비정했다.

그리고 결국 내가 입사한 첫 해인 2014년 연말, 회사는 거짓말처럼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5년 5월의 봄, 회사는 희망 퇴직을 실시했다.


회사는 회사로서 마땅한 일을 했다. 수 년간 안정적이었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정체되어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잔가지를 잘라내고 묵은 먼지를 털어내듯, 회사는 구조를 조정했다. 다만 잘라내고 털어내는 사람도, 잘리고 털리는 사람도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던 동료들이었다는 것이 가장 큰 비극이었다.


희망 퇴직. 그 이름만 들으면, 퇴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것처럼 들린다. 실제로도 그렇게 타이밍을 잡아 이직하거나 새로운 일을 찾는 사람들이 '일부'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회사원들에게 현실은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공공연히 공지되지는 않았지만 희망 퇴직의 대상이 지목되었고, 그들은 비밀스럽게 메시지를 받았다. 조용히 한 사람씩 퇴직 면담을 받으러 가는 것을 보며 침묵의 아비규환이 사무실을 점령했다. 겉으로는 아무도 소리내지 않았지만, 모두가 속으로 울부짖었다. '다음은 내가 아닐까'라는 공포 때문에.




그렇게 한 달여 만에 10명 중 한 명 꼴로 사람이 줄었다. 50대의 부장님부터 30대 초반의 대리까지도 자리를 비웠다. 그들이 짐을 싸는 것을 보며, 작별인사를 하는 것을 보며, 남은 사람들은 술잔을 기울였다.

살아 남은 너와 나를 위해, 아니 나를 살려 남겨준 회사를 위해 건배.


결국 운이 좋아 살아 남겨졌기에, 사무실에 앉을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퇴직 대상이 된 사람들이 일을 잘 못했을까?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쳤을까? 혹은 열심히 살지 않았을까?

그런 경우도 있었겠지만, 다수는 불가항력적인 외부 요인으로 인해 지목됐다.

내가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않았던 직무와 소속 때문에, 실적이 아닌 상사와의 관계가 크게 좌우하는 평가 때문에, 한정된 TO로 인해 승진에서 밀렸기 때문에, 운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정리해야 했다.



나는 아직 초년차라서, 아직은 운이 좋지 않은 일을 겪지 않아서, 살아 남겨졌다. 

무언가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일할 터전을 잃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 때부터 하찮은 회사원은 회사 밖으로의 탈출을 꿈꿨다.



<하찮은 회사원의 탈출기> 중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글 목록:

게스트하우스 창업기-프롤로그:        https://brunch.co.kr/@backgo/1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눈 뜨다.        https://brunch.co.kr/@backgo/2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2-갈피 잡다.    https://brunch.co.kr/@backgo/3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3-공상하다.     https://brunch.co.kr/@backgo/7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4-관찰하다.     https://brunch.co.kr/@backgo/4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5-구상하다.     https://brunch.co.kr/@backgo/8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6-만남.            https://brunch.co.kr/@backgo/5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7-설레다.         https://brunch.co.kr/@backgo/6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8-숨 고르기.     https://brunch.co.kr/@backgo/9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9-계산.             https://brunch.co.kr/@backgo/10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0-헤매다.       https://brunch.co.kr/@backgo/11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1-첫삽 뜨기.  https://brunch.co.kr/@backgo/33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2-만들어지다.https://brunch.co.kr/@backgo/37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3-그랜드오픈.https://brunch.co.kr/@backgo/38

게스트하우스 창업기-에필로그:         https://brunch.co.kr/@backgo/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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