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터전을 잡는 과정. 밑도 끝도 없이 설레발부터 치다.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외, 회사 때려치고 나온 자영업자 하찮은 회사원의 글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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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사업 계획서나 구체적인 플랜도 없는 상황에서 수천만 원 투자를 모집한 쪽이나, 투자를 결정한 쪽이나, 3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좀 많이 미친 결정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새로운 사업장을 기획하고 오픈하는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함께 하는 귀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나와,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있던 H군, 그리고 나처럼 투자하기로 결정한 그의 친구 P군, 이렇게 세 명이 모여 하나의 팀을 결성했다.
일단 예산부터 편성했다. 셋이서 모은 예산은 억 단위의 금액으로, 20대 후반의 사회초년생들이 만지는 돈 치고는 눈이 튀어나오는 상당한 액수였다. 하지만 찬찬히 그 출처를 뜯어보면 그동안 여기저기 넣어두었던 주식과 펀드 예금을 깨서 영혼까지 끌어모은 자금에다 대출까지 더한, 귀중한 쌈짓돈.
참고로, 나나 P군이나 안정적이고 이름 난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에 은행에서 낮은 금리로 상당한 액수를 대출받을 수 있었던 것이지, 자영업자인 지금은 여기저기 알아보고 신용보증을 껴도 간신히 받을까 말까 한 액수다.
혹여나 회사를 다니면서 딴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할 마음을 가지고 있고, 꽤 큰 금액을 투입할 생각이라면, 직장인 시절에 대출을 고려하는 것이 모든 조건에서 낫다(소곤소곤).
이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총알이 준비되었다. 탄창에 쌓인 총알을 어디에 쏠지 자금 사용처를 정하기 전에, 새로운 가게를 오픈하기 위한 고민거리들이 생겼다.
최근 수년 간 소위 '핫한' 동네로 떠오르고 있는-이전의 연남동과 경리단길, 성수동, 최근의 익선동이나 을지로까지-인기 있는 지역들을 살펴보면, 해당 지역의 특색 있는 가게들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요소는 특히 3) 공간 컨셉과 공간 구성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공간의 인테리어 디자인과 컨셉, 소품 구성을 독특하게 하여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요소들 말이다.
그러나 가게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1) 위치와 2) 부동산의 크기가 더 중요하다. 좋은 위치에 자리 잡아야 손님들을 끌어모을 수 있고, 어떤 크기의 부동산을 고르냐에 따라 보증금과 임대료 등의 핵심적인 비용이 정해지기 때문. 특히나 숙박업은 요식업처럼 손님들을 회전시킬 수도 없고, 매출은 객실의 수과 객단가에 따라 상한선이 정해져 있기에 어느 위치의 어떤 부동산을 정하느냐가 그 가게의 수익성을 결정하는 크리티컬한 요소다. 게다가 위치와 공간에 따라 가게의 모습과 분위기도 정해질 테니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이렇게 새로운 가게를 준비하면서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하는 과정은, 그저 대학교에서 배웠던 경영학 수업과는 확연히 달랐다. 회사에서 겪었던 프로젝트 기획 과정과도 사뭇 달랐다. 대학교에서는 인터넷에 널려 있는 자료를 짜깁기한 공상이었다면 지금은 실제로 우리의 자금을 사용해서 가게를 여는 실전이고, 규모 있는 회사에서는 조금만 품을 팔면 얻을 수 있었던 자료와 정보를 무(無)에서부터 새로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장사를 처음 해 보는 아마추어들은 정보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다면 오로지 감으로 접근해야 할까? 경험 상 '감'은 철저한 조사와 충분한 자료, 그리고 풍부한 경험을 기반으로 할 때에야 그 빛을 발하곤 한다.
우선, 게스트하우스의 주 고객층은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의 행동 패턴 자료를 탐색했다. 우리 같은 아마추어들에게는 참으로 다행히도 우리나라의 공공 데이터 수준은 매우 높다. 통계청과 한국관광공사 등에서 관광과 관련된 다양한 데이터를 쉽게 수집할 수 있었다. 우리가 큰 도움을 얻었던 것은 한국관광공사에서 매년 발표하는 <외래관광객 실태조사 보고서>(https://kto.visitkorea.or.kr/kor/notice/data/statis/tstatus/forstatus.kto). 업력 3년 차인 지금도 큰 도움을 얻고 있는 보고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당시를 기준으로, 80%가 넘는 절대다수의 관광객이 서울을 방문하고 60%가 넘는 관광객은 명동을, 절반에 달하는 관광객이 동대문시장을, 그 외 고궁과 남산, 남대문시장을 방문한다.
그래서 명동과 동대문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탐색을 시작했다.
탐색을 시작한 지 고작 며칠 만에, 좋은 매물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만일 신이 있다면, 하늘이 우리의 도전을 지켜보고 돕는구나, 하는 발칙한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도 기억나는데, 3년 전 2015년 초여름의 어느 날, 그 날만큼은 회사를 정시 퇴근하고 나와서 동대문으로 향했다. 동대문역 출구 바로 앞, 흥인지문 사거리와 맞닿아 있는 5층 건물. 위치는 환상적이었다. 보증금과 임대료 등의 조건 또한, 지금 돌아봐도 나쁘지 않은 조건.
그리고 무엇보다 옥상에 올랐을 때, 흥인지문과 매**트 호텔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뷰를 마주했을 때 그 벅참이 아직도 떠오른다. 게스트하우스의 로망인 옥상의 휴게공간, 이런 환상적인 뷰라면 모든 여행자에게 매력적이겠지. 여기가 바로 내 제2의 인생이 시작하는 곳이구나! 가슴이 마구 뛰고 설렜다.
아래의 영상은 그 건물의 옥상부터 훑어내려 오며 찍었던 것. 목소리부터 들떠있는 기분이 느껴지지 않는가? 심지어 20초쯤에는 출입문에 머리를 정통으로 부딪혀서 고통을 떠안은 상태에서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환상적인 위치와 옥상 뷰 덕분에 섣불리 설렜지만, 가게를 여는 과정에서 생각해야 할 부분은 너무나 많았다.
<하찮은 회사원의 탈출기> 중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글 목록:
게스트하우스 창업기-프롤로그: https://brunch.co.kr/@backgo/1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눈 뜨다. https://brunch.co.kr/@backgo/2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2-갈피 잡다. https://brunch.co.kr/@backgo/3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3-공상하다. https://brunch.co.kr/@backgo/7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4-관찰하다. https://brunch.co.kr/@backgo/4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5-구상하다. https://brunch.co.kr/@backgo/8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6-만남. https://brunch.co.kr/@backgo/5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7-설레다. https://brunch.co.kr/@backgo/6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8-숨 고르기. https://brunch.co.kr/@backgo/9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9-계산. https://brunch.co.kr/@backgo/10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0-헤매다. https://brunch.co.kr/@backgo/11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1-첫삽 뜨기. https://brunch.co.kr/@backgo/33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2-만들어지다.https://brunch.co.kr/@backgo/37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3-그랜드오픈.https://brunch.co.kr/@backgo/38
게스트하우스 창업기-에필로그: https://brunch.co.kr/@backgo/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