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고 Jan 28. 2019

게스트하우스 창업기11-첫삽 뜨기.

수개월의 고민을 거쳐, 드디어 첫 삽을 뜨다.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외, 회사 때려치고 나온 자영업자 하찮은 회사원의 글뭉치:
brunch.co.kr/magazine/hahoetal


관광숙박업으로의 용도변경을 위해, 규정에 맞게 도면을 수정하는 동안 시간은 자꾸 흘렀다. 도면 수정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된 건, 규정 상 복도와 벽 두께, 문 너비 등을 모두 맞추다 보니 우리가 처음에 구상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

애초에 구상했던 사업장의 모습은 마치 테트리스처럼 ㄱ(기역) 자 모양으로 객실을 만들어, 요리조리 짜 맞추어 넣어 전체 객실 수가 거의 30개에 달하는(!) 모습이었다. 규정에 따라 공간 한가운데에 폭 150cm의 복도를 뚫고, 객실 사이에 두께 30cm 이상의 벽체를 집어넣고, 모든 객실에 채광이 가능한 창문을 배치하다 보니 전체 객실 수는 19개로 팍 쪼그라들고야 말았다. 즉, 애초에 예상했던 수익성이 약 2/3으로 줄어들었기에 고민이 깊어진 것.

가운데에 복도를 두어야 해서, 치명적이었다.


하지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영업 수익 계산기를 두드리기 전에, 더 중요한 다른 계산이 우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바로 임대차 계약 상의 첫 차임 지급일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 지난 회차 글에도 써놓았지만 임대차 계약을 맺을 때, 특히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가 예정된 경우에는 차임 지급일을 최대한 유리한 조건으로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경우처럼 설계와 용도변경 같은 행정절차가 걸려있다면 더욱 그렇다.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지 2개월이 꼬박 흘러 용도변경 도면이 확정되었고, 우리는 곧장 도면대로 시공해줄 업체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계약 상 차임 지급일은 3개월 후부터였기에 단 1달 만이 남아있었고 우리의 마음은 급해졌다. 지금이라면 디자이너에게 설계 용역을 맡길 때 시공 과정 감리도 함께 의뢰하고, 전기/설비/목공 등 각 분야의 업자를 따로 섭외하여 조율했겠지만 그 당시에는 그 역할을 총괄해줄 업체가 필요했다.


최근에는 시공 업체의 정보를 찾는 것이 좀 더 용이해지고 간단한 공사 의뢰 및 견적을 받아볼 수 있는 플랫폼도 어느 정도 확산이 되었지만(관련기사),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소규모 시공 시장은 공급자 중심의 정보 비대칭이 만연한 시장이다. 시공 업체 정보 공유 O2O 서비스의 대표 주자인 집닥에서는 이러한 세태 속에서 소비자를 위한 출판 프로젝트까지 했을 정도.


시공 비용은 크게 자재비와 인건비 두 가지로 나뉘는데, 같은 내용의 공사에도 어떤 자재를 얼마나 쓰느냐, 어떤 전문성을 가진 인부 몇 명이 며칠 일하느냐에 따라 자재비 인건비 모두 고무줄처럼 얼마든지 늘었다 줄었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벽지를 도배한다고 쳤을 때에도 실크벽지냐 합지벽지냐에 따라, 방염 처리 여부에 따라, 벽지 아래에 보강용 부직포를 덧바르느냐에 따라 견적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그렇기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최대한 연줄을 끌어모아 많은 업체에 연락하고 다양한 견적서를 받아보는 수 밖에 없다.



우리의 공사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의 연줄을 총동원하여 업체 7개에 연락했다. 도면과 우리가 원하는 reference를 보냈고, 다양한 견적을 받았다. 어떤 업체는 구체적으로 콘셉트 사진과 수정 도면을 견적과 함께 보내는가 하면, 어떤 업체는 근거가 무엇인지 모를 견적서 1~2장만 보내기도 했다. 이때 처음으로 절실하게 느꼈던 점은, 같은 도면을 기준으로 한다고 해도 세부 디테일을 어떻게 공사할지, 어떤 자재를 쓸지에 따라 크게는 1.5배 이상 견적 차이가 났다는 것. 단순히 견적이 저렴하다고 고르기에는,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불투명하고, 그렇다고 비싼 업체의 손을 들어주자니 왠지 호구 잡히는 것 같은 기분이고.

 

처음에 접하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견적서.


우선 견적 수준에서 우리 예산을 크게 초과하는 업체와 너무 저렴하게 부른 업체를 걸러냈고, 수 차례의 미팅을 거쳐 후보 업체를 5개, 3개, 마지막엔 2개로 점차 줄여나갔다. 그 과정에서 세부적인 디테일-어떤 색감을 입힐지, 벽체는 어떤 소재로 할지, 단열공사는 어찌할지, 마감은 무엇으로 할지 등의 세부사항을 논의했다.

사실 시중의 많은 업체는 이런 미팅 과정조차 없이 일단 계약부터 하고 세부사항을 논의하자고 할 텐데, 물론 도면과 견적을 다루는 모든 과정에서 업체의 노동력이 들어가기에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의뢰하는 사람 또한 수천만 원에서 억 대가 넘는 비용을 들이는데 당연히 더 꼼꼼하고 세심하게 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세심하게 보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결국 첫 차임 지급일이 다가왔다. 아직 시공업체를 선정 중이었고, 이대로 가다가는 공사 기간까지 감안하면 두어 달의 차임이 더 나갈 것 같았다.

결국 우리 3인의 운영자는 긴급하게 자금 추가 수혈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추가적으로 투자를 결정해준 사람은, 동업자 중 한 명의 또래 친구였다. 그간 짧지만 우리 3인은 4~5개월을 함께 준비해온 시간과 경험이 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과 잘 섞일 수 있을까? 특히 가장 중요하면서 민감한 사항일 수 있는, 지분과 영업 수익 배분을 어떻게 정해야 하지? 어디부터 얼마나 설명해야 할까? 이런 여러 가지 상념이 무색하게 다행히 잘 맞는 사람이었고, 수익 배분 비율도 우리 4인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합당한 수준으로 정해 동업계약서를 새로 체결했다.


추후 언젠가 다른 글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이지만 함께 사업을 할 때에는 동업자가 친하든, 친하지 않든 꼭 중요한 사항을 문서화하는 것이 좋다. 다소 민감한 문제일지라도 모두 터놓고 말해서, 문서화해놓아야 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동상이몽의 사태를 방지할 수 있고 동업자 간에 논의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추가 투자 수혈로 잠시 숨통이 트였지만, 여전히 시공 업체는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처음 7곳이었던 후보는 예산과 시공 능력의 문제 등으로 점차 줄여나갔고, 약 1개월 반이 지난 시점에는 마지막 두 곳의 후보가 남았다.


한 곳은 가격을 아주 저렴한 견적을 부르는 대신 1인 사장님이 허슬하며 운영하는 동네 업체였고,

나머지 한 곳은 견적은 조금 높지만 나름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디자인과 시공에서 꽤 능력 있는 업체였다.


이제 4인으로 늘어난 우리 동업자들은 치열한 논의의 과정을 거쳐, 결과물이 조금은 아쉬울 가능성이 있지만 예산 관리를 위해 비용이 적게 드는 첫 번째 업체를 선택했고, 아쉽게 선택지에서 제외된 두 번째 업체에게 연락했다.


그런데, 선택에서 제외했음을 통보하자, 놀랍게도 20% 가까이 차이 나는 견적을 맞춰주겠다고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이 시점에 또다시 한 번, 역시 인테리어는 비용이 불투명하고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구나, 하고 느꼈다. 또 한 편으로는 갑자기 견적을 확 깎는다기에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왜 갑자기 이러지, 공사 비용을 조금만 받는다고 하고 중간에 돈 모자라다고 하면 어쩌지, 걱정이 들었다. 역시나 나중에 돈이 더 들긴 했지만...



이러한 우여곡절의 과정 끝에 시공업체와 계약을 맺고 드디어 첫 삽을 떴다.


동업자들과 첫 만남을 가진 지 6개월, 동대문에서 매물을 만나 임대차 계약을 맺은 지 4개월 만이었다.




<하찮은 회사원의 탈출기> 중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글 목록:

게스트하우스 창업기-프롤로그:        https://brunch.co.kr/@backgo/1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눈 뜨다.        https://brunch.co.kr/@backgo/2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2-갈피 잡다.    https://brunch.co.kr/@backgo/3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3-공상하다.     https://brunch.co.kr/@backgo/7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4-관찰하다.     https://brunch.co.kr/@backgo/4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5-구상하다.     https://brunch.co.kr/@backgo/8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6-만남.            https://brunch.co.kr/@backgo/5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7-설레다.         https://brunch.co.kr/@backgo/6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8-숨 고르기.     https://brunch.co.kr/@backgo/9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9-계산.             https://brunch.co.kr/@backgo/10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0-헤매다.       https://brunch.co.kr/@backgo/11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1-첫삽 뜨기.  https://brunch.co.kr/@backgo/33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2-만들어지다.https://brunch.co.kr/@backgo/37

게스트하우스 창업기 13-그랜드오픈.https://brunch.co.kr/@backgo/38

게스트하우스 창업기-에필로그:         https://brunch.co.kr/@backgo/39

매거진의 이전글 친구끼리는 동업하는 거 아니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