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의 목표를 위해. 감정보다 원칙, 친분보다 역량, 의리보다 신뢰
우리 사회에 흔히 통용되는 말 중에, '절대 동업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막상 이해관계가 걸린 사업을 함께 하게 되면 서로 사이가 틀어지게 되고, 사업은 사업대로 풀리지 않고, 친구는 친구대로 잃게 된다는 통념 때문이죠.
동업을 기반으로 한 사업을 오픈한 지 만 3년, 처음 동업자를 만나 팀을 꾸린지는 거의 4년이 다 되어가는 제 관점에서 보면 반 정도는 맞고 반 정도는 틀린 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어릴 때부터 각자도생 경쟁 일변도의 교육과정을 거쳐, 협동에 익숙하지 않기에 동업이라는 개념이 낯설고 무섭게 느껴지니 동.업.절.대.하.지.마.라는 말이 통용되는 것 같네요.
친구가 서로 공통된 관심사나 성격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감정 공동체라면, 동업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본이나 인력을 투입하는 이익 공동체입니다. 즉, 친구 사이와 동업 관계는 근본부터 철저하게 다른 성격의 공동체라는 말이죠.
제가 작성한 다른 글: 게스트하우스 창업기에 수록되어 있지만, 2015년 초여름에 제 동업자를 만나게 된 것은 철저하게 '사업을 위해서'였습니다.
https://brunch.co.kr/@backgo/5
서울역 인근에 에어비앤비 숙소를 운영하고 있다 하는, 전혀 모르던 사람을 소개받아 새로운 게스트하우스 기획과 창업을 위해 따로 만난 목표/이익 지향적인 관계라는 말이죠.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저희 동업자들끼리는 사적으로 "야 나와! 술 한잔 하자!" 등의 말을 해 가며 모인 적이 없습니다. 모일 때에도 간단히 맥주 한 잔 곁들이고 서로의 일상이나 안부를 묻긴 하지만 모임에선 오로지 이 게스트하우스 사업에 관한 이야기가 주요 화제가 되죠.
보통 동업하는 케이스를 보면 주변의 친구나 잘 아는 지인들 사이에서 같은 관심사를 중심으로 모여 의기투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동업자는 함께 사업을 이끌어 갈 동료이지, 교감하고 웃고 떠들 친구가 아닙니다. 이런 사실을 잘 이해하고, 철저하게 공과 사를 구분하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다양한 갈등과 이해관계의 충돌 속에서 친구 관계가 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폴 곰퍼스(Paul Gompers) 교수는 'The Cost of Friendship'이라는 연구에서 협업 과정에서 어떤 요소가 사업 성과에 득이 되는지, 혹은 해가 되는지 조사했습니다. 교수는 의사 결정이 바로 성과와 연결되는 벤처캐피털(VC) 업계를 위주로 조사를 진행했는데요.
교수는 1975년부터 2003년까지 3,500명이 넘는 VC 투자자의 협업 사례를 조사한 결과, 협업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서로 공통점/친분이 있는 '친분 기반의 협업 관계'이거나, 혹은 철저하게 역량과 성과를 기준으로 모인 '능력 기반의 협업 관계'로 말이죠.
'친분 기반의 협업 관계'는 같은 회사 출신이거나, 같은 대학교/대학원을 다녔거나, 같은 성별/인종끼리 뭉쳤거나, 이와 유사하게 서로 간의 공통점을 기반으로 모인 사례들이었습니다. '능력 기반의 협업 관계'는 상술한 공통점이 없이 각자의 프로젝트 성과, 업무 평가, 성적을 토대로 팀을 꾸린 사례들이었죠.
두 가지 유형의 협업을 비교한 결과는 어땠을까요? '친분 기반의 협업'으로 모인 VC는 개별로 투자했을 때보다 협동 투자 수익이 최대 25%까지 하락했습니다. 반면, '능력 기반의 협업'으로 모인 VC는 개별로 투자했을 때보다 성과가 향상했죠. 학연, 지연을 토대로 모인 협업은 역효과를 냈고 교수는 이를 두고 costly for "birds of a feather", 즉 유유상종의 대가는 크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친한 친구끼리는 친분만 가지고 동업을 해선 안 됩니다. 동업에는, 서로의 눈을 띄우고 역량을 향상하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동업에 임하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배경에서 자라나,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갖고, 확연하게 다른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혼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고 자기 만의 생각의 틀에 갇혀 자칫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의사결정을 새롭게 환기해주죠.
서로 다른 생각과 성격을 지닌 동업자와 함께 일을 하면 각자의 역할이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각자가 가진 역량도 다르기에, 수행하는 기능도 당연히 다르지요. 동업자 중 누군가가 너무 느리거나 빠르다면 한쪽이 속도를 조절해주고, 혹은 누군가가 너무 하나의 관점에 얽매여 있다면 다른 관점을 환기해줄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사업을 한다면 반드시 부족한 부분이 여러 군데 생기는데, 동업자는 그 모든 부족함을 다 채워줄 수는 없을지라도 그중 여러 부분을 보완해주는 보완재가 될 수 있죠.
누군가는 "그러면, 내가 부족한 부분을 잘 해내는 직원을 선발해서 쓰면 되지 않나요?"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짤막한 제 경험 상 선발되는 직원은 일정한 성향으로 묶이더군요. 직원을 선발하는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성향, 혹은 선호하는 성향의 지원자를 위주로 추리게 되고, 여러 직원을 뽑더라도 비슷비슷한 성향과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 모이게 되며, 혹시 다른 성향을 가진 직원과 일하더라도 보통의 직원들은 상급자의 선호에 따라 일하는 방식을 맞춰가게 마련이죠.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보완하고 부딪히고 상승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동업 관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효익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방금까지는 동업의 좋은 부분을 주로 이야기했다면, 동업은 분명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아마 이 때문에 많은 동업자들이 갈라서고, 갈등을 겪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동업자에게 어마어마한 사기를 치는 등 이해관계를 해치는 극단적인 예가 아닐지라도, 그저 사업을 잘해나가기 위한 과정에서도 얼마든지 갈등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좋은 의도에서 일어난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져 동업 관계를 완전히 갈라놓을 수도 있죠.
저희 동업자들 간에도 당연히 갈등이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성격, 다른 일처리 방식,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전혀 의외의 순간에 갈등이 생기곤 했습니다. 서로 지분 관계를 정하거나 수익을 분배하는 민감한 문제는 별 탈 없이 합의점을 찾았지만 오히려 운영 방식이나 가게 소품의 종류, 가격 정책 등 다른 부분에서 의견이 충돌하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감정이 상할 때도 있었습니다. '나는 사업의 문제를 좋은 방향으로 풀어가려고 답을 내놓은 건데, 왜 이렇게 의견이 많이 갈리지?' '나에게 조금 더 양보해주면 더 좋을 텐데'와 같이 말입니다.
그럴 때에는 감정이 다소 상하더라도 모든 것을 대놓고 터서 말하는 것이 좋더군요. 말하지 않는다면 서로의 생각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나의 이슈에 대해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동업자의 이런 부분은 내가 아쉽고 내 의견과 맞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 놓고 말해야 합니다. 서로 감정적인 관계를 기대하는 친구가 아니라 목표 지향적인 관계인데, 상대의 감정적인 것을 배려하며 문제를 마음속에 쌓아두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내적으로 소모할 뿐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사업의 성공이지 좋은 친구를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감정은 상할 수 있어도 화내지는 말 것'입니다. 내 생각을 진정성 있게 전달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고, 그 과정에서 당연히 감정이 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의 골 때문에 상대의 감정도 상하게 하려고 '네가 뭔데' '네 주제에' 따위처럼 단순히 빈정거리거나 욕설을 퍼붓는 것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뿐입니다. 논의 과정에서 감정은 상할지언정 동업자 간에는 성숙한 자세로,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을 진정성 있게 공유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위의 모든 것보다 우선되는 동업의 전제 조건은 '믿을 만한 사람인가'입니다. 사업에 임하는 자세가 장난스럽지 않고 진지한지, 이득만 취하고 고생은 피하는 얌체는 아닌지 말입니다. 사업을 하면서 맞닥뜨리는 많은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하기에 감정적으로 교감하는 관계는 아닐지언정 서로 믿을 수 있는 신뢰 관계는 필수적입니다.
동업 관계는 분쟁이 많이 발생하기에, 정부에서 운영하는 '찾기 쉬운 생활법령' 웹사이트에도 이와 관련된 꼭지가 따로 운영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참고로 찾기 쉬운 생활법령은 사업하면서 모호한 문제에 대해 간단한 법적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창구이기에 애용하기에 좋습니다.
http://easylaw.go.kr/CSP/CnpClsMain.laf?popMenu=ov&csmSeq=633&ccfNo=6&cciNo=2&cnpClsNo=1
우리 동업자들 또한 민감한 부분은 사업을 시작하는 초창기에 모든 것을 협의하고 매듭을 완전히 짓고 나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 상의 다른 문제들을 논의하고 해결하기에도 바쁜데, 돈을 얼마나 투자할지나 얼마를 나눌지 민감한 문제를 두고 다툰다면 정신적으로 지치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가장 좋은 방법은 상호 합의를 통해 민감한 문제를 다룬 동업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사람 믿고 사업하는 거지 문서로 쓰는 것은 너무 인간미가 없는 게 아니냐'라고 반문하실 수 있으나, 명확한 문서야말로 사람을 믿도록 하는 가장 간단하면서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크게 들어갈 내용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01. 누가 얼마나 투자를 하는가?
동업자 별로 어떤 자산을 어느 시점까지 얼마나 투자할지를 명시합니다.
02. 동업하려는 사업은 무엇인가?
어떤 사업을 할지, 가능하다면 사업장의 주소까지 명시하여 동업 업종을 명시합니다.
03. 각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사업을 함께 하면서 역할을 칼 같이 나누기는 어렵습니다. 그때그때 발생하는 이슈에 함께 대응하게 되기 마련이죠. 그러나 일상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누가 어떤 역할을 할지 명시한다면, 갈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습니다.
04. 지분 비율과 수익이나 손실 배분 방법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지분은 투자한 자산을 기준으로 정할 수도 있고, 동업자 간에 합의한 기준으로 정할 수도 있는데, 몇 퍼센트씩 나눌지를 계약서 상에 명시해야 합니다.
또한 수익을 배분할 때 기준이 있는지도 명시하고요. 이때 수익 부분에만 신경 쓰기 쉽지만 사업이 어려워졌을 때 손실이나 채무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 정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05. 정보 공유와 비밀준수 의무
사업을 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정보와 데이터를 공유하는 방법을 정합니다. 최근에는 구글 드라이브나 드롭박스 등 클라우드 문서로 공유하는 것이 용이하므로, 이를 계약서에 명시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동업하면서 알게 된 비밀정보가 있는 경우, 상대방의 동의 없이 유출하거나 오남용 할 경우 책임을 진다는 내용을 명시합니다.
06. 계약 변경/해지 사유
계약은 처음 맺는 시점부터 내용을 바꾸거나 심지어 해지하는 경우도 고려해야 합니다.
동업을 하면서 생기는 상황의 변화로 계약서를 변경할 필요가 있을 경우 전원 동의가 필요한지,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한지 등을 명시합니다.
또한 계약 사항을 위반했을 때, 혹은 다른 사유로 계약 유지가 어려울 때 등 해지 사유를 정합니다. 계약이 해지될 경우 남아있는 재산과 채무를 어떤 방식으로 정리할 지도 함께 정합니다.
추가적으로, 동업자 간의 동의 없이 동업 계약 상의 권리나 의무, 지분을 전혀 관계없는 제3자에게 양도, 증여, 대여 등을 할 수 없도록 정해둡니다.
07. 분쟁해결방법
계약서에서 정하지 않은 사항은 관련 법령과 관습에 따라 정하며, 동업관계에서 비롯된 분쟁을 해결기관(관할법원)을 정해둠으로써 해결이 가능하도록 합니다.
위 내용 외에도 각 동업 상황 별로 맞는 내용들을 적어 계약서를 작성하고, 더 철저한 관계를 원한다면 공증을 받는 방법도 좋습니다.
내용은 많이 길었지만 '동업자는 친구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동업 관계란, 당연히 친분과 신뢰를 쌓아 함께 사업을 만들어 가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마치 학창 시절의 친구처럼 서로 감정적으로 가깝게 지내며 허물없는 사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학연이나 지연이 아닌 서로의 능력을 기반으로 모여 각자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굳건한 신뢰 관계를 토대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사업을 만들어가는 관계, 그것이 동업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