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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CEO 백종일 May 25. 2020

'GIVE and TAKE' 기브 앤 테이크

주는 사람이 성공한다


‘기브 앤 테이크’ 이 책을 쓴 저자의 목적과는 달리 책을 읽던 나는 순간 마음이 아파졌다. 그리고 잠시 책을 내려놓은 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곧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애써 눈물은 참아냈다. 책에서 말하는 사람의 유형을 생각해 봤을 때 나는 기버에 좀 더 가까운 사람이라 생각된다.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나는 왜 주변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왕따 취급을 당했는지. 왜 그들 속에서 어떻게 하든 애써 함께 어울리려 노력하며 살았었는지. 서로가 서로를 헐뜯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고 참았던 시간이 많았던 내가 오히려 되려 공격을 당하며 지내왔었는지.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왜 그동안 지난 30년의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었는지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깨달음이 온 순간 나는 손에서 책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책의 7장에는 성공하는 기버가 되기 위해 ‘호구 탈피’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관대하게 행동하면서도 만만한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기버로 살면서 호구는 되지는 말아야 하는데 나는 ‘호구 기버’로 살았던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사다리 꼭대기에 위치한 성공한 기버는 아니었다. 사람을 쉽게 믿고, 남을 이롭게 하려고 불이익을 감수하고, 항상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주려고 했다. 내 시간을 들여서라도 도울 수 있는 일들을 돕기 위해 힘썼고 되돌려 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주는 것을 좋아했다. 기버이긴 했지만 ‘호구 기버’였다.


'호구 기버'들의 세 가지 특징은 사람을 너무 신뢰하고 과도하게 공감했으며 지나치게 소심했다고 한다. 나는 소심까지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을 믿고 신뢰하고 공감하는 것에는 해당했던 것 같다. 그리고 늘 참으려고 노력했고 애써 힘들어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추슬렀다. 실제로 내 동생은 나에게 형은 바보같이 참고만 있느냐는 말을 종종 했었다.


기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 알게 되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왜 '트러블 메이커'로 불리게 되었던 것인지 알게 됐다. 스스럼없이 좋지 않은 행동들을 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 의견을 내놓았을 때 돌아오는 핀잔들의 이유를 알게 됐다. 서로 돈독한 친구들 틈의 나는 왜 겉돌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성숙하지 않았던 때라서 나의 행동의 문제점도 있었다. 나는 ‘호구 기버’이기도 했지만 지혜로운 기버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상황을 대하는 나의 태도와 그 속에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역시 성숙하지 못했던 부분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가 어울렸던 사람들과 많은 부분에서 생각이 달랐다. 같은 상황을 겪더라도 그들의 행동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고 다른 생각을 어필했다. 부당한 것에 대해서 그냥 넘길 수 없었고 타인의 피해를 간과하거나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런 서로의 입장 차이는 나를 매번 친구들 사이에서 겉도는 사람이 될 수밖에는 없었다. 이건 한 동네에서 오랜 시간 함께 어울렸던 사람들과도 마찬가지였다.



오래된 친구가 좋은 것 만은 아니다


옛날 나의 과거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는 33살을 기점으로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관계 맺은 90% 이상의 인간관계를 모두 정리했다. 내가 태어난 곳은 아니었지만 30년 넘게 살아왔던 동네의 모든 인간관계부터 초. 중. 고 일부 동창 친구들까지도 모두 정리했다. 한순간에 모든 인간관계를 정리한다는 것은 실제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정리된 사람들 대부분이 지금 생각해보면 테이커였고 매처인 사람들이었다.


더 이상 이 사람들을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마지막 친구의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잊고 있었던 일인데 얼마 전 옛날에 써놓았던 일기장을 잠시 펼쳐봤을 때 당시의 이야기가 적혀 있는 것을 보게 된 적이 있다.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아 잠시 동안 아무것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위에 말했던 친구들하고 앞으로 만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친구들을 만나서 좋지 않은 감정들이 생기는 것이 이제는 싫었다. 친구들에게 욕을 먹거나 좋지 않은 말들을 들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스스로 한계에 다다랐었다. 참고 견디고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더 이상 친구들과의 만남 속에서 마음 상하고 상처받고 참아 넘기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근무 중에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업무상 전화겠거니 어쩔 수 없이 받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내가 전화를 안 받으니 이 친구를 통해서 전화를 한 것이다. 이 친구와도 마찬가지로 모든 관계를 끊으려 했었다.


한 친구를 바꿔 줬다. 그 친구는 친구끼리 무엇 때문에 안 보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툭하면 못마땅해 큰소리 내고 화내기도 잘하는 친구에게 말했다. 그냥 내가 앞으로 보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냐며 반문했다. 친구를 만나는 건 온전한 내 자유다. 그냥 나는 앞으로 만나지 말자고 말했고 그러면 너 또한 앞으로 싫은 소리 할 필요도 없지 않겠냐고 이야기했다. 어차피 나 하나 안 본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는데 왜 계속 봐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서로 안 보면 그만 아니냐고 말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비교적 매번 베푸는 편이었고 받는 건 거의 없다시피하며 지냈다. 나는 원래 밥 사기를 좋아하고 그렇다 보니 술사는 것 까지도 마다하지 않아 했다.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니 후회나 원망은 없다. 그 친구들은 서로에게 술과 밥은 잘 사는 편이지만 나에게만큼은 매번 인색했다.


한 번은 친구 넷이서 술자리를 4번이나 옮겨가며 마신적이 있었다. 술집에 가고, 당구 치고,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기고 옮기는 도중에 택시를 몇 번 타는 것까지도 나 혼자 부담한 적이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쓰레기 같은 친구들을 모두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 날 솔직히 마지막 술값은 같이 나눠 내자고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나는 내가 왜 내야 하는지 모르겠었지만 오늘로 모든 관계를 정리하자는 마음으로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이 날은 마침 비도 많이 내렸고 내 눈에도 비가 내렸다. 나는 ‘호구 기버’였다.


그 당시 여러 가지 상황들이 겹쳐 관련된 친구들 모두를 정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걸려온 전화 통화에서 한 친구가 한다는 말이 '책 읽었단 놈이 그딴 식으로 밖에 못하냐?'라며 비아냥 거리듯 말하고 '책 많이 읽고 꼭 성공해라!'라는 비웃음으로 마지막 통화를 끊었다. 마지막으로 전화까지 해 쏟아부은 친구의 말이었다. 표현하기 위해 쓴 친구라는 말 자체도 역겹다.



좋아서 한 일들이니 그걸로 됐다


동네에서의 일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함께 한 동네에서 구슬치기, 비석 치기, 술래잡기, 땅따먹기 등 놀이문화가 지금처럼 발달되지 않았을 때부터 함께 놀고 어울리던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마저 정리했다. 동네 사람들은 주로 당구장에서 당구 치고 술 마시기를 좋아했다. 함께 어울리고 싶거나 술한잔 하고 싶을 때면 당구장에 가면 웬만한 모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매일 오는 사람들부터 가끔씩 놀러 오는 사람들까지 항상 당구장은 우리 동네 만남의 장소였다.


동네 특성상 선, 후배들이 주를 이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변 동네 사람들까지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의 인맥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친목회를 구성하고 여름 피서철이나 특정 날짜를 잡아서 워크숍을 갈 때면 나는 항상 궂은일들을 도맡아서 해왔다. 운전, 음식 준비, 바비큐 준비, 고기 굽기, 설거지, 야식 등 다음 날 아침에도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등 나는 항상 남들이 하기 싫어하거나 잘 하지 않는 일들을 주로 해왔다. 물론 지금도 이런 일을 마다하지 않고 서슴없이 하기를 좋아한다. 만나는 사람만 바뀌었을 뿐이다.


당구장에서 가끔 당구를 칠 때 술내기 당구를 치거나 약간의 돈을 걸고 당구를 칠 때도 있었다. 나는 함께 모여 노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돈내기에 큰 관심이 없었다. 가끔 게임에서 이기면 그 돈은 술 한 잔 먹는데 보태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선.후배들을 좋아하고 챙기기 일쑤였다. 그러나 나에게 돌아오는 그들의 태도는 정 반대였다.


동네의 선, 후배들은 서로가 서로를 욕하는 사람들끼리 더 친했고 더 뭉치기를 좋아했다. 나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서로가 이용해먹으려고 하고 서로의 돈을 어떻게든 뺏으려 하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더 위하고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서로가 진심으로 아끼고 위하는 것이 아닐 것이 틀림없었는데도 말이다. 그 속에서 나는 겉도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바른 말을 하길 좋아했다. 부도덕한 행동들에 대해서 좋지 않음을 표현했고 옳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나의 주관을 표출하기도 했었다. 훗 날 생각을 정리해보니 이런 나를 좋아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기버였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도 그랬듯 잘 융합되게 만드는 기버의 역할은 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결국 나 혼자 튕겨 나오게 된 것이다. 동네 사람들과 오랜 친구들 틈에서 떨어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믿을 사람 정말 없구나


K라는 한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처음에 기버인 줄 알았다. 술도 잘 사고 내가 이사를 했을 때는 작은 전자레인지도 선물을 해줬던 친구였다. 이친구의 속마음을 잘 몰랐을 때는 나는 나를 잘 이해해 주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돈을 내는 일들이 많아졌고 K는 의도적으로 돈을 안내는 상황들이 여러 번 생겼다. 참고로 이 친구는 주변에 친구가 나 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친구였다. 그래도 나는 K를 정말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고 그 친구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실제로 결혼식에도 친구는 나 혼자밖에 없었다.


결혼 후같이 일을 하게 된 적이 있는데 나는 이 친구의 일을 도운 적이 있었다. 동종 업계 친구의 일이니 당연히 도와야 했고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퇴근 후 술 한잔하는 자리에서 술이 많이 취한 이 친구는 본의 아니게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금전적인 이득을 취했던 것을 이야기했다. 술이 깬 다음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친구를 나는 용서했다.


나에게 뜬금없이 카톡으로 앞으로 연락하지 말고 지내자는 둥 심지어 내가 다니는 직장에 입사하게 힘써줬는데 나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며칠 안돼 나가버리기도 했었다. 이것 외에도 여러 번 나에게 실수를 했고 나는 그때마다 그 실수를 받아들이고 용서했다.


가끔 나를 찾는 전화와 만나는 용무는 자기가 하는 일에 내 도움이 필요하거나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항상 내가 아는 모든 것들을 제공했고 도와주길 서슴지 않았다. 내 지인까지 동원해 인력으로 지원을 해주기까지 했지만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험담하는 내용들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이 친구를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 도움을 준 사람에게 고마움은커녕 불만과 욕만 했기 때문이었다. 책에도 나온 내용이지만 나에게 한 실수는 용서가 되어도 내 지인에 대한 실수는 용서가 안됐다.



호구에서 벗어나게 해준 고마운 사람들


이렇게 내 삶의 90% 이상의 관계들을 정리하게 된 계기는 사실 따로 있다. 나를 백종일 이라는 사람으로 존중해 주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의 만남 때문이었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책을 읽었던 시절이 있었다. 8년 전 일이다. 1년 100권을 읽고 나서 그다음 해에는 1년 365권의 책 읽기에 도전을 했다. 하루 한 권의 책을 읽기로 한 것이다. 비록 중간에 필사를 병행하게 되면서 1년 동안 365권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약 300권의 책을 읽고 1권의 책을 필사를 했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글쓰기도 함께 병행했었다.


지독한 책 읽기를 선택한 이유는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 건지 나로 살아온 지 30년이 넘었지만 나는 내 스스로를 잘 모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책을 통해 나를 발견해나가는 과정을 선택했다. 내 자신에게 수도없이 많은 질문을 던졌다. 책을 읽으면 변한다고 하고 책을 읽고 달라졌다는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서 무작정 시도한 선택이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독서모임을 세 군데나 나갔었다. 그중에 1곳은 내가 직접 독서모임을 주관하며 약 1년 동안 운영했었고 한 곳은 테이블 리더로 독서모임에서 활동을 했었다. 책 한 권을 필사하면서 인연이 된 모임이 있었는데 그 모임에서의 사람과의 만남은 내 인생의 큰 변화를 주었고 지금까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시작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나는 동네 선. 후배 그리고 친구들과의 만남과는 전혀 다른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 새롭게 만남을 가진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관심과 호감을 표했고 나를 높여주고 세워주기도 했었다. 나라는 사람이 궁금하다며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겼고 상상도 못했던 유명 인사들과의 만남과 식사 자리 등 수많은 변화들이 생겼다. 특히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챙기는 나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감해 주고 아낌없이 나를 사랑으로 대해주었다. ‘기버’로서의 역할을 처음으로 인정받게 된 시기였던 것 같다.


이때부터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친구들과 동네 선, 후배들 사이에서 발생되는 문제들이 모두 나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들이 서로가 공감하는 것들에 대해서 나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문제들을 내 탓으로 돌리는 일들도 많았다. 그러나 환경을 바꾸고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하나둘씩 이어 나가다 보니 모두가 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지극히 정상이었고 사람들에게 존중받으며 오히려 사람들을 배려하고 아낌없이 챙기는 나의 태도를 칭찬받기 일쑤였다. 그렇게 나는 그동안 잘못된 나의 인간관계를 모두 뒤엎을 수 있었고 지금은 전혀 새로운 관계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모임을 지속해오고 있다. 나의 삶은 이렇듯 책 읽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른 삶으로 바뀌었다.



깨달음 그리고 새로운 삶


나와 함께 30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 대부분은 테이커와 매처였던 것 같다. 매처였던 사람들 마저도 테이커의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본래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떻게든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데 바빴다. 비언어적인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남을 욕하고 무시하는 것에 조금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자신들이 속해있는 그 자리에서 왕 노릇 하는 우물 안 개구리들이다. 나 또한 그 개구리 중 하나였다.


그 속에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사람들을 챙겨도 나에게 돌아오는 건 오히려 좋지않은 욕설과 폭언이었다. 심지어 한 선배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3일 동안 장례식장에서 함께 상을 치러줬던 나보다는 선배에게 별 도움도 안 되는 사람을 더 챙기고 위했던 일들은 잊혀지지 않는다. 누구를 더 위하고 덜 위하고의 문제가 아닌 어렸을 적부터 쌓아왔던 관계가 별것 아니었던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는 물론 지인들의 경조사는 하나도 빠짐없이 챙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리고 친구들 부모님의 발인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해 운구를 도왔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를 운구해 준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호구로 살았던 ‘기버’였나 보다.


이 외에도 생각해보니 참 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다행히도 지금의 나는 사업을 하면서는 기버와 매처의 역할을 적절하게 활용한다. 그리고 인간관계만큼은 철저하게 기버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현재 나는 적어도 테이커의 삶을 사는 사람과의 관계는 멀리하는 편이다. 경험상 목적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기버, 테이커, 메처를 통한 책 내용과는 전혀 상반된 해석과 내용의 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기버들의 행동과 태도 그리고 기버들이 테이커에게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옛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과거의 아픔과 상처가 올라오는 반면에 내가 살아왔던 삶에 있어서 위로가 되어 주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지침서의 역할을 해줬고 받는 삶 보다 주는 것에 대한 기쁨과 보람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책을 보더라도 모든 사람이 다른 관점을 볼 수 밖에 없다. 내게 다가온 ‘GIVE and TAKE’는 바로 이런 책이었다



나는 기버다


나는 이 책을 성공의 관점으로 들여다보기 이전에 개인의 삶에 비춰보길 권하고 싶다. 성공 이전에 알아야 할 나 자신의 모습과 타인에게 비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기브 앤 테이크는 따뜻한 책 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 책은 특히 기버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큰 울림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껏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위로를 받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어디에서도 받아보지 못했던 용기를 북돋게 해주는 책이었다. 현재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해줄 것이고 앞으로 더 발전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지표가 되어 줄 것이다.


테이커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일침을 가하는 책이 될 수 있다. 테이커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이 책을 보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책을 덮어버릴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테이커라서 이 책을 읽기 거부감이 든다면 한숨 고르고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살핀 후 다시 한번 책을 펼쳐보길 바란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테이커의 삶에서 기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안내해 줄 것이라 믿는다. 기버는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질 수 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당신이 만약 매처라면 중간자의 입장에서 상황에 따라 현명한 선택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이다. 사회성이 좋고 특별히 모나지 않으며 기버에게는 힘을 실어주기도 한다. 테이커에게는 따끔한 조언도 스스럼없이 대하는 당신은 기버와 함께 있으면 업무적이든 사업적이든 보다 큰 효과를 얻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바로 기버의 역할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 현재의 위치에서 자신 스스로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성공에 보다 가까운 사람이 될 확률이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내면을 확인하는 것을 생각보다 힘들어한다. 나를 먼저 아는 것이 모든 일에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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