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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Oct 18. 2018

이상하고 특별한 아빠의 교육 방침

<펭귄 하이웨이 ペンギン・ハイウェイ>

네가 생각하는 대로 해보렴


이상한 아빠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매일 늦게 들어와도 잔소리 한 번 하지 않고 칭찬만 하며 초콜릿을 건넨다. 정체불명의 누나랑 어울려도 내버려둔다. 집 주변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는 데도 아들 걱정은 커녕 마음대로 해보라고 권장한다. 이후 나라가 떠들썩해질 정도로 큰 사건이 벌어졌지만 코빼기도 안 보인다. 친아빠가 맞나.
주요 이야기는 펭귄이 발견되면서 소년 ‘아오야마’와 치과에서 일하는 ‘누나’에게 벌어지는 사건이 중심이다. 하지만 짧은 등장에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아오야마의 ‘아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성인이 될 때까지 3888일 남은 11살 소년 ‘아오야마’(기타 가나)는 등굣길에 펭귄을 발견한다. 지적 호기심이 충만한 그는 펭귄이 자주 출몰하는 일명 ‘펭귄 하이웨이’를 따라가며 서식지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펭귄에 관한 연구를 하던 중 결혼 상대로 점찍어둔 치과 ‘누나’(아오이 유우)가 펭귄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낸 뒤 누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펭귄 하이웨이>는 <태양의 탑>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등으로 유명한 모리미 도미히코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주인공 11살 소년 아오야마가 등굣길에 우연하게 본 펭귄에 호기심을 느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아오야마의 호기심이 이야기의 원동력인 셈이다. 아오야마는 치과에서 일하는 누나에 대한 호기심도 크다. 누나의 가슴만 뚫어져라 보는 일은 다반사. 펭귄과 누나가 관련이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난 뒤에는 더 많이 쳐다본다.


초등학생이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동안 부모는 뭘 하는 걸까. 아오야마가 펭귄에 대한 연구를 하러 다니는 과정에서 아빠의 모습이 몇 차례 등장한다. 아빠는 아오야마의 연구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발언을 하지만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는 않는다. 생각의 방향을 알려주고, 초콜릿을 건네주는 정도다.


아오야마는 출입이 통제된 등산로를 발견하고 숲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거대한 공 모양의 물 덩어리를 만나게 된다. 바다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오야마는 '바다'라고 이름 짓는다. 아름다운 형태와 달리 ‘바다’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들며 위협적으로 변한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경찰이 출동하고 관련 연구가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동네가 떠들썩하지만 아오야마의 아빠는 평온하게 “네가 생각한 대로 하렴”이라고 말한다. 왜 이러는 걸까.

어른스럽지 못해서 미안해


11살인 아오야마는 실수하면 어른스러움을 이야기하며 사과한다. 아오야마가 이러한 말을 자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성격 때문이 아닌 아빠가 자주 해주던 말과 행동에서 비롯된다. 이는 원작에 더 상세히 적혀있다. 아오야마는 "아빠는 어른을 위한 초콜릿이라며 동생에게는 주지 않는다. 동생이 잠잘 때 나한테만 살그머니 준다. 나는 그게 정말 기쁘다"라고 말한다. 평소에 자신감이 넘치고 주눅 들지 않는 아오야마가 아빠 앞에만 서면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초콜릿 하나에 기뻐한다. 아오야마가 아빠의 교육에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뭔가 특별한 아빠임에는 틀림없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긴 상황에도 평온하다. 아들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일까. 교육 방침인 걸까. 아빠는 직접 행동하지 않는다. 아오야마의 고민을 꿰뚫어 보고 생각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바다’를 보고 고민에 빠진 아오야마에게 주머니를 뒤집으며 “안이라 여겼던 부분이 밖이 될 수 있어”라고 조언한다. 이 영화가 가진 세계관을 보여주는 말로 ‘바다’ 속에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몇 가지 장면은 아오야마의 아빠가 아이 인생의 리더가 아닌 서포터일 뿐임을 강조한다.


아오야마의 아빠처럼 행동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비현실에 가깝다. 초등학생이 매일 밤늦게까지 숲 속에 있다가 잘 알지도 못하는 치과 누나랑 놀러 다니면 어떤 부모가 편하게 내버려두겠는가. 그럼에도 아빠의 행동은 아들 아오야마를 성장케 하고 있어 이상적이다. 아오야마는 호기심을 통해 성장하는 아이다. 영화 초반에 자신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연구에 몰두한다. 하지만 중후반부로 넘어가면 연구를 넘어 주변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아이가 되어있다. 그러한 행동에 대해 아빠는 방향만 잡아줄 뿐이다.


나도 이제 아빠처럼
훌륭한 사람이 된 거야,
하고 생각했다”


아오야마는 아빠를 어떻게 생각할까. 원작에는 아오야마가 아빠를 대하는 태도가 드러난다. 아오야마는 아빠가 처음으로 모눈 노트를 사줬던 때를 떠올린다. "모눈 노트의 사용 방법을 배웠을 때 무척 기뻤다. 나도 이제 아빠처럼 훌륭한 사람이 된 거야, 하고 생각했다"라고 말한다. 아빠는 노트를 건네며 무엇을 적으라고 가르치지 않고 사용법만 알려주었다. 아오야마는 생각을 정리한다. 노트에는 아오야마만의 '바다'가 만들어지고 있는 듯 생각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3888일 뒤 성인이 되었을 때 아오야마에게 그 노트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펭귄이 나타나기 전 아오야마는 이렇게 자신의 미래를 예측했다.


하루하루 세계에 대해 배워나가면
나는 어제의 나보다
계속 더 나아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른이 되면
얼마만큼 훌륭해져 있을지
짐작도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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