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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Sep 17. 2018

<명당 明堂>

다음을 위해 이 작품을 좋은 땅에 묻어주시오


땅으로 시작해서 땅으로 끝난다. 온통 땅에 대한 얘기뿐이다. 땅이 그만큼 중요하단다. 조상이 명당에 묻히면 자손이 잘 산다며 그곳에 아버지를, 할아버지를, 삼촌을 묻어두자고 싸운다. 이유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냥 그렇다고 한다. 그게 영화 <명당>이 주제이자 이야기를 끌어가는 줄기다. 


장동 김씨 가문은 명당을 이용해 나라를 지배하려 한다.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천재지관박재상(조승우 분)은 장동 김씨 가문의 계획을 막으려다 가족을 잃는다. 13년 후 몰락한 왕족 흥선(지성 분)은 박재상에게 장동 김씨 세력을 몰아낼 것을 제안한다. 

걱정이 많은 작품이었다. <명당> 개봉 소식이 알려진 순간 영화팬들은 유사한 역학 시리즈인 <관상>과 <궁합>을 떠올렸다. <관상>의 흥행에 힘입어 제작된 <궁합>이 망했기 때문이다.(손익분기점 약 250만 명, 총 관객수 130만 명) <궁합>은 <관상>의 흥행요소를 잘못 파악해 만들어져 실패한 사례다. <관상>은 얼굴을 통해 운명을 본다는 '관상'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에 조선 전기에 벌어진 '계유정난'을 잘 버무리고 송강호, 이정재, 김혜수, 조정석, 이종석 등 화려한 배우들을 멀티캐스팅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궁합>은 '궁합'이라는 소재 자체가 매력도가 낮았을뿐더러 배우들의 힘도 약했다. 더군다나 이야기마저 진부하게 흘러갔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제작진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은근슬쩍 <사도>, <관상>, <광해>를 잇는 웰메이트 사극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궁합>과 엮이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누가 봐도 역학 시리즈다. 


역시나 잘 짜인 상업영화다. <관상>과 <궁합>이 개인에게 정해진 운명과 연관된 역학을 다뤘다면 <명당>은 땅의 기운을 통해 나라의 운명, 더 나아가 세대의 운명까지 바꿀 수 있는 역학을 다룬다. 조승우가 주연이라는 것만으로도 티켓을 구매할 이유가 된다. 게다가 지성, 유재명, 문채원, 김성균, 백윤식 등 배우들이 포진해있는 것은 물론 영화 외적으로도 국내 부동산 문제로 연일 언론들이 떠들어대고 있는 상황에서 다음 주가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란 점은 <명당>은 흥행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이야기는 지루하지 않다. 코믹한 요소가 많고 반전을 거듭한다. 정치적인 싸움 역시 흥미로운 대목이다. 다만 신선하지 않을 뿐. 작품성을 따져보자면 별로다. 개연성도 약하고 캐릭터도 새롭지 않다.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도 없다. 배우들의 연기도 익숙하다. 이야기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성의 연기는 다소 과하다. 그럼에도 흥행만을 위해 만들어진 인스턴트 영화로 괜찮다.

문제는 사실과 허구가 잘 섞이지 않아 억지스럽다. <명당>은 흥선대원군이 지관의 조언을 받아 2명의 왕이 나오는 묏자리로 남연군의 묘를 이장했다는 실제 역사 기록을 기반으로 한다. 이 위에 인간과 나라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명당' 찾는다는 설정이 더한 이야기다. 흥선(지성 분) 등 조선의 권력자들이 명당에 목숨을 걸 정도라면 온 나라가 '명당'을 찾아나서야 하지 않겠나. 


이로 인해 영화는 내내 '명당'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설득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다고 말한다. 명당을 둘러싼 싸움이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상의 묘를 '명당'에 두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일말에 여지가 있다면 영화는 진행될 수 없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간 친구가 몇 번 물었다. "저기서 왜 저렇게 행동하는 거야?" 대답이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저렇게 하지 않으면 내용이 안 이어지니까" 안타깝지만 영화도 땅에 묻을 수 있다면 명당에 묻고 다음 사극 영화에 기대를 걸고 싶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는 부족함이 없다. 수식어를 붙이기도 민망한 배우 조승우는 이 영화를 선택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드라마 <비밀의 숲>, <라이프>로 주가를 올린 조승우의 연기를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두 드라마에 이어 함께 출연한 유재명은 조승우와 찰떡 호흡을 보인다. 지성의 연기 또한 인상적이다. 아마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조승우보다 지성에 대한 언급을 더 할 것이라 예상한다. <내부자들>에 이어 또다시 '개, 돼지'를 언급하는 백윤식은 조선시대에서 타임머신을 탄 사람처럼 어색함이 없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이어 사극에 출연한 문채원 역시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찢고 나온 듯 이야기에 잘 묻어난다.


올 추석 극장가에서는 한국 영화 4파전이 벌어진다. 김명민의 <물괴>가 12일 개봉했고 현빈·손예진의 <협상>, 조인성의 <안시성>이 <명당>과 함께 19일 개봉한다. 모두 전략적으로 기획된 상업영화다. 안타깝지만 <명당> 외엔 굳이 돈을 내고 보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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