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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Mar 04. 2018

왜 워싱턴포스트의 여성이 주인공인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더 포스트 The Post> 리뷰(해석, 결말)


올해의 사회가 ‘이 영화’를 만들었다


 올해 제 90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대해 설명하자면 세계적인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던진 이 발언으로 정리할 수 있다. 아카데미는 가장 미국적인 시상식으로 꼽힌다. 하지만 수십 년동안 백인 남성들이 시상식을 지배하며 소수 영화인을 배척해왔다는 비판도 받아왔다. 특히 후보에 오른 배우 모두 백인이었던 2016년 시상식은 '화이트 오스카'의 오명을 썼다. 지난해에는 남녀 조연상(마허셜라 알리, 비올라 데이비스)을 흑인 배우에게 안기며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번 아카데미에는 ‘쓰리 빌보드’ ‘셰이프 오브 워터’ ‘겟 아웃’ 등 각종 사회적 차별들에 대항하는 작품들이 노미네이트 됐다. 각종 차별을 대놓고 저지르는 저 나라의 대통령 덕분이다.
그중 가장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는 스필버그 감독의 ‘더 포스트’다. 스필버그 감독은 ‘블록버스터 영화’를 처음 만든 사람으로 ‘죠스’(1975)를 시작으로 ‘E.T’(1982), ‘백 투 더 퓨쳐’(1985), ‘쥬라기공원’(1993) 등 수많은 상업영화를 만들었다. 이와 동시에  ‘칼라 퍼플’(1986), ‘쉰들러 리스트’(1994), ‘뮌헨’(2006), ‘링컨’(2013), ‘스파이 브리지’(2015) 등과 같은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도 꾸준히 만들어왔다. 대중 상업영화와 더불어 높은 예술성과 작품성을 지닌 영화까지도 섭렵한, 그야말로 거장이다. 그가 이번에는 ‘언론의 가치’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려 한다.
영화 '더 포스트'를 연출한 스티븐 스필버그
1971년. 뉴욕 타임스는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베트남전에 대해 국민을 속여왔다고 밝히는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해 특종 보도를 한다. 경쟁지 워싱턴 포스트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펜타곤 페이퍼 입수에 뒤늦게 사활을 건다. 뉴욕 타임스의 후속 보도가 법원 판결로 정지된 상황에서,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국장 벤(톰 행크스)은 4천 장에 이르는 기밀문서를 손에 쥐게 된다. 그는 보도를 강행하려 하지만 신문사와 자신의 모든 것이 달려 있는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 캐서린(메릴 스트립)은 보도 여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이렇게 목적이 분명한
영화를 만든 것도 처음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타임스’가 아니라 ‘포스트’다. 펜타곤 페이퍼 보도는 뉴욕타임스가 시작했다. 미리 문건을 입수하고 수개월 동안 분석한 뒤 나라를 뒤흔드는 대특종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그 뒤를 따랐을 뿐이다. 그런데 스필버그 감독은 "이렇게 목적이 분명한 영화를 만든 것도 처음이다"라며 “2017년 미국 언론의 자유는 힘겹게 서 있다. '가짜 뉴스'와 같은 문화적 현상을 경험하다 보니 닉슨 전 대통령이 워싱포스트 보도를 막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라고 말했다. 왜 ‘타임스’가 아니라 ‘포스트’일까.


이유는 감독이 던지려는 ‘메시지’에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법원의 보도 금지가 결정된 상황에서 보도를 시작했고 다른 매체들의 연대를 이끌어낸다는 점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를 보여주는 방식은 사건이 아닌 인물 중심의 서사다. 나라를 뒤흔든 사건을 다루지만 사건의 내용을 중후반부에 극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영화 초반 모두 공개한다. 해당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건을 바라보는 언론의 태도를 다루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험은 201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토마스 맥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와도 겹친다. ‘스포트라이트’는 가톨릭 신부들의 수십 년간 이어져온 아동 성폭력과 이를 집단적으로 은폐하려 한 사건을 보도한 ‘보스글로브’ 기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사건을 재구성하는 플래시백* 한 번 없이 기자들의 취재 과정만을 건조하게 보여준다. 언론의 가치와 기자들의 직업윤리라는 메시지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규모보다 더 중요한 점이 무엇인지 보여주려는 의도다. ‘더 포스트’와 ‘스포트라이트’의 각본가가 조시 싱어**로 같다는 점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시 상기시킨다.


*플래시백(flashback) :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 등에서 과거의 회상을 나타내는 장면 또는 그 기법.

**조시 싱어는 ‘스포트라이트’로 2016년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았으며, 신인작가 리즈 한나와 함께 ‘더 포스트’의 공동 각본가다.


'더 포스트'의 결말에 등장하는 ‘워터게이트 사건’은 대표적인 언론 영화 앨런  J. 파큘라 감독의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과도 이어진다. ‘더 포스트’가 다루고 있는 펜타콘 페이버 사건은 워터게이트의 도화선이 되기 때문이다. 언론을 다룬 영화들 중 명작으로 꼽히는 이 영화는 미국 최악의 정치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을 심층 취재한 '워싱턴 포스트' 소속 두 명의 신참 기자들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이다. 두 영화는 약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뛰어넘어 반복되는 비참한 역사를 꼬집는다.


언론의 태도를 다루면서 이야기의 중심이 발행인 캐서린(메릴 스트립)인 점은 흥미롭다. 편집국장인 벤(톰 행크스)은 캐서린의 결정을 이끌어내는 사람일 뿐이다. 영화 초중반까지 캐서린은 파자마나 파티 옷을 입고 따뜻한 햇살에 뒤덮여있다. 하지만 중반 이후 중대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에 법원 판결과 주주들의 반대까지 무릅쓴다. 그는 결단을 내리고 차가운 조명에 담배 연기가 자욱한 편집국과 인쇄소로 들어간다. 이 장면은 달라진 캐서린을 상징한다.

워싱턴포스트는 가족기업이다. 캐서린의 아버지는 사위에게 회사를 물려줬지만, 그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캐서린이 발행인이 되었다. 간부들은 캐서린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유는 없다. 당시 70년대 여성의 위치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다. 캐서린은 두 번의 중요한 결단을 하는데 첫 번째는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할 것인가’, 두 번째는 ‘이전의 결정을 유지할 것인가’이다. 영화는 두 번째 결정을 도드라지게 보여준다.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하는 긴급한 상황에 편집국장을 비롯해 회사 간부들이 캐서린 집을 찾아온다. 이들은 모두 남자다.  파자마를 입고 길쭉한 테이블에 앉아있는 캐서린을 둘러싸고 정장 입은 남자들이 서로의 의견을 주장하며 압박하는 눈빛을 보낸다. 이는 권위를 상징하는 긴 테이블의 끝자리에 앉아있으면서도 남성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캐서린이 여성이라는 점을 부각한다. 결단을 내리면서 그제야 언론의 오너가 된다. 캐서린은 테이블을 박차고 일어나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 대사는 권력 순종하는 이들에게 언론의 자유를 외치는 여성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여긴 아버지의 회사도,
남편의 회사도 아닌 내 회사예요.
나에게 반대하는 이사는
내 회사에 필요없습니다.


캐서린 역할에 ‘메릴 스트립’제격인 이유는 연기뿐만이 아니다. 그는 남성으로 가득 찬 할리우드에서 몇명 되지 않는 원톱 여자 배우로, 끊임없이 사회적 차별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종, 성차별적 발언과 정책에 대립각을 세우는 면 또한 미국인들에게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메릴 스트립은 지난해 1월 제 74회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한 뒤 소감에서 자신을 깜짝 놀라게 형편없는 연기가 있다며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자리에 오르려는 한 남성이 장애인 기자를 흉내 내던 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어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혐오는 혐오를 부르고,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격분이 일어날 때
권력자를 끌어내릴 수 있는
원칙 있는 언론이 필요하다



영화의 주제를 말하는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대법원이 언론의 자유에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린 후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사람이 법원을 나서는 장면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두 언론사는 같은 승리를 얻었지만 다른 발걸음을 보인다. 뉴욕타임스 측은 다른 언론들과의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과 달리 워싱턴포스트 측은 조용히 군중들 사이를 빠져나간다. 이를 지켜보는 군중들은 대부분 여성들이다. 그들은 보도 경쟁보다 언론의 자유를 지킨 승리로 충분했고, 이로 인해 얻은 것은 차별받는 이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계속할 수 있다는 희망임을 드러내는 한 장면이 아닐까. 이러한 신념이 드러난 영화 속 캐서린의 대사로 글을 마무리한다. 캐서린은 자신을 반대하는 이사들에게 “우리도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계속해서 보도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직업이다”라며 이렇게 말한다.


뉴스는 역사의 초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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