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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Mar 24. 2019

나의 '우상'을 좇는 가혹한 여정

영화 <우상 偶像, Idol> 2019

영화 '우상'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믿게 하느냐가 중요해


우상은 믿음의 산물이다. 우상이란 말 그대로 ‘아이돌(idol)’일 수 있고, 존경하는 인물일 수 있다. 개인이 소망하는 목표 혹은 가치 있다고 믿고 따르는 신념이 될 수도 있다. 돈을 위해 자식이나 부모를 버리는 사람에겐 그 돈이, 권력을 위해 약자들의 고통은 무시하는 이들에겐 그 권력이 우상이 된다. 어느 것이든 결국 믿음의 문제다.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무엇을 믿을지 결정한다. 믿음에 따라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한다. 결국 그 믿음은 우상이 된다.
영화 <우상>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다. 위와 같은 대사가 영화 속에 등장하는 것은 같은 맥락이다. 각본 및 연출을 맡은 이수진 감독은 “한 인간이 이루고 싶어 하는 꿈이나 신념이 맹목적으로 변화하는 순간, 그것 또한 우상이 아닐까 생각했고 그것이 작품의 시작이었다”라고 기획한 이유라고 말했다. 교통사고, 사체유기라는 사건으로 연결된 세 명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믿음과 가치관에 따라 집착하고 폭주하는 모습을 보인다. 각기 다른 세 사람을 통해 영화는 무엇을 믿을 것이며 믿고 있는 것은 진실인지 묻는다.
구명회(한석규 분)는 차기 도지사로 주목받고 있는 도의원이다. 어느 날 아들이 뺑소니 사고를 내고 은폐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정치 인생을 위해 아들을 자수시킨다.

유중식(설경구 분)은 아들이 인생에 전부인 사람이다. 어느 날 신혼여행을 떠난 지체 장애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싸늘한 사체로 돌아온다. 사고 후 며느리 최련화(천우희 분)는 사라졌다. 의문을 가진 중식은 홀로 사고를 파헤친다.

중국동포 련화는 사고 현장에 있던 사람이다. 중식의 손자까지 임신한 상태다. 명회는 몰래 련화를 찾아 나선다. 중식 역시 련화를 찾아 나서지만 파헤칠수록 그녀가 수수께끼 투성이라는 걸 알게 된다.

<우상>은 2013년 영화 <한공주>로 다수 영화제 상을 휩쓴 이수진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첫 상업영화지만 전작의 영향으로 또 한 번  날카로운 시선으로 통렬한 사회 비판을 할 것으로 기대를 받았다. 감독은 <우상>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시선으로 옮겨갔다. 한 가지 사건으로 인해 세 사람에게 벌어지는 상황과 그들의 대처 방식까지 세밀하게 파고드는 연출을 선보였다.


안타깝게도 그 연출은 난해하다. <우상>은 상업영화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친절하지 않다. 설명 없이 깊이 있게 파고들어가니 이야기를 따라가기 쉽지 않다. 영화는 사건 발생이 발생하고 주인공이 해결해가는 범죄 스릴러의 기본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사건’ 중심의 이야기가 아니고 인물 중심이다. 에피소드마다 주인공도 바뀐다. 시점이 바뀐다는 말이다. 명회로 시작해 중식, 련화, 다시 명회로 끝난다.

세 인물의 이야기를 하나의 사건으로 연결 짓는 구조다. 이는 불친절한 연출로 이어졌다. 사건을 따라가 주지 않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명회 아들의 교통사고에 담긴 진실을 알고 싶지만 알려주지 않는다. <우상>은 사건보다 세 인물의 감정과 믿음 그리고 행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사건의 진실보다 이들이 무엇을 믿고 그 믿음으로 인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비춘다. 이는 곧 우상을 좇는 일로 연결된다.


명회와 중식은 각자 다른 우상을 좇는다. 명회는 권력이란 우상을 향해 달린다. 아들의 교통사고 뺑소니를 한 정치인의 인생 드라마로 선거에 이용한다. 국민들 앞에 나서 고개를 숙일수록 지지율은 상승한다. 중식은 뜨거운 부성애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핏줄이다. 미친듯이 사라진 며느리를 찾는 모습은 부성애를 넘어선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슬픔은 어느새 며느리의 뱃속 태아로 희석된다.

칼에 찔린 상처는 금방 아물지만
그 주둥이는 아니되오


련화는 오로지 생존이 목적인 사람이다. 두 사람과 달리 우상을 가질 수 있는 여유조차 없는 상태다. 공격적인 그녀의 말투가 이를 보여준다. 그래도 우상을 찾자면 생존이다. 뱃속에 자식은 생존을 위한 도구다. 시아버지와의 혼인신고로 국적을 취득한 련화에게 더 이상 자식은 필요없다. 결국 중식의 우상은 생존의 위태로움 속 련화에 의해 파괴된다. 우상을 잃은 중식은 폭주한다. 중식이 이순신 장군 동상의 머리가 쳐내는 것은 명회의 우상을 파괴하는 행위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들의 우상 외에는 모든 것을 가볍게 여긴다. 권력을 위해, 핏줄을 위해, 생존을 위해서는 그 어떤 행동도 정당화한다.


때문에 관객과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 <우상>을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 비교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큰 차이는 공감대 형성을 위한 인물의 부재다. <곡성>의 종구(곽도원 분)는 일반적인 감정선과 행동을 한다.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미스터리한 인물들 속에서 관객이 유일하게 비빌 언덕 같은 존재다. 반면에 <우상>에서는 영화 초반 자식을 잃은 중식이 그 역할을 하지만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다가도 임신한 련화를 찾고 나서 달라지는 행동에서 거리를 두게 된다. 명회가 교통사고를 숨기기 위해 련화를 납치해 약물을 투여하다가 “착하게 살아”라며 살려주는 부분도 당황스럽다. 련화의 잔인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이들이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우상만을 좇는 상징적인 인물들이라고 고려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여러분이 해석하는 그 모든 게 답


해석은 자유다. 그래도 <우상>은 너무 자유롭게 풀어줬다. 정녕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한 영화다. 감독은 “여러분이 해석하는 그 모든 게 답”이라며 질문의 답을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배우들의 대사가 정확히 들리지 않아 감독은 관객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대사라도 명확하게 들리게 만들어줬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배우들은 어땠을까. 구명회를 맡은 배우 한석규는 “우리 스스로도 남을 보기만 했지 ‘나’를 본 적은 없는 것 같다”며 관객들에게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기회로 삼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최련화 역의 배우 천우희는 “퍼즐을 맞추는 재미”가 있다며 해석의 여지가 즐거움을 줄 것이라 전했다.

결국 질문을 던진다. <우상>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그 찝찝함은 불친절했던 연출과 더불어 질문에 대한 답이 딱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영화 속 주인공들은 흉악하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답이 있다. 권력, 혈육, 생존이라는 각자의 우상을 좇고 집착하면서 여전히 삶을 영위한다. 그렇지만 '즐거움'을 우상으로 삼고 <우상>을 보러온 관객들에겐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모호했던 감독의 답 대신 배우 설경구는 이 영화가 본질적으로 던지고자 하는 질문을 인터뷰에서 하기도 했다. 유중식 역으로 분한 그는  <우상> 속 세 사람의 우상이 각기 다름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좇는 우상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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