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백구 Jan 16. 2017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영화 <다가오는 것들 L’avenir> 리뷰(해석, 결말)

파리의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나탈리(이자벨 위페르)는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다. 언제나 결핍을 느끼는 홀어머니 때문에 쉴 틈이 없지만, 그녀는 안정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후 견고했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배우 이자벨 위페르

배우 이자벨 위페르는 장-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미카엘 하네케 감독 등의 영화 100여 편 이상에 출연한 프랑스 배우다. <비올렛 노지에르>(1978), <피아니스트>(2001)를 통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2회 수상, <여자 이야기>(1989), <의식>(1996)을 통해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2회 수상 및 <8명의 여인들>(2002)을 통해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수상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총 5회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약 45년의 연기 경력을 가진 국민 배우다. 특히 지난 2012년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의 주연을 맡아 국내 관객들에게도 알려져 있다. 2016년 5월 크랭크인한 홍상수 감독의 신작 출연으로 다시 한번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 엄마는 돌아가시고, 자식들은 자기 살길을 찾아 떠난다. 가르치는 학생들은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나탈리(이자벨 위페르)에게 독설을 가하고, 출판사에서는 철학 교재를 개정하면서 오랫동안 저자로 참여해온 그녀를 배제한다. 전부 떠나가는 것뿐인데, 영화 제목은 ‘다가오는 것들’이다. 떠나가는 것을 다가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는 나탈리가 가족과 여행을 가는 중에 '남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글을 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자벨 위페르(나탈리 역), 로만 코린카(파비엥 역)

남편 하인츠(앙드레 마르콩)는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나탈리에게 말한다. 영화는 그 순간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배경음악을 사용한다거나 인물들이 극적인 감정 변화를 보이는 것과 같은 흔한 장치를 쓰지 않는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나탈리는 공원 들판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서류들이 흩어지자 그것을 주우러 다닌다. 갑작스러운 바람처럼 남편이 떠나 허망하지만, 그녀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흩날린 서류를 다시 모아 정리해야 한다.


20년 이상을 함께한 남편을 뒤로하고 제자 파비앙(로만 코린카)과의 교류는 새로운 로맨스를 기대하게 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독인 미아 한센-러브는 쉬운 스토리와 손잡지 않는다. 나탈리에게 남편은 단순히 ‘사랑’했던 감정의 대상이 아니다. 자신이 삶을 통해 축적해온 결과물이자 성취다. 평온한 일상에 흠이 가는 것이 두려웠던 그녀는 남편이 외도를 고백하자 이렇게 말했다.


그걸 왜 말해?
혼자 묻어둘 순 없었어?


떠나는 것과 반대로,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남편과 함께 오랫동안 들어왔던 브람스와 슈만이 지겹다. 제자 파비앙과 함께 듣는 포크송이 좋다. 개인주의인 가족들과 달리, 교감 중인 파비앙과 그 친구들은 공동체를 지향한다. 그녀를 둘러싼 것들이 사라지자 그녀에게 자유가 찾아왔다.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떠나는 것과 다가오는 것이 그녀의 삶을 흘러가며 스쳐간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외부에 대해 쓰러지지 않으려는 내면으로 맞선다. 남편과 엄마와 자식들, 파비앙이 아니라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지식과 생각들로 버텨낸다.


이 영화는 여성 영화로 평가되기도 한다. 여성이 직업이나 능력이 아닌 관계로 설명되는 사회에 불협화음을 내고자 한다. 누구의 남편, 누구의 엄마라는 역할 정의를 잃은 여성은 어떻게 이해받아야 하는가. 이런 시각으로 나탈리를 본다면 작디작은 창문으로 그녀를 보는 것이다. 나탈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담담하게 말한다. 괜찮다. 각오한 일이다. 잘 받아들이고 있다.


지적으로 충만하게 살잖아.
그거면 족히 행복해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엔첸스베르거의 <급진적인 패배자>, 파스칼의 <팡세>, 레비나스의 <어려운 자유>, 알랭의 <행복론> 등 다양한 책의 표지들이 등장한다. 이런 대목들은 나탈리가 철학 교사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철학이라는 것은 마치 그녀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신적 버팀목같은 존재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느껴졌던 나탈리의 삶은 떠나고 다가오는 것들로 인해 균열이 생겼다. 남편의 외도를 묻어두고 가려는 것은 그녀의 ‘이상(Ideal)’이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 존경심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 제자에게 비겁한 지식인이라는 절망 같은 말을 듣고 난 뒤, 그녀는 ‘현실(Real)’을 만났다. 인간이 이상적인 것을 꿈꾸는 이유는 현실과 이상을 견주어보며 희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희망을 갖고자 하는 인간은 결국 불완전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끊임없이 이상을 추구했던 자신을 떠올리는 것일까. 학교로 돌아온 그녀는 학생들에게 알랭의 <행복론>을 이야기한다.


원하는 것을 얻고 나면 덜 기쁜 법,
행복해지기 전까지만 행복할 뿐.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인생을 망친 남편을 반품할 계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