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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Mar 26. 2017

이야기가 아닌 감정의 파편 모음집

<밤의해변에서혼자 ...Alone>

보이는 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한다.


홍상수 감독 영화는 언제나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모호한 인물들의 행동이나 시간의 흐름, 촬영기술, 전개 방식 등이 그 이유일 것이다. 모호하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명확하지 않은 것. 다시 말하면 정답이 없는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평론가들의 호평일색인 것도 다양한 생각이 가능하게 하는 영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기 때문에 모호하지만 해석이 다양해진다. 이번 영화 또한 그렇다. 보이지 않는 ‘고독’,’ 사랑’과 같은 감정을 보이는 인물, 배경을 통해 표현한다.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도 그러하다. 영화만 보면 그렇다. 작년부터 불거진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사생활 이야기는 관객들의 영화 해석에 대한 다양성을 구속했다. 영화의 설정이 그들의 실제 이야기과 유사하게 느껴지고 영화 속에서 던지는 김민희를 대사들은 현실과 오버랩되어 영화적 상상력을 방해한다. 그럼에도 사생활이라는 필터를 벗기고 영화에 집중해 보도록 하겠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해석의 다양성이 매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 또한 다양한 사람들의 해석 중 하나 정도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유부남 영화감독 상원(문성근)과 사랑을 하다 이별한 배우 영희(김민희)는 외국의 한 도시와 강릉에 머물며 지인들과 만난다.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촬영했다. 영희는 아는 언니 지영(서영화)과 도시의 이 곳 저곳을 다니며 이야기를 나눈다. 1부에서는 영희가 지난 사랑에 대한 마음과 앞으로의 다짐이 드러난다. 2부에서는 강릉에서 선배 천우(권해효)와 명수(정재영), 준희(송선미)를 만나 술을 마시고, 사랑했던 남자(문성근)와 영화를 찍는 조감독 승희(안재홍)를 만나기도 한다.


내가 잘 살았나? 필요해서 산 거지.


홍상수 감독은 물체이건 사람이건 중요한 것은 그 물체나 사람이 아니라 관계 혹은 교감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아름다운 꽃도 나와 교감이 없고 감정의 변화가 없다면 큰 의미가 없다. 교감과 감정의 변화는 대화 혹은 반응을 통해 가능하다. 이런 특징은 이번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순탄하게 공감하고 동의하는 대화는 거의 없다. 서로 상반되는 이야기를 계속 주고받는다. 예를 들어 1부에서 영희가 지영에게 ‘언니는 남편이랑 잘 살았잖아’라고 말하자 지영은 ‘내가 잘 살았나? 필요해서 산 거지’라고 말한다. 2부에서는 천우와 명수, 준희 등과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사랑이 뭔지, 그것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지' 설전이 벌어진다. 다음 장면에서는 영화 스태프들이 영화감독 성원이 칭찬에 후하다고 하자 영희가 ‘감독님이 칭찬을 잘해요?’라고 의아하게 묻는다. 그 어느 장면에서도 인물들 간의 대화가 마찰 없이 편히 흘러가지 않는다. 이런 대화의 마찰은 음악적으로 느껴져 리듬을 생성한다. *롱테이크로 컷의 변화 없이 흘러가는 장면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대화의 마찰음이 만들어내는 리듬 덕분이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에 대한 의문은 영화를 보는 내내 신경 쓰이게 한다. 그 역할은 실제 1부를 촬영한 박홍열 촬영감독이 연기했다. 엑스트라가 부족해 현장에서 즉흥적인 홍상수 감독의 요구로 촬영을 했다고 한다. 서사적으로 보면 그 남자의 등장은 이해되지 않는다. 이야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서너 번 등장하는데, 2부에서는 호텔 창문을 열심히 닦고 있지만 내부에 인물들은 누구도 반응이 없다. 마치 유령 같이. 이런 비현실적인 인물은 과거 홍상수 감독 영화에서 등장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 남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다짐해보고 싶었어.


그는 영희가 받고 있는 일종의 스트레스다. 유부남과 사랑하고 이별을 한 영희는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면서 타인의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자격이 없다며 자신의 불안감을 드러낸다. 그것은 1부에서 앞서 걷던 지영을 보내고 다리 위에서 절 하는 장면으로 볼 때 스스로 느끼는 죄책감의 일환일 수 있다. 남편과 '필요에 의해 살았다'는 지영에게 자신은 사랑과 욕구가 중요했고, 지영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상황에 대해 어떤 다짐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다른 해석으로 그 남자가 검은색 옷을 입고 있다는 점에서 죽음에 근접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이외에도 해석은 다양할 수 있는데, 이런 의문을 갖고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감독의 목적이었다고 본다. 감독은 검은 옷의 남자에 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왜 그런 인물이 나오는지
설명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2부에서 해변가에 누워있다 조감독 승희(안재홍)를 만난다. 이때 카메라는 옆으로 누워서 잠을 자는 영희의 앞모습을 비춘다. 영화 말미에 같은 모습과 대사이지만 영희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 사이에는 영화감독 상원과 함께 스태프들과 술을 마시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그 장면이 꿈을 꾼 것일 수도 있다는 혼란을 준다. 홍상수 감독의 2012년 작인 영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도 잠을 자는 해원을 통해 현실과 꿈의 경계를 모호하게 표현했다. 영화 <다른 나라에서>는 그 특징이 도드라지는 데, 현실과 꿈의 경계에 대해 질문하자 홍상수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현실이라는 강박을
벗어나는 순간이 매력적이다. 
현실의 강박을 벗어나는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독특한 점 중에 하나는 **줌인(Zoom-in), ***줌아웃(Zoom-out)이다. 갑작스럽게 컷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물이나 사람에 줌인을 하거나 넓은 배경을 보이며 줌아웃한다. 관객이 보고자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이다. 이런 촬영기법을 통해 홍상수 감독은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분명하게 한다. ‘너네는 영화를 보고 있어’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인 소재를 다루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실과 영화는 다르다는 것을 드러낸다.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제목은 월트 휘트먼의 시(詩)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 제목처럼 밤의 해변에서 혼자 있는 장면은 없다. 제목은 주인공의 현실적인 상황을 드러내는 표현이 아니라 심리적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다. 영화 제목은 고독이라는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희는 계속해서 과거에 이미 알고 있던 사람들을 만난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럼에도 그녀가 고독하게 느껴진다. 뭔가 쓸데없다고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다. 대사도 없고 행위도 없는 장면. 그런 장면들이 그녀를 대변하는 것일까. 우리의 삶은 사건사고 혹은 새로운 말과 행동으로 가득 차 있지 않고, 텅 빈 시간이나 익숙한 것들을 만나고 보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익숙한 것들이 다르게 느껴지는 경우는 감정이 변화했을 때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라는 상황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영희가 있는 장소, 만나는 사람이 아닌 감정에 집중하도록 한다. 밤의 해변에 혼자 있는 것은 외부가 아니라 내면이기 때문이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쏟아내는 영희의 격한 감정은 그녀가 견디기 힘든 고독에 봉착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보이지도 않는데
사랑을 어떻게 찾아요.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서사보다 감정이 중요하다. 1부와 2부 위치를 바꿔도, 술 마시는 장면의 순서를 바꿔도 서사적으로 큰 변화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해석이 무의미하기도 하다. 어떤 장면, 어떤 대사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보다 어떤 감정인지에 초점을 두는 것이 이 영화를 즐기는 방법이다. 상황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이별한 영희가 느끼는 감정의 파편들을 모아둔 영화다. 보이지 않는 사랑을 표현하려는 데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어 고독해졌다. 영희는 고독에 저항한다. ‘이해를 못하면 입 좀 다무세요’라는 격한 표현까지 쓰는 영희를 보고 있자면 절박하게까지 보인다. 우리가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를 통해 본 것은 영희의 이야기가 아니라 영희의 감정이다. 영희가 추운 겨울 카페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작은 목소리로 홀로 노래를 부른다.


보이시나요, 저의 마음이. 
왜 이런 마음으로 살게 됐는지.




(*롱테이크 : 영화의 쇼트 구성 방법 중 하나. 1~2분 이상의 쇼트가 편집 없이 길게 진행되는 것.)

(**줌인 : 렌즈의 초점 거리를 조절함으로써 피사체가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촬영기법.)

(***줌아웃 : 초점 거리를 조절하여 피사체에서 멀어져 가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촬영기법의 하나. 줌인의 반대어)

(사진출처 :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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