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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Apr 03. 2017

당신은 무엇에 분노하나요

영화 <분노 怒り RAGE> 리뷰(결말, 해석)

*없습니다. 스포일러

믿음과 불신, 그리고 분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인자일지도 모른다. 여러 증거가 사랑하는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당신은 그를 믿을 것인가, 의심할 것인가. 믿음에 대한 대가, 의심에 대한 대가는 다르지만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의 마음 상태보다 내가 그를 믿을지 의심할지부터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심하며 평소와 같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가. 믿는다면 그 믿음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쉽사리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들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영화 <분노>는 스릴러 영화지만 범인 찾기에 집중하지 않는다. 누가 범인인지 추리하다가 결국 아무도 범인이 아니길 바라는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평범한 부부가 집 안에서 살해됐다. 사건 현장엔 피로 물든 ‘분노’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1년 후, 세 명의 용의자가 등장한다.

- 치바의 항구에서 일하는 요헤이(와타나베 켄)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딸 아이코(미야자키 아오이)를 집으로 데리고 돌아온다. 아이코는 항구에서 일하는 타시로(마츠야마 켄이치)와 사랑에 빠지지만, 요헤이는 타시로의 과거를 의심한다.

- 도쿄의 샐러리맨 유마(츠마부키 사토시)는 신주쿠에서 만난 나오토(아야노 고)와 동거를 시작한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유마는 나오토의 행동에 의심을 품는다.

- 이즈미(히로세 스즈)는 새로운 친구 타츠야(사쿠모토 타카라)와 무인도를 구경하다가 배낭여행을 하던 타나카(모리야마 미라이)를 만난다. 친절한 타나카와 두 사람은 친해졌지만, 그의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수상한 세 남자의 이야기는 단 한 번도 겹치지 않는다. 각각의 이야기를 영화 한 편씩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독립된 이야기다. 그러나 마치 연결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정교한 편집과 건축학적으로 잘 짜인 시나리오 탓이다. 영화는 화면이나 사운드를 겹치는 방식으로 세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넘나 든다. 겹치는 방식은 사운드 몽타주라고 하는데, 예를 들어 치바에서 들리는 노래가 그대로 이어져 도쿄 클럽에서 들리는 식이다. 또는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한 뒤에 오키나와의 해변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시공간은 독립되어있지만, 화면과 사운드를 통해 이야기 전환의 이질감을 자연스럽게 해소하고 감정선을 유지한다.


‘치바’에서 료헤이가 타시로를 의심한다. ‘도쿄’의 장면으로 넘어가면 나오토가 유마를 의심한다. 그리고 다시 ‘치바’로 화면이 돌아오면 인물들의 의심이 점점 증폭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와 같은 편집을 통해 이야기는 다르지만, 감정선은 자연스럽게 흐름을 이어간다.

초호화 캐스팅, 톱스타 총출동


(사진 왼쪽 위부터 순서대로) 영화 <인셉션><배트맨 비긴즈>의 와타나베 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모리야마 미라이, <데스노트> 시리즈의 마츠야마 켄이치, <립반윙클의 신부>의 아야노 고,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히로세 스즈,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미야자키 아오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츠마부키 사토시.


모두 일본에 주연급 배우들이며 연기력을 인정받은 인기 스타들이다. 이런 배우들이 한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영화는 요시다 슈이치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원작에는 아주 상세한 심리묘사가 등장하는데, 영화는 시간상 모두를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압축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연기력이다. 연기로 이야기를 관객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뛰어난 배우들을 캐스팅해야만 했다. 연기력을 보는 재미도 영화를 봐야할 이유에 속한다. 이와는 별개로 우리나라에서는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으로 알려진 프로듀서 카와무라 겐키의 힘으로 이런 초호화 캐스팅이 가능했다는 후문이다.


배우들은 연기에 몰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츠마부키 사토시와 아야노 고는 게이 커플을 연기하기 위해 실제 도쿄에서 3개월간 동거를 했다. 아야노 고는 마음이 여린 캐릭터 연기를 위해 9kg을 감량했다. 배낭여행을 하는 캐릭터를 위해 모리야마 미라이는 3주간 무인도 생활을 했다고 한다.


원작 소설 <분노>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정하지 않고 연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점은 영화에도 반영되었다. 이상일 감독은 소설에 표현되지 않은 빈 곳을 영상으로 채워가며 수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결국 소설의 메시지와 영화가 같은 지향점을 갖고 가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고, 감독은 영화의 초점을 이렇게 잡았다.


범인이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분노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세 명의 외모다. 용의자 몽타주를 봐도 누가 범인인지 확신할 수 없이 닮았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단어가 있다. 소금형 얼굴과 소스형 얼굴이라는 말이다. 소금형은 담백한 얼굴, 소스형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을 말한다. 한국 배우로 보자면 이준기, 유지태와 원빈, 장동건이랄까. 감독은 용의자 역할의 세 배우를 소금형으로 캐스팅했고, 그들과 뒤섞이는 인물들은 전부 소스형으로 캐스팅했다. 소금형 얼굴이 더 의중을 파악하기 힘든 얼굴이라 생각해 몽타주를 통해 의심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의심을 받는 세 남자는 하나 같이 특별한 직업이 없고 부유하지도 않으며 신체적으로 유약해보인다. 이런 약한 신체적 조건과 사회적 하류계층, 성소수자 설정은 우리를 어떠한 선입견에 직면하게 만든다. 약자에 대한 손쉬운 판단이 누군가를 분노케한 것은 아닐까. 이러한 선입견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당사자를 포함한 주변 집단의 분노를 일으킬 수도 있다. 영화를 다보고 나서 범인을 맞추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 가졌던 편견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범인을 맞춘 사람이라면 질문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편견이 옳았다고 착각할 수도 있으니까. 이 부분을 경계하며 영화를 보길 바란다. 어떤 사람도 외모와 사회적 계층, 성적 취향으로 그 사람의 인격까지 판단해서는 안되며, 누구도 그 판단할 자격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영화는 답을 말하는 영화가 아니라 질문하는 영화다.


분노라는 게 뭐지?


영화 초반에는 범인을 찾는다. 중반이 넘어가면 누굴 믿어야 할지 고민한다. 영화가 끝나면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분노라는 게 뭘까?’ 이성적인 추리로 시작해 믿음을 고민하다가 분노에 대한 질문으로 끝나는 영화 <분노>는 결국 우리 삶이 분노와 맞서는 삶이 아닌지 질문을 툭하고 던진다.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에 대한 믿음이나 불신이 분노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분노는 어디서 오는 거지? 살인범은 살해 현장에 '怒(성낼 노)'라는 글자를 남겼다. 범인은 분노라는 감정에 지배당하면서 그 감정을 우습게 여기는 인물이라고 감독은 설명했다. 내면의 갈등이 범인을 극단으로 몰아세운 것일까.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은 분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을 가장 분노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사진출처 : 다음영화, 씨네21, 맥스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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