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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Apr 14. 2017

가혹한 상황 속에서도 사랑의 공간은 존재한다.

<나의 사랑, 그리스 Worlds Apart>

사랑과 정치 간의 대결구도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IMF 채무상환에 실패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가 배경이다. 영화는 국가 경제의 위기가 국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조명한다. 직장을 잃고, 집을 뺏기고, 나라가 붕괴되는 위기에도 영화 속 주인공들이 잃지 않고 뺏기지 않으며 절대 지키는 것이 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떠오른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이 지뢰밭이더라도 '사랑의 공간'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감독은 묻는다. 

감독 겸 지오르고 역할을 연기한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
1부 [부메랑]

대학생 ‘다프네(니키 바칼리)’는 늦은 밤 길을 가다 괴한에게 공격을 당했다. 이를 목격한 시리아 출신 난민 청년 파리스는 그녀를 위기에서 구한다. 파리스의 순수함에 다프네는 마음을 열고 이내 사랑에 빠진다. 

2부 [로세프트 50mg]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는 ‘지오르고(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는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사실상 끝났고, 공황장애 등 정신병으로 로세프트를 정기적으로 복용하고 있다. 어느 날 단골 바에서 알게 된 스웨덴 여성 ‘엘리제(안드레아 오스바트)’와 하룻밤을 보낸다. 그리스 경제 위기에 못 이겨 지오르고가 다니는 회사는 스웨덴 기업에 넘어갔다. 알고 보니 엘리제는 회사의 정리해고 담당자로 파견된 고위간부다. 

3부 [세컨드 찬스]

65살의 독일 학자 ‘세바스찬(J.K. 시몬스)’는 은퇴 후 그리스로 이주했다. 마트에서 우연히 알게 된 60살의 마리아와 매주 만나면서 사랑에 빠진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과 각자 자신의 삶만 중요시하는 자식들 때문에 무기력한 삶을 지내던 마리아는 세바스찬을 만나 의욕을 되찾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줄거리가 길었다. 세 가지 이야기를 모두 적어야 했다. 3부로 나눠져 옴니버스 형식으로 세 가지 이야기가 모두 나오고 마지막에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의 영어 제목은 <Worlds apart>, 그리스어 제목은 <Enas Allos Kosmos>이다. 우리나라의 제목으로만 보면 따뜻한 사랑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영어와 그리스어로 '동 떨어져', '또 다른 세계'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우리나라 제목을 제외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 사랑을 나누려는 그들의 상태를 제목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그리스를 넘어 유럽 전체에 퍼진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 위에 위태로운 사랑을 하는 20대, 40대, 60대 세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의 위태로움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빈부격차는 더 커졌고, 경제성장률은 바닥을 기어 다니며 실업자와 비정규직은 갈수록 늘어난다. 자살률은 2003년 이후 줄곧 OECD 회원국 중 1위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옆 테이블에서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는 커플의 입꼬리가 내려갈 줄을 모른다. 영화 속 세 커플은 상황은 다르지만,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는 전쟁이 없잖아.


시리아 출신 청년 파리스는 그리스인 다프네에게 말했다. 그리스가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총포가 쏟아지는 나라는 아니라고.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 그리스로 떠나온 그에게 이 곳은 살만한 나라다. 


국가는 영토, 국민, 주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보와 치안은 주권에 해당한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수 없다면 국가는 사라질지도 모른다. 난민은 자신을 보호해줄 국가가 사라진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집단이 있는데, ‘제노포비아(이방인 혐오증)’이라고 한다. 다프네의 아버지는 제노포비아, 파시스트의 성격을 가진 단체 ‘필그림’의 소속되어 있다. 자신의 딸이 난민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1부 제목은 [부메랑]이다.

지오르고는 아내와 결혼생활이 끝났지만, 아들에게는 밝히지 않았다. 직장에서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지만, 해고 담당자인 엘리제와 사랑에 빠져 그는 피해갈지도 모른다. 정신질환으로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하지만,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안정과 불안 사이에 그는 어디쯤 위치한 것일까. 2부 제목 [로세프트 50mg]은 그가 복용하는 약 이름이지만, 국가의 위치마저 확실히 알지 못하는 그리스 현실에게 감독이 영화라는 약을 건네려는 의도일지도.

65세 남성과 60세 여성에게 찾아온 두 번째 기회에 대해 감독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라며 따뜻한 손길을 보낸다.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수많은 선택과 경험을 돌아보며 전부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면 현재의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어설픈 영어실력으로 세바스찬과 소통하는 마리아는 잊고 지냈던 자신을 다시 깨닫는다. 3부 제목은 [세컨드 찬스]다. 




이 영화를 재밌게 보기 위해 두 가지를 알면 좋다. 그리스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 그리스 신화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 경제적 상황은 ‘대한민국 IMF 구제금융 요청’ 이후의 상황과 비교하면 좋다. 에로스와 프시케의 이야기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알고 가면 영화 후반부에 흐르는 J.K. 시몬스의 내레이션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에로스와 프시케 이야기

왕의 딸인 ‘프시케’의 미모를 질투한 아프로디테(비너스)는 아들 에로스(큐피드)에게 프시케를 못난 괴수와 결혼하도록 지시한다. 그러나 에로스는 프시케를 본 후 사랑에 빠졌다. 에로스는 밤마다 프시케를 찾아오지만 자신의 얼굴을 절대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에로스의 사랑에 질투한 프시케의 언니들은 남편의 얼굴을 확인하라며 양초를 준다. 결국 프시케는 에로스의 얼굴을 보았고, 그때 에로스의 몸에 촛농을 떨어뜨린다. 이에 실망한 에로스는 프시케를 떠난다.

프시케는 에로스를 찾아 나섰다. 에로스의 엄마인 아프로디테는 온갖 역경을 프시케가 겪도록 하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이겨낸다. 이를 이겨낸 프시케를 본 에로스는 제우스(주피터)에게 부탁해 프시케를 신으로 만들어 함께 지낸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을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느끼는 사람보다 아닌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현실의 벽을 넘으며 독하게 버티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울타리 안에서 누구도 막지 못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국가가 없는 난민과, 나를 해고하려는 상사와,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 고난마저 이겨내며 인간이 아닌 신과 사랑하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은 IMF 금융구제 요청이 있던 1997년 이후 경제적으로 매우 힘들어졌다. 이 상황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버티게 하는 것은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없다면 우리는 어디에 기대야할까. 감독은 사랑이야기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그런데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을 무시하며 아름답게만 그릴 수 없었다. 사람마다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연결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랑이야기라고 봤다. 영화 속에서 지오르고를 연기한 감독 크리스토퍼 파파칼리아티스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극단적이고 혼란스럽고
가혹한 상황 속에서도
사랑의 공간은 존재한다. 


(사진출처 : 다음 영화,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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