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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구 Apr 28. 2017

<특별시민 The Mayor>

빈약한 서사를 떠받드는 건, 대선을 앞둔 타이밍

내가 늑대라고 하면 사람들이
늑대라고 믿게 만드는 것,
그게 선거야


흔히 ‘정치는 생물이다’라는 말을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어떻게 흘러갈지 변할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 말은 고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오용되고 있다. 정치인들은 곤란한 질문이 오면 정치는 생물이라고 말하면서 확답을 하기 어렵다는 말을 덧붙인다. 일종의 여지를 남기면서 상황에 따라 자신의 태도를 바꿀 ‘명분 쌓기’를 하는 것이다.

 결국은 '명분 싸움'이라고 말하는 전쟁 같은 정치판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치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영화 <특별시민>은 정치인 ‘변종구’를 통해 지겹더라도 우리가 계속 정치에 관심 가져야 하는 이유는 본래 목적은 잊은 채 권력만을 추종하며 타인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비린내 나는 정치인'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서울시장 변종구(최민식)는 헌정 사상 최초 3선 서울시장에 도전한다. 그 옆에는 선거공작의 달인 국회의원 심혁수(곽도원)와 겁 없이 선거판에 뛰어든 젊은 광고인 박경(심은경)이 함께 선거 전쟁을 펼친다.

변종구는 탁월한 정치 감각과 철저한 이미지 관리로 선거판을 주도하지만, 막강한 상대 후보들과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위기에 빠진다.

변종구는 시간이 제한된 구역에 마음대로 들어간다. 불법을 행하면서도 구역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을 되려 혼낸다. 그리고 영화는 서울시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올라서 있는 그의 뒷모습이 보여준다. 이후 여러 장면들에서 *부감 쇼트를 활용되었다. 이는 변종구라는 캐릭터가 서울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나타낸다. 변종구가 서울시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마인드를 카메라 구도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부감 쇼트(High angle shot) : 피사체를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포착한 장면)


변종구의 정치 감각은 거대 싱크홀이라는 서울 시내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드러난다.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머리를 흐트러뜨리고 넥타이를 풀면서 정장 재킷을 벗는다. 이어서 현장 작업 외투를 걸치며 안전모를 쓴다. 빠르게 현장에 도착해 사건에 대해 신경 쓰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그 사건이 수습될 때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는다. 몰래 초밥을 먹다 감추는 장면은 그의 위선적인 이미지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를 통해 우리나라 정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노력 때문에, 우연하게도 실제 인물들이 떠오른다. 2016년 4월에서 8월까지라는 영화의 촬영 시기를 고려하면 영화는 마치 예언서처럼 느껴진다. 영화 기획면에서 보면, 예정대로 치러졌다면 12월이었을 대통령 선거에 대비한 영화였다. 그런데 미리 예측이라도 한 듯 영화가 실제와 겹치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우선, 주인공이 출마 선언하는 장면이다. 변종구는 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자신이 일했던 곳에서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한다. 이는 실제 작년 대선 출마 선언을 했던 한 후보와 모습이 겹쳐 보인다. 이 장면은 영화 초반 등장하는데 변종구라는 캐릭터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그의 정치적 행동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여담으로 출마 선언 연설문은 캐릭터를 더 임팩트 있게 전달하기 위해 최민식이 직접 작성했다고 한다.)

두 번째는 가족 정치와 네거티브 공방이다. 상대 후보인 양진주(라미란)는 잘 나가는 하버드 출신 아들(이기홍)을 선거 운동에 이용한다. 명문대 출신에 잘생긴 얼굴 덕에 화제를 모으지만 과거사 문제로 공격받는다. 변종구는 아내의 사치품 구입으로 곤욕을 치른다. 양진주와 변종구는 서로의 가족 비리를 들추며 네거티브 공방을 이어간다. 이는 가족을 선거에 이용하는 후보, 가족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후보 등 실제 우리나라 선거운동 기간에도, 현재 후보들에게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서울시장 후보 TV 토론은 ‘스탠딩 토론’으로 진행했다. 이 부분은 우연하게도 실제 상황과 맞아떨어진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대선이 앞당겨질 것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작년 봄부터 여름까지 촬영한 이 영화에는 '스탠딩 토론'이 등장한다. 당시 미국 대선이 진행 중이었고 도널드 트럼프 후보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스탠딩 토론이 화제에 오른 것으로 보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19대 대선 후보 토론에 스탠딩 토론을 도입했다는 것과 겹치면서 영화는 현실성을 획득했다.

이처럼 정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감독이 만든 영화지만, 서사적으로는 아쉽다. 중간중간 튀는 장면이 있다. 정해진 시나리오 안에서 감독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구성된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장면들이 맥락상 어색하게 느껴지고, 개연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의 놀라운 현실을 반영한 정치판을 그리고 있는 것에 비해 후반부는 현실성은 커녕 극적으로도 흥미롭지 않다.


또한, 영화가 변종구라는 캐릭터 중심으로 흐르다 보니 영화가 전체가 한 편이라기보다는 여러 개의 에피소드를 그저 나열했다고 느껴진다. 서울시장 선거라는 거대한 전체 이야기 속에 작은 정치적 사건, 사고들을 배치한 것은 일반적인 구성이다. 그러나 긴장감을 주지 못한 전체 이야기 때문에 작은 사건들이 힘을 잃는다. 이런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는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더 적합하다.



이 시국에 지겹지만 또 정치영화,
결론은 투표를 잘하자는 것


변종구 역할을 맡은 배우 최민식은 4월 18일 메가박스 동대문 점에서 열린 언론시사회에서 이같이 말하며 관객들의 반응에 대해 우려했다. 지난 탄핵정국부터 대선 기간으로 오면서 정치적 피로도를 느끼고 있는 국민들의 정서가 영화에 미칠 영향을 걱정한 것이다. 그는 그럼에도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투표를 잘하자’는 뻔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서사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음에도 이 영화가 매력적인 것은 타이밍이 좋다는 것이다. 방송계에서는 예능과 드라마의 위기라고 할 정도로 뉴스의 시청률이 높고, 젊은 사람들도 정치를 주제로 대화하는 것이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대선 정국은 이 영화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 KBS 주관으로 진행된 대선 후보 TV 토론 시청률이 26%를 넘어선 것은 국민들의 관심을 대변한다. 최민식이라는 대배우의 출연과 대적할 만한 할리우드 영화가 없다는 점도 영화 흥행에 기인하지만, 대선 기간이라는 타이밍이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는 어렵다.

선거는 똥물에서 진주 꺼내는 거야.
손에 똥 안 묻히고 진주 꺼낼 수 있겠어?


영화 속에서 선거의 달인 심혁수가 이제 막 정치판에 뛰어든 광고 담당 박경에게 하는 말이다. 현실에서 정치인들은 ‘그것은 어렵다고 본다’,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런 경우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등 명확하지 않은 답변으로 태도를 바꿀 여지를 남겨둔다. 그리고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예’, ‘아니오’라고 확답할 수는 없다’와 같은 말을 덧붙인다. 상황에 맞춰 자신이 유리한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지난날의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반 년의 경험으로 그동안 무책임했던 그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유권자로 변하고 있다. 이번 19대 대통령 선거는 헌정 사상 최초 탄핵 이후 이루어지는 첫 투표다. 대선 토론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진흙탕 싸움 속에서 그나마 더 나은 놈을 골라야 한다. 커다란 변화의 시기에 대한민국의 앞날이 결정될 이번 선거, 영화 <특별시민>에서 주인공 '변종구'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의 말처럼 우리 모두 투표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스포일러 때문에 가 한 인지 밝힐 순 없지만, 다음은 선거에 대한 마음 가짐이 담긴 영화 속 대사다.


당신들이 그렇게 하찮게 생각하는
유권자로 돌아갈 거예요.
차근차근 심판할 겁니다.




(사진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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